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장브금 솔라-꿈에
늦여름 창가로 스며온 찬 밤공기가 나를 스쳤다.
식은 땀 가득 나쁜 꿈에 막 잠에서 깨어난 참이다.
그 이른 봄도 이렇게 서늘한 날이었지,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흘러나온 혼잣말에 흠칫 입을 막는다.
말 없이 걷던 마포대교. 끝없이 펼쳐지는 검은 강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휘인. 내 오른손을 잡은 채 습관적으로 손가락 하나 하나를 매만지던 그 작은 손의 감촉이 잊히는 날이 올까.
나는 저 수면에 비치는 불빛들이 싫어. 저 무구한 찬란함, 동그랗게 박힌 불빛 하나 하나는 드글드글 끓는 치열한 삶으로 이루어져 있겠지. 우리도 서울의 야경을 빛내는 비참함들이 되겠지. 꼭 오징어잡이 배 같아, 이리 와, 이리 와. 우리는 알면서도 그 찬란함에 이끌리고 있잖아.
꿈에도 잊히지 않는, 나만이 아는 그 목소리. 왜 너는 꿈에서 까지 나를 괴롭히는 걸까. 왜 나는 꿈에서 까지 나를 그리는 걸까.
또다시 누워 눈을 감자마자 머릿속 가득 피어오르는 기억.
그러고 보면 너를 처음 만난 것도 이리도 서늘하던 늦여름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던 금색 머리칼, 그 틈새로 나를 향해 빛나던 그 눈동자. 나는 아무 말 없이 미소지었고, 내게 다가온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게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어렴풋 생각했다. 사랑의 이름은 여러가지임을 알고 있었지만, 웃음 하나에 느껴지던 마음시림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는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이제 생각해보니 너는 꼭 추위같았다. 휘인, 이름을 직접 발음할 때, 입 밖으로 새던 차가운 공기마저도.
00아, 무슨 생각해?
내게 자주 묻던 질문. 네 앞에서 유독 말이 없어지는 내게 너는 자주 서운함을 표했다. 다 연기였겠지. 다 거짓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내가 너와 마주본 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휘인은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앞서가는 사람. 나 혼자서만 그녀를 알고 싶었을 뿐, 그녀는 내게 궁금한 것이 없었다. 나는 항상 같았고 그녀 혼자서만 달랐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원, 나의 휘인. 그럼에도 내가 궁금하다는 듯 말해, 나의 결핍을 채워주던 깊은 사람.
네가 모르는 것이 있었던가, 네가 못하는 것이 있었던가. 잠시만, 그냥, 잠이 안와서.
하룻밤 새 만들었다던 너의 노래.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느 낯선 나라의 언어로 부르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의 목소리. 네 손 끝에서 나오는 금속성 현 특유의 소리들. 이제는 그 노래가 기억나지 않아. 소파 아래 앉아있던 나를 내려다 보며, 흐리게 짓던 그 웃음만이 생생할 뿐이다.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우리에게도 결국 이별은 찾아왔다. 00아, 잘가. 이른 봄, 봄볕에 눈이 녹아 유독 길이 질척거리던 그 날. 눈물이 가득 고인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휘인은 끝까지 그렇게 흐리게도 웃었다. 추위와 같이 와서 추위와 같이 사라진, 품 속 깊이 파고들어 온 몸을 다 아리게 한 그녀.
나를 잊어줘. 나를 생각하지 말아줘. 서로에게 받았던 사랑만 기억하고, 서로 사랑했다는 건 잊자. 우리 그렇게 헤어지자. 나는 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까. 여느 때와 같이 그저 순순히 휘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리가 만났었다는 사실은 잊자. 고마웠어, 나에게 지워지지 않을 사랑들을 줘서. 행복하게 잘 지내, 내 여자친구.
마지막 말을 끝으로 먼저 뒤돌아 가던 휘인의 쓸쓸한 뒷모습. 이제는 달려가 안아줄 수 없는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기억.
