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국의 삼국지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최근 접해온 서적의 대부분이 삼국의 역사에 관련된 책이었으며,
심지어는 방금전까지도 삼국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지요.
물론 컴퓨터 게임으로 역사를 재단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책을 읽건 게임을 하건
공통되는 부분이 있기에 마련입니다.
한번이라도 눈이 더 가는 단어가 있고,
한번이라도 더 클릭하게 되는 캐릭터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저에게 있어서 한명의 역사적 인물로 귀결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삼고초려의 주인공
와룡선생 - 제갈공명입니다.
그 출중한 능력으로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서
헤아릴수없는 추종자를 만들어낸 희대의 정치전략가 입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연의" 에서 요괴 도사처럼 묘사된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춘추시대 제나라의 전설적인 재상인 관중이나
한고조 유방을 도와 4백년 왕조의 개국공신이 된 소하 등과 동일선상에서 평가받을 정도로
중국 학계에서 그 수준에 대한 검증이 끝났다고 합니다.
삼국시대 내에서는 조조나 관우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 되지 않는 인물중 한명이지요.
어떤 사람은, 정통성이라는 잣대를 들고 와서
"대업을 이었던 제갈량만이 삼국시대 최고의 인물"
이라 궤변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아주 편협한 시각이 아닐수 없지만, 그런 팬층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갈량이라는 인물의 파급력을 확인할수 있는 대목이지요.

사실, 저는 워낙에 아는것없이 멍청하고 게으른 백면서생이라서
그가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어떤 전략을 펼쳤는지 그 겉줄기만을 겨우 이해할 뿐입니다.
그나마 그렇게 하는데만도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지요.
어떻게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의 사상을 저같이 아둔한 사람이 온전히
습득할수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가 보였던 신념과 충절은 어느정도 느낄수가 있습니다.
본래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에 애정을 느끼고 노력을 다하는 것은
능력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제갈량의 그토록 굳센 의지는
그가 성인이 된 이후의 인생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한번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잠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제갈량이 유비를 처음 만난
삼고초려 에서부터 그 성정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207년) 유비는 가진게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번듯한 근거지야 굳이 따질것도 없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며
거느린 군사는 형주목 유표에게 빌린 수천명에 불과했지요.
그나마 그 군사를 지휘할 제대로된 사령관도 두세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예주목이니, 좌장군이니 쓸데없이 허명뿐인 작위도 빼버립시다.
하지만 제갈량은 유비를 기꺼이 주군으로 모십니다.
당장 눈에띄게 가진게 없어도, 정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4백년을 이어온 한(漢)나라 왕조를 부흥시키겠다는 정통성 말입니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선택입니까!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 모든 영달과 안락함을 버리고,
제갈량은 한실부흥이라는 고된 길을 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신념에 따라 힘든 여정을 떠났다고 칩시다.
그런데 알고보니, 가진게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 군주가 사실 엄청 똑똑한 편이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뒤를 이은 후대의 2대 군주가, 임금은 커녕 저자거리의
평범한 백성 정도의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다면요?
온갖 고비를 넘겨가며 죽을둥 살둥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았더니,
초대 군주인 유비는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나버리고
그 아들인 "아두" 유선이 보위를 잇습니다.
이 유선이라는 사람도 약간의 눈치는 있었는지,
제갈량에게 모든 국가 중대사를 위임합니다.
승상 녹상서사 무향후 익주목 영사례교위 정북 대도독.
이것이 제갈량이 생전에 누린 관직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관료체계로 따지면, 단 한사람에게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서울시장, 검찰총장, 육군 3군단장에
무궁화 훈장을 더한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말이 안되는 수준입니다.
그야말로 나라의 모든 일을 한사람의 손에 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정도의 권력을 가진 다음이라면, 반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까요?
멍청한 군주를 몰아낸 다음, 자신만의 정권을 세우고 싶지는 않겠습니까?
실제로 명령 한마디면 이렇게 될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정도로 모든 권력이 제갈량이라는 인물이게 집중된 시스템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갈량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유비에게 그렇게 약속을 했고,
그 아들인 유선에게도 동등한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온 나라의 권력을 한손아귀에 쥐고 있어도,
모시는 주군이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어도
제갈량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게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정권내부의 일 말고, 바깥 일인 북벌전쟁은 어떻습니까?
주적인 조비, 조예의 위나라는 전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북중국의 막대한 경제력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인구수로 따지면 5배 이상,
실제 전쟁에 동원된 군사수로 따지면 2~3배 이상의 격차였지요.
거기에 더해, 군사 수 뿐만이 아니라 주 자사 혹은 사령관레벨이상의
인재측면에 있어서도 촉한은 절대적인 열세였습니다.
"도저히 이길수가 없다"
이 말은 아마도, 모든 촉한 관리들의 마음속에
박혀 있었을 겁니다.

이정도 되면 포기하고 싶지 않을까요?
20년넘게 살인적인 공무에 시달리며 밤을새워 싸워왔는데도 이길수 없는 적을 만난다면, 항복해서
그만 편안하게 살고싶지는 않을까요?
내가 싸우던 안싸우던, 속해있는 집단이 질 것이 뻔한 상황이니,
어차피 똑같은 것 아닐까요?
하지만 제갈량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올때부터, 유비와 세번 만나 세상의 일에 대해 논할때부터,
유비가 유언을 남기며 자기 아들을 잘 보필해 달라는 명을 받들때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들건, 이길수 있건 없건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처음에 지키기로 했으니 끝까지 밀고 나가는것 뿐입니다.

제갈량이 던지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난관이 닥쳐도, 심지어 목표하는 것이 달성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뜻입니다.
금전적 가치에 치여,
현실에 부딫혀 스스로의 꿈을 잃고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에게
이와같은 공명선생의 교훈이
약간의 힘이 되지는 않을까요?

인스티즈앱
하향혼 했지만 후회없다는 와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