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가와잇세이는 1949년 일본 고베의 굉장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와코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한 후 간사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마친 그는 프랑스로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평소 왜소한 자신의 모습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는 프랑스여성을 만나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여성을 만나보고 싶다는 로망은 곧 프랑스 여성을 "먹어보고싶다"는 끔찍한 생각으로 변질되게 됩니다.

-피해자 르네하르테벨트(Ren?e Hartevelt)-
1981년 6월 11일, 사가와잇세이는 당시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네덜란드 유학생 르네 하르테벨트(Ren?e Hartevelt)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게 됩니다.
꽤나 화목한 분위기에서 둘은 저녁 식사를 하며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때까지 문제가 될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때까진 말이죠.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시를 읽고 있던 도중에 그는 뒤에서 목 뒤에 소총을 쏴서 그녀를 살해합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체가 되어버린 그녀를 강간했습니다. 그리곤 사체를 훼손하고 훼손된 사체의 일부는 그 자리에서 프라이팬으로 요리해서 먹는 둥 엽기적인 행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6월 13일, 사가와잇세이는 남은 사체를 여행가방에 담아 불로뉴의 숲의 연못에 유기하려다 목격자에게 발각되어 도주하게 됩니다.
시체를 발견하게 된 목격자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자 다급해진 그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여 일본으로 도주하려했지만, 이틀 뒤인 6월 15일 경찰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경찰들의 추궁에 그는 범행사실을 자백합니다. 정신감정을 위해 병원으로 보내진 그는 황당하게도 장염을 뇌염으로 오인한 담당의사 덕에 심신상실이라는 판정을 받고 불구속기소가 됩니다.
심신상실로 그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고 그는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가 취해졌지만 그마저도 14개월 후 국외 추방이되어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도쿄의 한 병원에 입원하게 되지만 1년 뒤인 1998년 8월에 퇴원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경찰은 귀국한 그를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할 방침이었지만, 프랑스경찰 측은 불기소처분 된 사람의 수사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며 수사자료 인도를 거부하여 결국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사가와잇세이가 전세계에 끼친 여파 또한 어마어마했는지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한 어느 한국 사업가가 쓴 책에는 90년 초에 아내와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처가로 갔더니 그녀의 할머니가 "자네, 설마 우리 손녀를 잡아먹지 않을거지?" 라는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당시 사가와잇세이 사건 탓에 동아시아 남성이 백인여성을 잡아먹는다는 인식이 세계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엽기적인 행각은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가와잇세이는 르네를 살해할 당시 느꼈던 자신의 감정들을 담아 악의 고백이라는 자서전을 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엔 이 사건을 직접 만화로 그려 판매를 하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는 물론 일본 내에서도 그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2차대전 이후 점차 악화되었던 네덜란드와 일본의 관계는 이 사건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정신질환 판정을 돈으로 매수한 게 아니냐는 의혹들도 많았지만 의사가 오인한게 맞아 프랑스 정부에서 일본 경찰 측에 자료제공을 거부한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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