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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3949 출처
이 글은 10년 전 (2015/11/03) 게시물이에요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재앙인 줄 알면서 만났다
재앙보다 더 큰 것이 있다고 믿었다
재앙보다 더 크고 미련한 것

헤어지면서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사이좋게 목록을 늘려나갔다
잿더미를 깔고 앉아

살아보자고
살아보자고
더 크고 미련한 것을


- 사랑 / 김언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자두가 열렸다

자두나무니까

자두와 자두나무 사이에는 가느다란 꼭지가 있다 

가장 연약하게 

처음부터 가는 금을 그어놓고 

두 개의 세계는 분리를 기다린다

이것이 최고의 완성이라는 듯이

난 말이지

정신적인 사랑 , 이런 말 안 믿어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카페 루이제에서 자두나무가 있는 정원까지 오는 동안 

혼자 흐릿하게 떨리는 게 순수한 사랑이라고

나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시시각각 자두가 붉어지고 멀어지고

노을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다

최고의 선은 각자의 세계를 향해 가는 것

그러나 가끔 이상하게 

멈춘 채 돌아보게 된다

자두나무는 자두를 열심히 사랑하여 익히고 떨어뜨리고 

나는 사랑을 붉히고 보내야 한다

사람이니까

그리고 망설일줄 아는 능력이 있다

- 다소 이상한 사랑 / 김이듬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가위로 오래된 애인의 눈을 오린다

우리는 몇 장인지
불 꺼진 눈마다 멍이 들어 밤을 앓는다
비가 내려 아스팔트 바닥에 난 점을 헤아리는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줄 몰라서, 낮에도
박쥐처럼 헐떡거리며
서로의 주머니를 더듬다가 눈이 젖고
구름에서 빈 캔 구겨지는 소리가 날 때
목이 말라 골목으로 나서면
몸에 오래 고여 있는 것들이 굳어간다
예를 들면, 펜이다
점점 어두워지는 문장을 쓰다 수명이 다하고
키스는 길고
너는 내 몸에 낙서를 한다 내 얼굴,
비를 맞다가 문득
구름에 취해 희미해지고 담뱃불에 취해
환해지는 게
골목을 떠도는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너는 내 골목을 다 외웠는지


- 별거 / 김준현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 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그 사람에게 / 신동엽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그리울 땐
눈을 감으면
별이 되어
떠난 사람이 온다

서로 목숨이었던 때의
빛으로
가슴을 부빈다


- 연가 / 김초해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세상에! 네 몸 속에 이토록 자욱한 눈보라!
헤집고 갈 수가 없구나
누가 가르쳐주었니?
눈송이처럼 스치는 손길 하나만으로
남의 가슴에 이토록 뜨거운 낙인 찍는 법을
세상에! 돌림병처럼 자욱한 눈보라!
이 병 걸리지 않고는 네 몸을 건너갈 수가 없겠구나

갓 세상에 태어난 어린 새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와 털갈이라도 하고 갔니?
어린 시절 뜬금없이 재발하던 결핵이라도 도졌니?
몸 속이 너무 자욱해
내 발등 위로 쌓이는 눈송이들
이 세상 시간 밖으로 쫓겨난 건 아니니?

네가 태어나기 전 먼먼 옛날부터
뜨거운 손길로 아가의 심장을 만들어오시는 그분이
아무도 몰래 넣어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주머니
그 별이 터져서 네 몸 속에서 쏟아지고 있는가 봐
이제로부터 이 별은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는 거야

모든 삶의 밑바닥에는 끔찍하게 무겁고, 끔찍하게
힘들고, 끔찍하게 뜨거운 것 있잖아?
그 뭉쳐진 것이 터지는 날
세상에! 눈보라처럼 흐느끼는 바이러스 같은 것!
나 어떻게 이 숨찬 눈보라 건너가지?
사랑은 사랑이 있는 곳에서 가장 많이 모자란다는데


- 자욱한 사랑 / 김혜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가슴 속에 젖어드는

이 설레임은 무엇일까

땅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부드러움이여

답답한 마음에

아, 비가 내리는 노랫소리여

울적한 이 마음에

이유도 없이 눈물 내린다

웬일인가 원한도 없는데

이 이유없는 크나큰 슬픔은 무엇인가

이건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는데

내 마음 한없이 괴로워라

- 내 마음에 눈물 흐른다 / 폴 베를렌느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 
님과 내가 얼어 죽을 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 
님과 내가 얼어 죽을 망정 
정 나눈 오늘 밤 더디 새시라 더디 새시라 

뒤척 뒤척 외로운 침상에 
어찌 잠이 오리오 
서창을 열어보니 
복사꽃 피었도다 
복사꽃은 시름 없이 봄바람 비웃네 봄바람 비웃네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 그리더니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 그리더니 
우기시던 이 누구입니까 누구입니까 
오리야 오리야 
어린 비오리야 
여울일랑 어디 두고
에 자러 오느냐 
못이 얼면 여울도 좋거니 여울도 좋거니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 각시를 안고 누워
약 든 가슴을 맞추옵시다 맞추옵시다 

