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영웅 김동수씨 "자꾸 생각나는데 잊으라고만"
칼을 보는 순간 '이 쓸모도 없는 손, 잘라버려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화장실로 들어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김씨는 딸에게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조치를 받고 귀가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가족들은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김씨는 "모든 생활이 끊겼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은 학원비를 아끼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애들 엄마도 일을
나간다"며 "이곳저곳 병원치료를 다니느라 정부에서 달마다 나오는 108만원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제주에 있으면서 정말 괴로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 세월호가 모두 해결된 것인 듯 왜 그때의 일을 못 잊느냐고 말하는 것"이라며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창문만 봐도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고 괴로워했다.
김씨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다.
그때의 충격으로 머리가 너무 아파 머리카락을 모두 잘랐고, 몸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때도 종종 있다.
그는 "몸이 구석구석 아프고 심지어 손이 제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걸 제가 아닌 다른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병원에 가도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설명 말고는 약만 먹으라고 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학생들을 구조하다 몸 상태가 매우 나빠진 김씨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의 의사·상자 신청을 했다.
하지만 관련 서류가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로워 아직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김씨가 심사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서류보완을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병원치료를 받는 환자가
관련 서류를 제때 모두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의사·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들이다. 의사자의 유족에게는 법률이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보호, 취업보호
등의 예우를 해주고, 의상자에게도 보상금이 지급된다.
김씨는 "국회에도 갔고 도청에도 가서 하소연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세월호 특별법은 생존자는 뒷전이고 유가족이 먼저가 됐다. 살아남은 우리에겐 무엇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붙여진 김씨의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는 '0416'이었다.
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을까. 김씨에게 세월호는 잊을 수 없는,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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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다치고 힘들어서 일도 못하는 상황인데 대출 받을 여건이라도 만들어 달라니 그것도 안되서 힘듭니다
게다가 세월호 생존자인데 돈을 바라냐는 악성댓글까지 김동수씨와 가족들을 힘들게 합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학생들이 객실 창문을 두들기는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지금도 버스 창문을 보면 ‘뛰어내려’라고 한다.
이번 사고로 인해내 자신이 망가졌다. 물체가 없는데도 물체를 잡으러 가고 길도 동서가 헷갈린다
사고후 사우나에 처음 갔는데 (학생들에게)너무 미안해서 따뜻한 물로 한 번도 샤워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차가운 물에 있는 게 보여서 계속 손발에 찢어지게 통증이 온다"
그리고 오늘 또 자해하신 김동수씨...

다른 생존자 역시...
세월호 생존자 "여학생들 마지막 눈빛 잊을 수 없다" 눈물
"바다로 뛰어내리지 못하고 두 손을 떨던 여학생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세월호 사고 생존자 최모씨는 사고 후 남은 후유증을 고백하며 한 숨을 내쉬었다.
화물기사로 일하며 한 달에 12~14차례 배를 타던 그에게 세월호 침몰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고였다.
사고 당시 매점에 있던 그는 배가 기울면서 온수통을 뒤집어 쓰는 바람에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살갗이 모두 벗겨져 1년 넘게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건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여학생들 마지막 눈빛이었다.
최씨는 "온수통을 뒤집어 쓴 상황에서도 처음에는 뜨거운 줄도 몰랐다"며 "정신이 없었고 냉장고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그 사이에 낀 여학생도 봤다"고 고개를 떨궜다.
최씨는 "제가 보트를 끌고 갔을 때 여학생 3명이 같이 있었고 남학생 2명이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며 "남학생은 뛰어내렸는데 여학생들은 높이나 환경 등 여러가지로 무서워서 뛰어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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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글에 일베충들 가서 이니 돈이 필요하냐니 그딴 소리 싸질러놓더라고요
내눈앞에서 바닷속으로 아이들이 사라졌고
그 아이들이 시신으로 올라오는걸 두 눈으로 목격하고
죄책감에 일상생활도 안된다는데 대체... 나라에 대한 반감만 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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