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강준
이웃집엔 그가 살았다.
엄마끼리 친해서 예전부터 같이 가족끼리 여행도 가끔가서
나는 그와 어릴 적부터 오빠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다.
"학교 가니? 같이 가자."
"그래, 오빠."
그의 집은 부유했으며 그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까지 완벽한 그야말로 엄친아였다.
나는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도 그에게 늘 벽 같은 걸 느끼곤 했다.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의 벽.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뒤늦은 사춘기라기엔 그 변화가 좀 컸다.
"강준이, 걔 어렸을 땐 순하고 말도 잘듣던 애가 요즘 변했더라."
"에이, 강준오빠가 뭘 또 변했다고 그래. 엄마도 참."
"아니, 정말이라니까. 눈빛부터가 좀 달라졌어.
하긴 어렸을때부터 걔 아빠가 걔를 오죽 힘들게했니.
무조건 1등 아니면 아들 취급도 안한다고 그렇게 얘한테 윽박을 지르더니
결국 얘가 어긋나기 시작한 거지."
엄마의 말에 나는 설마설마 라는 식으로 대꾸했지만 사실은
엄마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가 아무리 달라졌다한들
나한텐 여전히 친절하고 다정했으니까 이런들 저런들 상관없지 않나 싶었다.
"어, 오빠 담배펴...?"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어? 어..."
나는 담배를 피는 그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물론 누구에게도 그가 담배를 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당일치기로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 그의 부모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는데 아마 그에게
바람이라도 좀 쐬게 해주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떠올린 여행같았다.
나야 뭐 바다구경하면 좋지 싶어 군말없이 따라나섰다.
그의 아버지는 여행을 가는 동안에도 그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았는데 바닷가에 도착해서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의 어머니와 우리 부모님이 그의 아버지를 만류하며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놀자는 말을 하면서 그의 아버지를 바닷가 근처 포차로 데려갔다.
바닷가에 둘만 남은 그와 나.
예전에는 바다만 보면 좋아서 뛰어다니던 그가 이젠 별 감흥도 없어보였다.
"오빠 바다 좋아했잖아. 근데 와도 별로 좋아보이는 기색이 아니네?"
"아니, 좋아."
"에이, 말로만."
"다른 건 모르겠는데 너랑 있는 건 좋아."
"어?"
당황스러운 그의 말에 내가 놀라자
그는 쓸쓸하게 미소지어보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점점 위태로워보인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는 내가 뭐라도 된 거마냥 괜한 의무감에 휩싸였고
그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주자 하는 심정으로 그의 집을 찾았다.
"어, 니가 무슨 일이야?"
"우리 사이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하나. 그냥 오빠랑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몰라. 어디 갔나보지, 뭐. 일단 들어와. 커피 타줄게."
"응..."
자신의 부모님을 남처럼 말하는 그.
그는 날 자신의 방으로안내했다.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 보는 그의 방은달라진 그만큼낯설고
살짝 불편했다.
"그래서할 이야기가 뭔데?"
그가 물었다.
"아니...요즘 오빠가 너무 변한 거 같아서."
"다들 그 이야기네."
"아, 그랬어? 아마 다들 오빠가 걱정되서 그렇게 말한 걸 거야..."
"걱정? 그냥 날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픈 건 아니고?
내가 보기엔 예전의 나라기 보단 말 잘들었던 모범생이 보고싶은 거 같은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오빠.
모범생이니 뭐니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의 오빠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그러는 걸거야, 다들.
나도 마찬가지고."
"위태? 내가 위태로워보인다고..."
"응."
내 말에 그는돌연 웃음을 크게 터트리더니
내가 다가왔다.
"내 생각엔 지금 나랑 단둘이 있는 네가 더 위태로워보이는데."
2. 조정석.
우리학교에 미술 교생으로 온 그.
"안녕하세요. 이번에 ㅇㅇ고등학교 교생으로 온 조정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잘생긴 얼굴과 밝은 성격에
학교 여학생들은 모두 난리가 났다.
거기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쌤, 쌤! 오늘도 진짜 잘생겼어요."
"너는 뭘 당연한 걸 호들갑 떨면서 이야기 하고 그러니?"
농담도 잘 받아주는 그.
그는 어딜가나 인기만빵이었고
그의 자리엔 다른 친구들이 준비한 초콜릿과 사탕이 올려져있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차별점을 두고 싶었는데
다행히 내 전공이 미술이어서 전공을 핑계로 그에게
늘 이것저것 묻곤 했다.
"쌤, 쌤이 보기엔 이 그림엔..."
"내 생각엔 이 정도는 네가 충분히 해결할 문제인 거 같은데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니?"
