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대한 느낌은 결혼 전후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명절 연휴에 틈틈이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났다. 1년에 한번 간소하게 제사상을 차렸던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런데 시댁은 남성들로 구성된 일가 친척이 여러 집을 오가며 제사 지내는 전통적인 집안이었다.
신랑을 비롯한 집안 남자들은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시집온 출가외인이자 제삿일 거들어야 하는 일손이었다. 오랜 만에 고향을 찾은 남편은 결혼 전 나의 모습처럼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명절은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었고, 내게는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시간이 됐다. 맞벌이 부부로 함께 일하는데 왜 내게만 또 다른 노동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 걸까.
![[이현미의엄마도처음이야] 23 여자만 부엌에..제사문화 이대로 괜찮을까요?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6/26/8/e/a/8ea33f3ef592afa6360466c59190fab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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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 앞치마를 차려입은 한 여성이 명절 음식상을 나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결혼 생활 4년간 남편은 두고두고 나의 구박을 받을 명언을 남겼다. “엄마(시어머니)가 다 하지, 너는 별로 하는 일도 없지 않느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먹는 것도 힘들다”, “예전 여자들에 비하면 덜 고생하는 거다”라고 했다. 가슴에 불이 났다.
시어머니가 제삿상을 차리시는 건 맞다. 재료 준비와 요리에 있어 나의 역할은 미미하다. 시어머니는 집에 광이 반짝반짝 날 정도로 청소에 보람을 느끼고 남편과 아들을 ‘섬기며’ 자기 만족을 찾는 분이었다. 집안일을 억지로 했던 친정 엄마와 달리 매일 반복되는, 별로 티나지 않는 일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분이었다. “청소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애들 도시락 쌀 때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직장 생활이든, 집안일이든 자신의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만족하는 사람에게선 삶의 의욕을 배울 수 있어 좋다.
문제는 이런 성정 탓에 집안일이 서툰 며느리의 참여를 달가워하지 않은 점이었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보는 음식이라면 정갈하고 깔끔하고 맛있어 보여야 했다. 하지만 내가 남편처럼 마음대로 쉴 수는 없었다. 나는 명절에 ‘시어머니 껌딱지’가 돼야 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몇 시간 동안 시어머니가 계신 부엌에 서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고 남편은 “너는 별로 하는 일 없지 않냐?”고 했던 것이다. 입술을 손가락으로 꽉 꼬집어 주고 싶었다.
![[이현미의엄마도처음이야] 23 여자만 부엌에..제사문화 이대로 괜찮을까요?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6/26/5/a/7/5a76864d805ae887bf0aee2188ecb2f4.jpg)
제사상에 만든 이의 노고가 담긴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결혼 전 아빠 쪽은 시댁과 분위기가 비슷했지만, 엄마 쪽은 명절에 남녀 모두 함께 음식을 차렸다. 외숙모가 만두소를 내놓으면 외삼촌과 그 자녀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초등학교 때 이 화기애애한 공동 노동 현장에서 친적 오빠의 능숙한 요리 솜씨에 감탄했던 적도 있었다. “감자 부침개 먹고 싶다”고 말하자, 당시 대학생이었던 친척 오빠는 감자를 가져와 강판에 척척 갈았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바삭하게 부쳐 내놓았다. 이 때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 나는 이 오빠가 군복무할 때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외가의 풍경이 한국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모습이라는 걸 결혼하고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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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텝인데 난 내 자식 절대 아역 안 시킬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