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하늘이 서서히
잿빛 구름으로 멍드는 걸 보니
그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다가도 개면 그만이건만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은
울적하단 말로 표현이 되려나.
-
멍, 서덕준
마음가에 한참 너를 두었다
네가 고여있다보니
그리움이라는 이끼가 나를 온통 뒤덮는다
나는 오롯이 네 것이 되어버렸다.
-
이끼, 서덕준
당신을 생각하며
한참 뭇별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손가락으로 별들을 잇고 보니
당신 이름 석 자가 하늘을 덮었다.
-
별자리, 서덕준
당신과 불현듯 스친 손가락이
불에라도 빠진 듯 헐떡입니다.
잠깐 스친 것 뿐인데도 이리 두근거리니
작정하고 당신과 손을 맞잡는다면
손등에선 한 떨기 꽃이라도 피겠습니다.
-
손, 서덕준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한 사내는
수국 가득 핀 길가에서 한 처녀와 마주치는 순간
딱, 하고 마음에 불꽃이 일었음을 느꼈다.
사랑이었다.
-
부싯돌, 서덕준
누구 하나 잡아먹을듯이 으르렁대던 파도도
그리 꿈 꾸던 뭍에 닿기도 전에
주저앉듯 하얗게 부서져버리는데
하물며 당신의 수심보다도 얕은 나는
얼마를 더 일렁인들
당신 하나 침식시킬 수 있겠습니까.
-
파도, 서덕준
당신이 나의 들숨과 날숨이라면
그 사이 찰나의 멈춤은
당신을 향한 나의 숨 멎는 사랑이어라.
-
호흡, 서덕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해 당신이 비행한다.
나는 당신이 남긴 그 허망한 비행운에
목을 매고 싶었다.
-
비행운, 서덕준
길 가다 어깨만 스쳐도 미안해하는 당신은
어찌 내 마음으로 있는 힘껏 밀어닥쳐놓고는
어떠한 말 하나 없이 매정하게
나의 모퉁이를 돌아 나가시나요.
-
추돌, 서덕준
나그네가 혹여나 체할까
찬 물 위로 띄우는 버들잎처럼
나도 위태로이 범람하는 당신 생에 뛰어들리라.
-
버들잎, 서덕준
너는 몇 겹의 계절이고 나를 애태웠다.
너를 앓다 못해 바짝 말라서
성냥불만 한 너의 눈짓 하나에도
나는 화형 당했다.
-
장작, 서덕준
단풍보다 고혹하고 은행보다 어여쁘니
쏟아지는 당신께 파묻혀도
내게는 여한 없을 계절이어라.
-
가을, 서덕준
당신은 사막 위 나비의 날갯짓이어요.
그대 사뿐히 걸어보소서
흩날리는 머릿결에도
내 마음엔 폭풍이 일고 나는 당신께 수몰되리니.
-
나비효과, 서덕준
네게는 찰나였을 뿐인데
나는 여생을 연신 콜록대며
너를 앓는 일이 잦았다.
-
환절기, 서덕준
어둠 속 행여 당신이 길을 잃을까
나의 꿈에 불을 질러 길을 밝혔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눈부신 하늘을 쳐다보는 일쯤은
포기하기로 했다.
-
가로등, 서덕준
눈가에 시 몇 편이 더 흘러내려야
나는 너 하나 추방시킬 수 있을까.
-
추방, 서덕준
겨울이었어
네가 입김을 뱉으며 나와 결혼하자 했어
갑자기 함박눈이 거꾸로 올라가
순간 입김이 솜사탕인 줄만 알았어
엄지발가락부터 단내가 스며
나는 그 설탕으로 빚은 거미줄에 투신했어
네게 엉키기로 했어 감전되기로 했어
네가 내 손가락에 녹지 않는 눈송이를 끼워줬어
반지였던 거야
겨울이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자 했어.