"내가 쌤을 좋아하니까요."
내 당돌한 고백에 그는 조금 당황한 거 같았다.
"에헤이, 그런 농담하면 못써요."
"농담 아닌데."
"어휴, 요즘 애들 참 당돌하다니까."
"진심인데. 나 쌤 좋아해요. 몰랐어요? 다 티났을텐데."
내 말에 그는 돌연 정색했다.
"어, 거기까지. 선생님 가지고 그렇게 장난 치는 거 아니야."
나는 갑자기 정색을 하는 그가 무서워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 그가 정말 좋았고
동시에 서운했다.
어리다고 해서 생각도 어리고
아무한테나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언젠간 알아주겠지 싶어 나는 그에게 계속
내 마음을 표현했다.
"쌤, 오늘도 진짜 멋져요."
"어, 어. 그래."
그 날 이후 다른 애들한텐 여전히 친절하면서
나한텐 선을 긋는 그.
"쌤, 오늘 물어볼 게 있는데 수업 끝나고 잠깐만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오늘은 좀 바쁜데."
"아, 그럼 할 수 없죠...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하고 내가 사온 비타민 음료를 건네도 그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울음이 터질 거 같은 기분을 간신히
꾹 참고 돌아섰다.
그 이후 나는 그에게 더이상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마주치면 그저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게 전부였다.
매일 교무실에서 그를 찾는 것도 그만두고
물어볼 게 있으면 다른 선생님한테 찾아가 물어보았다.
교무실에서 그의 시선이 느껴져도 애써 모른 척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청소당번이라 학교 뒷편에 쓰레기장에서 반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버리고 오는 길.혼자 담배를 피러 나온 그와 마주쳤다.
"요즘따라 찾아오지도 않고 좀 서운하다?"
그가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쌤이 먼저 저 무시했잖아요.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자기 혼자 그저 풋사랑이겠거니 짐작하면서 장난처럼 생각했잖아요.
그러고나서 갑자기 차갑게 대하고...
난 진짜 진심이었는데..."
"울어? 아, 선생님이 미안해...그만 울어."
나는 그 자리에서 휙 돌아서서
그에게서 멀어질때까지 뛰었다.
그 이후그는 노골적으로
날 바라보시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나는
못본 척했다. 괜히 쓸데 없는 기대감을 가졌다가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 미술 입시작을 준비한다고
미술실에 혼자 남아있는데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미술실 문이 열렸다.
그였다.
"혼자 준비하는 거 힘안들어?"
"네. 괜찮아요."
나는 애써 차갑게 그를 대하려고 노력했다.
내 그림에만 집중하려 하는데
뒤에서 계속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슨 할 말 있으세요?"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있지. 할 말."
"...뭔데요."
"너 다 의도한 거지."
"무슨 의도요."
"좋아한다고 뜬금없이 고백을 하더니
갑자기 또 날 피하고 그러더니 갑자기 울면서
진심이라고 하고 내 머리를 아주 돌아버리게 할라고 의도한거잖아, 너."
"지금 무슨 말을..."
"이거 하나만 묻자. 네 감정 아직도 유효한 거야?"
나는 그의 말에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 한 번 가졌던 감정 마음대로 접었다가 폈다 하고 그럴 애 못돼요."
내 말에 그가 다가왔다.
"네가 먼저 시작한 거야."
3. 시우민.
대학엠티때 같은 조가 되면서 친해진 그와 나.
선배인 그는 나와 대화코드가유달리 잘맞았다.
"너는 진짜 나랑 대화 코드가 딱딱 맞는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후로 나만 보면 반갑게 인사해주는 그.
"안녕! 안녕!"
그에 따라 나도 반갑게 인사해주는 나.
우리는 과에서의남매로 이미지가 굳어져갔다.
"어? 게녀랑 우민남매네?"
라는 선배들의 말에 웃는 나.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쩐지 좋아보이진 않았다.
"남매로 보이나..."
나는 그의 반응에 뭐야 나랑 남매로 보이는게 창피해요라고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의 말에 뭐야 하면서 웃어대는 나.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원래의 활기찬 모습으로 금방 돌아오는 그.
그렇게 그와 남매처럼 친하게 지내던 어느 날,
바야흐르 엠티의 날이 다가왔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마시게 된 과 사람들.
그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 오늘 좀 많이 마시긴 했다."
"저도요."
"밖에 바람 좀 쐬러 나갈까?"
"좋아요."
그렇게 숙소를 나와 한적한 시골 거리를 걷게 된 그와 나.
그런데 술에 취해서인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그가 어딘지 낯설었다.
"하..."
"속 안좋아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관계가 너무 답답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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