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비난도 부족할 만큼 도를 넘은 국정 농단과 국기 문란을 대통령 본인이 손수 주도했다는 검찰의 발표에 국민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을 기다리던 국민에게 또 한 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수사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며 “앞으로 검찰의 모든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일갈했다.
물론 박 대통령 입장에서 수사 결과가 억울할 수는 있다. 변호사를 업으로 하는 필자 입장에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박 대통령에게 충분히 준비하고 소명할 시간을 줬다. 우선 검찰은 최순실씨의 구속 기간이 20일까지인 만큼 그의 혐의를 확정하기 위해서도 최소한 지난 15~16일 안에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조사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에 검찰은 다시 여러 차례 박 대통령에게 ‘최씨의 구속 기간 만료 이전에 대면조사에 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기에도 응하지 않았다. 검찰로선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소명의 시간을 박 대통령에게 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마땅하다. 본인이 억울하다면 검찰에 출석하든지 대면조사를 받든지 해서 결백을 주장하면 된다. 우리나라 국민은 피의자가 되면 누구나 이와 같은 절차를 따른다. 이런 절차 외에는 현행법상 검찰 수사를 피해 갈 어떤 방법도 없다. 통상 형사사건에서 피의자에 준하는 참고인이 조사를 거부하거나 도주하는 경우, 객관적인 증거가 명백한 상황이라면 검찰은 그를 피의자로 전환한다. 심지어 그에 대해 대면조사를 하지 못했어도 기소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얼마 전 검찰이 롯데그룹 서미경씨에 대해 대면조사 없이 기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시론]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거부할 수 없는 법적 이유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9/22/d/2/3/d231debd10074e79f235a8b4d2aece5f.jpg)
검찰이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확정한 것은 현행법상 어떠한 의미로도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일반 국민이라면 형사소송법 200조 2항에 따라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거나 불응할 우려가 있을 때, 또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당연히 해당된다. 검찰은 체포영장까지 청구했을 것이다. 이게 일반 국민에게 적용되는 이른바 ‘법’ 규정이다.
대통령은 헌법 제84조에 의해 내란과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면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까지 거부할 권리를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도 우리나라의 국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스스로 수사 원칙을 지켜야 한다. 수사를 거부하는 피의자에게는 수사에 응할 것을 요청하고 대면조사에 임하라고 통보해야 한다. 이것은 피의자와 협의할 사항이 아니라 검찰이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신분의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 신분에 앞서 피의자라면 검찰은 국민에게 대한민국은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대원칙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
따라서 검찰은 대통령에게 대면조사를 받으라고 신속히 통보해야 한다. 그래도 대통령이 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당당히 대통령에게 검찰청으로 출석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여기에도 불응한다면 검찰은 체포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에 따라서 말이다. 일각에서는 체포영장 청구는 기소를 염두에 두는 강제수사이니 대통령은 대상이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체포영장 청구는 피의자가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 수사에 강제로 임하게 하는 강제처분이다. 우리 헌법은 형사소추를 금지할 뿐 수사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이 수사를 거부하면 검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기는 게 옳은가?
검찰은 박 대통령에게 적시한 혐의가 “99% 입증 가능하다”고 했다. 이번 수사 결과가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은 아니지만 대통령을 피의자로 확정했으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건 검찰도 잘 알고 있다. 결국 대통령과의 대면조사 없이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나 진술을 완벽히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도 있다”는 발표도 상당한 정도의 증거가 확보돼 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박 대통령과 독대한 대기업들은 당시 모두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있었다. 이는 검찰이 앞으로도 수사를 계속할 것이니 대통령이 협조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피의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필수다.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 없이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어른들이 최소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법만큼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백 성 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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