아! 님이여 평생토록 여읠 줄 모르고 지냅시다


- 만전춘별사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추억 하나쯤은
꼬깃꼬깃 접어서
마음속 깊이 넣어둘 걸 그랬다

살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꾹꾹 눌러 참고 있던 것들을
살짝 다시 꺼내보고 풀어보고 싶다

목매달고 애원했던 것들도
세월이 지나가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끊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고 끊어지는
인연인가 보다

잊어보려고
말끔히 지워버렸는데
왜 다시 이어놓고 싶을까

그리움 탓에 서먹서먹하고
앙상해져 버린 마음
다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 추억 하나쯤은 / 용헤원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사랑해라고 고백하기에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다

이보다 더 화끈한 대답이 또 어디 있을까

너무 좋아 뒤로 자빠지라는 얘기였는데

그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다면서 그 흔한 줄행랑에 바쁘셨다

내 탓이냐 네 탓이냐 서로 손가락질하는 기쁨이 있었다지만

우리 사랑에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건 결국 시 때문이다

줘도 못 먹은 건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 시, 시, 비, 비 / 김민정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대가 나를 속인 것 때문이 아니라 

이제 다시는 그대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행위는 약속할 수 있으나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

감정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으므로 

그대를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약속을 하는 자는 

자신의 힘에 겨운 것을 약속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을 때, 

그것은 겉으로의 영속을 약속한 것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섣불리 ‘영원’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록 그때는 진심 어린 말일지라도 

그 상대가 상처를 받기엔 너무 쉬운 일이니


- 약속 / 프리드리히 니체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어떤 날은 네가 무섭도록 보고팠다

그러나 가장 절실할 때 널 찾지 않기로 했다

그 숱한 그리움으로 여러 날을 앓고

물빛 투명한 심상으로 너를 떠올릴 때도

못내 널 찾지 않기로 했다

어느 외진 바다 기슭에서

수없이 파도에 씻겨 닳아진 차돌처럼

견고하게 다져진 외로움 그대로

끊어질 듯한 기다림의 목울대 그대로

혼자서 살아가는 날의 그 공허한 행복감

쨍쨍 맑은 어느 날 높고 외딴 봉우리에

흰 한숨처럼 감기는 구름인 듯

사랑이여, 그때 홀연 내게 오려나

- 기다림 / 김선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방에서 독재했다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팔리지 않는 광어를
아예 관상용으로 키우던 술집이 있었다

 

그 집 이름하고
내 이름이 같았다

 

대단한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나와 같은 이름의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벽면에서 난류를
찾아내는 동안 주름이 늘었다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한다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잠,
잠을 끌어당긴다
선풍기 날개가 돈다

 

약풍과 수면장애
강풍과 악몽 사이에서

 

오래된 잠버릇이
당신의 궁금한 이름을 엎지른다

- 여름에 부르는 이름 / 박준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 파란 돌 / 한강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새소리가 높다

당신이 그리운 오후,

꾸다만 꿈처럼 홀로 남겨진 오후가 아득하다

잊는 것도 사랑일까

잡은 두 뼘 가물치를 돌려보낸다

당신이 구름이 되었다는 소식

몇 짐이나 될까

물비린내 나는 저 구름의 눈시울은

바람을 타고 오는 수동밭 끝물 참외 향기가

안쓰럽다

하늘에서 우수수 새가 떨어진다

저녁이 온다

울어야겠다

- 반음계 / 고영민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추워
나는 당신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내 왼손은 당신의
오른쪽 옆구리 속으로 쑥 들어가
내 손은 잔인하구나
당신의 옆구리는 두부 같구나
손은 뜨듯한 것들 속으로 들어가
당신의 옆구리는 어둡구나
적막하구나
한 번도 다다른 적 없는 자리에
손이 닿아
나는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인데
당신의 몸 안을 잡고 있었을 뿐인데
손에 살이 달라붙어 조금 울어
또 조금 울어
내 손은 당신의 깊은
주머니가 되는구나
일단 당신의 방향으로 와봤거든
입 모양을 만들 틈도 없이
당신의 가장 안쪽을 찌르고 있는
칼끝이 되는구나


- 두부 같아요, 당신 / 이원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밤이 내린다

 

보이는 것 다 지우고

들리는 것 다 막아서

 

저마다 홀로 되어 쓸쓸한

밤이 내린다

애인이여

아직도 잠 못드는 애인이여

 

이 두려운 어둠 모두 휘저어

블랙커피 마시는 나눠 마시고

 

오늘밤 나와 함께 죽을래


- 사신 / 임영조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인스티즈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 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세상을 껴안다가 문득 그를 껴안고

당신 자신을 껴안는 착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기분에 울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끌림 中 /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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