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지호.
그를 처음 만난 건 오랜만에 간 클럽에서였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그.
한눈에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나랑은 다른 세계의 사람인 거 같아
무대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그에게 인사 한 번 건네지못했고
그와의 인연도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교양수업시간때 보게 될 줄이야.
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어, 저기 혹시 저번에 클럽에서 공연한..."
"네?"
"아니, 저번에 클럽에서 공연하신 분 아니세요?"
"아... 어떻게 알아보셨네요?"
"네. 공연 너무 멋있었어가지고...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아직 초짜라 알아보시는 분들 거의 없는데 영광입니다."
"아니, 영광이라니요! 같은 학교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렇게 운좋게 그와 말을 트게 되고,
나는 그와 서서히 친해져갔다.
연락처도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카톡도 전화도 하다가
영상통화까지 종종하게 된 우리.
그는 공연하기 직전엔 늘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야, 갑자기 영통은."
"대학축제 무대에 서게 됐는데 대기시간 이제 얼마 안남았단 말이야. 떨려 죽겠어."
"근데 왜 나한테 전화해."
"그냥.ㅋㅋㅋㅋㅋ"
"잘할 거야! 늘 하던데로만 해. 그러면 되지."
"역시 네가 짱이야. 고맙다."
나도 그의 공연을 종종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무대 위의 그는 영상통화로 떨린다고 중얼중얼 거리던 모습이
낯설 정도로 혼자서도 너무나 잘하고 있었다.
처음 그를 본 무대에서 그랬듯이.
그와 친해질수록 나는 그가 이성으로 느껴지는데
과연 그도 날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늘 내 발목을 잡았다.
자기 학과 엠티로 지방에 간다던 그.
분명 과 안에서도 인기 엄청 많겠지?
엠티내내 예쁜 여자애들이랑 있겠지? 하면서
혼자 방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야, 영통돼?'
'헐 안돼. 나 지금 쌩얼이란 말이야.'
'뭐 어때. 받아. 5초후에 바로 걸거야.'
정말 5초 후에 걸려온 그의 전화.
나는 쌩얼을 황급하게 손으로 반은 가리고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엠티면 가서 잘 놀아야지. 왜 나한테 영통이나 하고 있어."
"아, 몰라. 피곤해. 그래서 혼자 잠깐 나왔어."
"산책?"
"어. 완전 깜깜해."
"조심해. 납치라도 당할라."
"납치는 무슨. 너나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하는데요~ 신경쓰지 마세요."
"신경을 왜 쓰지말라니 말이야, 방구야. 야!"
"왜!"
"지금 내 옆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2. 유아인.
대학 동기로 만난 그와 나.
처음엔 나도 그를 동기라고만 생각했다.
"야! 너 왜 과제 있는 거 안말해줬어!"
"내가 네 숙제 알리미는 아니잖냐."
"저...저 냉정하게 말하는 것봐. 동기사랑 나라사랑이거늘!"
그렇게 편하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가 좋아지고 말았다.
하지만 난 잘 알고있었다.
그는 날 친구로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야, 오늘 술자리 너도 오지?"
"갈까말까 생각 중이야."
"당연히 가야지. 뭔말이야."
"아니, 가면 늦게까지 놀 거 같은데 막차 끊기면 갈데도 없잖아."
"막차 끊기면 우리집에서 자고 가면 되지."
"뭐?"
"뭘 그렇게 놀라? 우리 사이에 남자 여자 그런 거 없어진지 오래 됐잖아."
"됐거든?"
날 무슨 남자 친구 정도로 생각하는 그.
나는 그를 잊으려 소개팅이고 미팅이고 되는 데로
나가기 시작했다.
"야! 너 요즘 왜이렇게 연락이 안돼."
"나 요즘 소개팅 몰려서 바빠."
"뭐 소개팅?"
"응. 소개팅."
"이야, 다컸네. 다컸어. 그래서 뭐 좋은 결과는 있냐?"
"아직까지는."
"네가 그렇지. 뭐."