다시, 미처 떠올리지 않았던 너와의 기억을 되새긴다. 나쁜 꿈에 빠져들며 너의 얼굴을 매만진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네 얼굴, 눈을 뜨면 사라질 네 모습을, 검게 내리감긴 눈꺼풀 위에 또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2.
권장브금 아이유-복숭아
시끄러워.
조용한 밤을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 한무리의 취객들이 왁자지껄 몰려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앳된 목소리들, 간간히 웃음소리가 섞이는 게 젊은 사람들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귀를 잡아끄는 웃음 소리. 분명 익숙한 이의 웃음 소리였다.
흐핫, 흐하하학! 꼭 소리라도 지르는 것 마냥 환하게 웃던 그 애, 정휘인.
황급히 창틀에 매달려 취객 무리들을 확인해본다. 없다. 그럼 그렇지, 잘못들었겠지. 아니 맞다면 또 어쩔 건가. 이제야 찾아가 어쩌려고.
어쩌면 또 아직도 날 좋아한다 할지도 모르지. 뭐든 내 생각대로 하나하나 움직이던 정휘인. 그 조막만한 얼굴로 짓는 표정들은 왜 그리도 사랑스러웠는지.
내게만 보여주던 애교는 또 어땠던가. 우리 엄마한테도 안하는 거야! 내 목을 끌어안고 속삭이는 사랑의 말들. 웃는 게 사랑스럽던 그 애. 00아, 나는 네가 너무 좋아. 사랑해. 어디 가지마. 내가 그 애에게 어떤 불안의 말이라도 했던가. 그렇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항상 정휘인은 내게 매달려 사랑해, 끝없이 말하곤 했다.
눈을 감고도, 아주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그 애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애는 그렇게도 조그마하면서, 그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주변을 물들였다. 그러니 눈이 안갈 수 없지.
그래. 그렇게 밝은 그 애가 나의 것이기만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나는 그 애를 숨겨두고, 오직 나만의 것으로 대하고 싶었다. 미칠 듯한 소유욕에 그 애의 모든 것들을 제약해보기도 했다. 금방 속상해 울먹이면서도, 괜찮아, 00아, 네가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할게. 나는 너만 있으면 돼. 너한테만 사랑받으면 돼……. 그렇게 말하는 그 애에게 결국 나는 아무 제약도 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결국은 나만을 위해 반응해주는 나의 정휘인이었으니까.
나와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더라도, 다른 사람이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되면 표정을 바로 굳히던 정휘인. 나는 그런 정휘인을 볼 때마다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괜찮다니까. 신경쓰지 마! 내가 그렇게 말하고서야 다시 슬쩍 웃던 정휘인. 그런 걸로 뭐라고 한 적 없잖아. 왜 그래. 농담으로 던진 질문에,
그냥, 네가 좋아하는 내 모습은 너한테만 모여주고 싶어서.
그 애는 그런 사람, 모든 걸 내게 맞추던.
진심이야?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무겁게 내려놓은 내 말에 얹혀진 질문. 진심이야. 더는 정휘인을 사랑할 수 없던 나에게 최선의 선택. 미안해, 그런데 진심이야. 이제는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거 같아. 더 이상 미안해지기 싫어.
가만히 정휘인의 얼굴을 살폈다. 눈물이 가득 고여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았다.
휘인아, 잘가. 나를 기억하지 말아줘. 서로 받았던 사랑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다 잊자……. 정휘인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하게 잘 지내, 내 여자친구. 마지막 말을 내뱉고 뒤돌아 떠나면서까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나 역시 애써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야했다.
이제는 후회로 밖에 남지 않은 사랑. 혹시나 정말 그 애일까, 다시 창틀 밖으로 몸을 뻗어 한 무리 사람들을 내려본다. 그리고 나직히 내뱉어 본다.
정휘인, 거기 있어?
1vs2
게녀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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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영양사들이 없애려해도 못없애는 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