-
오프닝 크레딧, 서덕준
달 옆에 유난히도 빛이 나는 별 하나 있기에 물었더니
그것은 금성이라고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별이 눈짓할 때마다
내 마음에 네가 박동하기 시작한 것은.
-
금성, 서덕준
너는 나의 옷자락이고 머릿결이고 꿈결이고
나를 헤집던 사정없는 풍속이었다.
네가 나의 등을 떠민다면
나는 벼랑에라도 뛰어들 수 있었다.
-
된바람, 서덕준
누가 그렇게
하염없이 어여뻐도 된답니까.
-
능소화, 서덕준
밤이 너무도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옅은 별이
유독 비추는 곳 있어 바라보니
아, 당신이 있었습니다.
-
별 I, 서덕준
붉게 노을 진 마음에
머지않아 밝은 별 하나 높게 뜰 것입니다.
보나마나 당신이겠지요.
-
별 II, 서덕준
퀴퀴한 창고 구석에
녹슨 통기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세월은 겹겹이 쌓여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엔 턱수염같은 잔디가 자라있었다.
나는 먼지를 털고 나서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것은 낡은 기타가 아닌
아빠의 옛 꿈이었음을.
-
옛 꿈, 서덕준
주제를 알면서 감히 꿈을 꿨다
남루하고 깨진 마음에 버겁게도 밀어 넣었다
내 마음에 절망이 스미고
결국 가라앉아 강바닥에 묻힌다 한들
기어코 담고 싶었다.
당신을 구겨 넣고 이 악물어 버텼건만
내가 다 산산이 깨어지고
강바닥에 무력히 스러져 눕고서야 알았다.
그대는 그저 흐르는 강물이었음을.
-
강물, 서덕준
내가 철없었어요.
어린 시절, 성냥불같이 단번에 타올랐던 내 사랑
이렇게 지금까지 그을린 자국이 남아있을 줄이야.
성장통이 끝난 나의 마음 한가운데
당신 얼굴로 그을려 있는
철없던
나의 사춘기.
-
사춘기, 서덕준
너를 그리며 새벽엔 글을 썼고
내 시의 팔 할은 모두 너를 가리켰다.
너를 붉게 사랑하며 했던 말들은
전부 잔잔한 노래였으며
너는 나에게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다.
-
너의 의미, 서덕준
네가 새벽을 좋아했던 까닭에
새벽이면 네가 생각나는 것일까.
아, 아니지.
네가 새벽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좋아해서였구나.
-
새벽, 서덕준
남들은 우습다 유치하다한들
나는 믿는다
영원한 영혼을, 죽음 너머 그 곳을.
그렇다고 믿자.
내가 늙고
어느덧 잔디를 덮어눕고
당신이 있는 그 곳에 가거든
한 번 심장이 터져라 껴안아라도 보게.
나 너무 힘들었다고 가슴팍에 파묻혀 울어라도 보게.
-
천국, 서덕준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더니
너 때문에 내 마음엔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너만의 꽃밭이 생겼더구나.
-
꽃밭, 서덕준
그 사람이 꽃구경을 간대요
뭐가 좋아서 가냐 물었더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말하더군요.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잖아."
날 그런 눈으로 바라만 봐준다면
잠깐 피었다 시드는 삶일지라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꽃구경, 서덕준
그 사람은 그저 잠시 스치는 소낙비라고
당신이 그랬지요.
허나 이유를 말해주세요.
빠르게 지나가는 저 빗구름을
나는 왜 흠뻑 젖어가며 쫓고 있는지를요.
-
소낙비, 서덕준
밤 하늘가 검은 장막 위로
별이 몇 떠있지가 않다.
너를 두고 흘렸던 눈물로 별을 그린다면
내 하늘가에는 은하가 흐를 것이다.
-
은하, 서덕준
- 시인 서덕준 페이스북 페이지 http://facebook.com/seodeokjun
길지만 고요히 읽기를 추천드려요

인스티즈앱
주사이모 8명씩 데리고 다닌 노인네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