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사무엘 울만, 청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란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는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주름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돼버린다
6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영감의 우체국' 을 통해
다른 사람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으로 덮이며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대라도 인간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유인숙, 빗속의 연가
비가 오는 날에는
당신을 그리워하기에
너무나
너무나 좋은 날입니다
장대 같은 굵은 비를 흠뻑 맞고
종일 울어도
내가 울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의 숨소리 하늘을 날아
날아와서 두 귀에 박혀도
내 귀는 여전히
당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살갗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떨리움은
보드라운 당신의
손길을 닮았습니다
그러하기에 비가 오는 날에는
당신을 사랑하기에
너무나
너무나 좋은 날입니다

니키 지오바니, 선택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그 둘이 같지는 않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원하는 일
그리고 아직 원할 것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일
내가 가야만 하는 곳에
갈 수 없을 때
비록 나란히 가거나
옆으로 간다 할지라도
그저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갈 뿐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느끼려고 나는 노력한다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인간만이
수많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우는 법을 배우는가의 이유이다

제인 허쉬필드, 습관
신발을 신을 때면 언제나
왼쪽 먼저, 그 다음에 오른쪽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금 간 푸른색 잔에
티스푼으로 일곱 번 젓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문 닫기 전에
지갑이 있는지
열쇠가 있는지
주머니 만져 보기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작은 의식들의 약속을 믿게 되었을까
그것들에 의해 어제 알았던 우리가
오늘의 우리가 되고
내일의 우리가 되리라는 것을
칫솔을 쓴 후 흔들어 말리는 방식이나
목욕할 때 맨 먼저 씻는 부위처럼
너무 익숙해서 생각 없이 해 버리는 일들
타인들에게서 배운 습관들과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만의 습관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많이 결정짓는지
아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여행 가방을 열어 보라
거기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스웨터
밝은색 줄의 목걸이, 호박 귀걸이
이 모두가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것들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나라고
그러나 습관은 다르다
습관이 선택하고
그것의 충실한 말인 우리는
먹을 것 한 조각에도 입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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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꽃은 진짜 거의 호평밖에 못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