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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303 출처
이 글은 9년 전 (2017/2/20) 게시물이에요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 인스티즈

김용택, 참 좋은 당신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이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 생각만해도

좋은

당신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 인스티즈


신경림, 그녀네 집이 멀어서

 

 

 

그녀네 집이 멀어서

북적대는 시게전을 지나야 한다

골목을 벗어나면 언덕이 있고

싸리울 하얀 꽃 속에 그녀는 산다

방은 늘 비어 있어 어른대는

살구꽃에 취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꽃 그림자가 방문을 덮는다

그녀네 집이 멀어서

물 머금은 보름달을 등에 지고

내려오는 길은 더욱 멀다

골목을 벗어나고 시게전을 지나서

외진 모퉁이 들여다보면

꼬치집에도 그녀는 없다

기다리며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나는 잊는다 그녀의 얼굴을

체취를 잊고 이름을 잊는다

그녀네 집이 멀어서

 

시게전을 잊고 유행가가 자욱한 골목을 잊고

싸리울 하얀 빈 방을 잊고 비릿한 이불자락을 잊고

달빛을 가리는 살구꽃과 과묵한 꼬치집 주인을 잊고

당초부터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를

그녀네 집이 멀어서 너무 멀어서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 인스티즈


나희덕,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 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 인스티즈


정일근, 가을 억새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폼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 인스티즈

유치환,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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