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여자가 운전은 무슨; 남편 밥이나 차려
의 일제강점기판 되시겠다.



벌써부터 모 대학 학생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어깨 으쓱 ㅇㅈ합니다.

^^

이슬람 히잡의 한국버전 쓰개치마 되시겠다.
(사족)여성들의 옷 고나리는 21C 한국에서도 자행되고 있으니
여성의 옷차림을 문제삼기보단 본인 눈을 찌르도록 합시다.


우리는 다 나가서 죽더라도 독립을 해야한다. 죽는 것이 사는것이다. 나라 없는 설움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
내 한 목숨이 죽고 나라를 찾으면 대대손손이 다 잘살 것이 아닌가!
배화학교 사감 시절 하신 말씀.


크으- 그대의 혜안에 치얼쓰



뿐만 아니라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강연회, 음악회, 연극회, 바자회 등을 개최하셨다고 해.


백의민족이란 타이틀 뒤에는
그걸 빨래하느라 쎄빠지게 고생하던 조선 여인들이 있었다.
현대에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하얀운동화, 하얀 와이셔츠.. 하얀 등등등..
빨랫방망이로 얼마나 두들겨야 했겠어. 무슨 여유가 있었을리가.




조선 총독부의 도움 역시 당연히 받지 않았음.
모 학교 여러분 한번 더 어깨 으쓱?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별표 백만개.
사실 가사노동 역시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았으면 싶지만^^

아니나 다를까 일본이 시비 텀.

(헉 위에 스포)
비극은 총독부의 압력으로 차미리사 선생이 퇴임한 후 취임한 사람이 친일파 송금선이었다는 것.
이승만이 친일척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학교의 역사는 왜곡되어 왔음.




다행히도, 2000년 초에 설립자가 친일파 송금선이 아닌 차미리사 선생님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덕성여대(뚜둥)는 독립운동가가 세운 민족사학임이 밝혀졌다고 함.

차미리사 선생님의 독립 유공자 지정과 훈장 추서 역시 덕성여대 구성원들의 투쟁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함.
그 선생님에 그 학생들b
1917년에 차미리사 선생님께서 보셨을 조선 여성들의 모습과
2017년의 대한민국 여성들이 그럼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2117년 100년 후의 여성들 역시 지금보다 많은 걸 누리길 바라며 글을 마침.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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