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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2042 출처
이 글은 9년 전 (2016/9/22) 게시물이에요




 끝난 사랑을 위해 펜을 든다 | 인스티즈

채규판, 그 여자라는 나의 나무는




햇빛이 유리속으로 기어들어갈 때

당신은 나를 향하여 웃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작은 벌레가 되지만

나무가 되는 나의 여자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빼앗을 수 없는 빙판이라고 하지만

내사 햇살이 되어

그 여자의 앞으로 걸어갈 때

그 여자는 왜 내 곁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입니까

바람이 불면서 노을이 밤속으로 꺼꾸러지고 있습니다

강폭을 갈라내는 동안

무수히 쏟아지는 건 별입니까

내 목숨입니까

내가 그 여자에게 약속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까닭의 전부이지만

그는 나에게 아주 작은

눈빛 하나조차 떨구지 않았습니다

친구여

그는 왜 나의 나무가 되어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는 것입니까

나는 왜 나무기둥처럼 서서

나무가 된 그 여자의 허상을

깊이 앓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을 때

그는 하나씩 옷을 벗어야 하는데

내가 미소를 흘리고 있을 때

그는 작약꽃처럼 뜨겁게 달아올라야 하는데

차갑게 내려다보는

그 여자의 발치에서

나는 떨고 있습니다

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끝난 사랑을 위해 펜을 든다 | 인스티즈

양중해, 낮달




처음부터 당신은

나의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외로운 고갯길에서의

그것은 인연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고개 위에서 휘파람을 불었고

날리는 엷은 사

스치는 구름 사이

당신은 선녀였습니다

 

내가 걸으면

먼 산도 가듯

당신도 거닐었고

내가 발길을 멈추면

우뚝 선 산처럼

당신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리도 아득히

너무나 멀고 높은 데서

빛나지도 않고

있으면서도 없는 듯

당신은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기다리는 이도 없는 못가를

어찌하여 나는

그렇게도 서성거렸던 것일까요, 또

 

호수 가득히 내려앉은 저녁을

거기 조용히 잠겨 있는 것도

아, 당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세상은 하늘처럼 넓어도

없는 듯이 있는

당신뿐이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더더욱 환하게 되살아나는

당신의 얼굴 뿐이었습니다






 끝난 사랑을 위해 펜을 든다 | 인스티즈

김미선, 남이 되기 쉬운 나




이슬이 내린 아침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처럼

그렇게 살아왔네

 

한 대지 위에

함께 살면서도 가끔은

남이 되기 쉬운 나

나를 안아줄 사람

아무도 여기에 없네

 

나 사랑하던

너 아닌 누구라도

함께 가야할 시간인데

 

검은 돛배에

자리를 함께 해 줄

길 잃은 작은 새도 좋아라

 

나를 안고

멀리 떠나가 줄 이 찾아서

지금도 나는

거리를 걷는다






 끝난 사랑을 위해 펜을 든다 | 인스티즈

이정하, 허수아비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 세월 견뎌왔느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끝난 사랑을 위해 펜을 든다 | 인스티즈

김재진, 끝난 사랑




끝난 사랑을 위해 펜을 든다

모든 건 끝났다

마침표를 찍고

기진해 누워 있던 젊은 날의 기억

지나간 시간을 묶어 망각 속으로

발송을 마친 사람들이 돌아온다

사랑은 끝났다. 철없는 일이라 혀를 차며

행인들 속에 손 내밀어

포승을 받는다

지나간 사랑은 묶여 어디로 가나

링거 꽃고 혼수상태로

사람들의 청춘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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