나는 그의 말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너 지금 뭐라고 그랬냐?"
"갑자기 왜 또 정색을 하고 그래? 농담이야. 농담."
"내가 들었을때 기분 나쁘면 더이상 농담이 아니지.
그런 식으로 사람 기분 진짜 뭣같이 만들지마."
나는 그렇게 그에게 쏘아붙이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섰다.
미안하다는 그의 연락도 무시해버리고선.
다음 날 그는 내 눈치를 보는 건지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야."
"..."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고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어느새 방학이 성큼 다가와있었다.
"야...방학 잘 보내라."
그의 인사에도 여전히 나는 대답 한 마디 없이
그렇게 학교를 나섰다.
그리고 그날 밤,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을까 말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받은 전화.
"잠깐만 나와봐. 할 말 있어."
"뭔데."
"나와서 이야기하고 싶어. 제발 나와주라."
처음 들어보는 그의 간절한 목소리에 나는 그를 만나러 나갔다.
"네 말대로 나왔으니까 이야기해. 무슨 말 하고 싶은데."
"미안해."
나는 말없이 그저 땅만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나 그동안 생각 많이 했어. 네 생각."
"...내 생각?'
"어. 대학 입학하고 나서 너랑 늘 어울려 다녀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너 없으니까 그냥 뭐가 텅빈 기분인데 뭘로도 그게 해소가 안돼."
"그래서 하고싶은 말은 그게 다야?"
"그동안 생각없이 했던 말들 다 미안해.
그리고 나 너 좋아해."
"뭐?"
"좋아한다고. 그걸 너 없는동안 알게 됐어."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어리둥절한 내 곁에 그가 더 바짝 다가왔다.
"좋아해...정말."
3. 이제훈.
힘들게 취직된 회사 출근길 버스 안에서
나는 그와 처음 만났다.
전날 긴장한 탓에 푹 자지 못한 나는 옆자리의
남자에게 기대어 졸았는데
그 옆자리의 남자가 바로 그였다.
회사 앞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일어난 나는 급하게 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어엇, 미안해요. 많이 무거우셨죠?"
라고 하는데 보이는 그의 자킷에 묻은 내 침...
"악! 이걸 어떻게 해요. 정말 죄송해요. 세탁비 드릴게요.
번호 좀 알려주세요. 연락 드릴게요."
"괘...괜찮은데."
"아니에요. 꼭 물어드릴게요. 알려주세요."
그렇게 그와 나는 연락처를 주고 받았고
그가 우리 회사 근처의 회사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탁비 대신 밥이나 사달라는 그의 부탁에
그에게 밥을 산 나.
우리는 서로 밥 먹을 사람 없을 때
같이 밥을 먹자는 농담을 시작으로
만남이 잦아졌다.
그런데 분명 이 건 썸인 거 같긴한데...
어째 고백을 하지 않는 그.
2달이 넘어가는 동안 그는 내게 어떠한
감정 표현도 하지 않았다.
"제훈씨."
"네?"
"제훈씨는 여자친구 안만들어요?"
"???네?"
"여자친구요. 만들 생각 없어요?"
"아...흠. 글쎄요."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마음.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나홀로 들어간 술집에서 과음을 하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고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아가씨, 뭐 힘든 일 있어요? 엄청 마셨네."
"뭐야. 댁은 누구신데요."
"그건 차차 알아가는 건 어때? 나랑 같이 2차 하면서."
"관심 없어요."
"에이, 빼지말고. 가자니까."
"관심 없다구요!"
내 단호한 말투에도 남자는 끈덕지게 내 팔을 물고 늘어졌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야, 너 뭐야. 당장 팔 안놔?"
"넌 뭔데, 새끼야."
"남자친구. 됐냐?"
그의 말에 남자는 투덜거리면서 사려졌다.
그의 부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물었다.
"제훈씨가 언제부터 내 남자친구였어요?"
"오래전부터요."
"정말? 왜 난 몰랐지?"
내 말에 그는 잠깐 웃더니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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