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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년 전 (2017/6/03) 게시물이에요







1. Andrew Garfield







진한 눈화장을 닦아낸 티슈엔

알록달록한 섀도우가 묻어나왔고

내 본래의 눈이 드러났다.



빨갛게 칠한 입술을 지워내면

혈색 없는 입술이 드러났다.





거울에 비친 테이블엔


티슈에 닦인 섀도우처럼

알록달록한 꽃다발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 오늘도 역시 주인공님 꽃다발만 가득하네.

부럽다 부러워. "





나와 비슷한 분장을 한 동료가

옆자리에 앉으며 분장을 지웠다.





그러게. 대충 동의의 의사를 비치고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나보다 더 화려한 분장을 한.


옆에서 화장을 지우는 동료가 말한

주인공님이 들어왔다.





대기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는


쌓여있는 꽃다발들을

하나하나 감상하기 시작하는 주인공님.




화장을 지우던 동료도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그 옆에서 구경했다.





난 관심 없는 척하며

거울을 통해 그 모습을 관찰했다.



혹시 저 안에 내 꽃다발도 있지 않을까.





매번 공연이 끝날 때마다 기대해보지만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하긴.

수많은 앙상블 중 하나인


기억에도 남지 않을 나에게

누가 비싼 꽃다발을 주겠는가.



나 같아도 선물을 한다면

화려한 주인공에게 꽃다발을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를 위한 꽃다발이 있다면


주인공의 뒤에서

더 열심히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주인공이 되는 게 더 좋겠지만.




때론 인적이 없는 공연장 구석에서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며

몰래 주인공 역의 노래와 연기를 해보기도 한다.





망상에 빠져있는 사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화장을 반만 지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꽃다발을 구경하던 동료가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곧 웃음을 참으며 나에게

꽃다발 하나를 건네주었다.




" 자기한테 온 꽃다발이야! "




난 그에 농담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도 이런 장난을 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라는 동료의 말에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새빨간 포인세티아였다.




꽃 사이에 꽂혀있던 하얀 카드를 꺼내보니

정말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뒷면엔 메세지도 적혀있었다.



' 나의 주인공에게 축복과 행복만 가득 하기를. '






그 뒤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으로 바뀌어도


공연이 끝나면 꼭 나를 위한 꽃다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꽃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이 꽃을 보내는 사람은

분명 같은 사람일 것이다.



누가 나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그걸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







여느 때처럼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로 돌아왔지만



오늘은 나에게 온 꽃다발이 없었다.





꽃다발이 받기 시작한 뒤로

처음으로 오지 않은 것이었다.






내일은 공연이 없으니

한잔하자는 동료의 권유를 거절하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빈손으로 공연장을 빠져나오는데

저 멀리 한 남자가 보였다.



처음엔 신경 쓰지 않고

그 옆을 지나가려고 했으나


그 남자가 내 앞을 막아섰다.




순간 겁을 먹었다.

요새 안 좋은 뉴스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내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의 손에는 꽃다발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꽃다발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팬지 꽃다발이었다.


[고르기] 나의 팬인 남자 고르기 | 인스티즈



" 오늘은 직접 주고 싶었어요. "




늘 꽃다발을 선물하던 그 정체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







그는 뮤지컬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기회가 생겨

그 당시 내가 공연하던 공연을 보러왔었는데



우연히 연습하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내가 연습하던 건


평소에 내가 몰래 하던

주인공의 연기와 노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엔 주인공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었고


나는 앙상블 중에 하나란 걸 알고 놀랐단다.




[고르기] 나의 팬인 남자 고르기 | 인스티즈



" 그래서 그런지 당신에게만 시선이 갔어요.

그러다 나도 모르게 팬이 되었나봐요. "




처음엔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을 피하느라 바빴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나에게 꽃다발을 보내왔고

가끔은 직접 전해주기도 했으며


그 덕에 가끔은 편한 친구처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내 1호 팬이자

어느새 버팀목까지 되어 주었다.







-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꽤 대사도 있었고

짧지만 혼자 하는 노래도 있었다.




첫 공연 하는 날에 꼭 오라며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오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드디어 첫 공연 날이 되었고


난 열심히 연습했던 것처럼

실수 없이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커튼콜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와

쌓여있는 꽃다발을 뒤져보았지만

나에게 온 꽃다발은 없었다.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로

처음 그와 만났던 곳에 가보니

그가 서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오늘은 작은 카틀레야 꽃다발이었다.



[고르기] 나의 팬인 남자 고르기 | 인스티즈



" 눈부시게 빛나고 멋져서

당신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 >
















2. Froy Gutierrez







집 근처의 꽤 큰 서점.


이 동네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점이었다.




새로 나온 신작들이

그 서점에 진열되었다.



그리고 그 신작들 사이엔

내 이름이 적힌 책도 있었다.


이번 책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작가지.


책이 대박을 치지 못하고 묻혀버리니

그냥 글 쓰는 백수에 불과했다.




몇 번의 좌절이 계속되자

결국 작가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만약 이번 작품마저 잘 되지 못한다면

다른 일을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잘 팔리든 말든 신경 쓰지 말자.

라고 했으면서



가만히 앉아

몇 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듣기엔


내 조바심은 그리 인내심이 깊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엔

내 생업이 달린 일이란 말이다.





그게 내가 지금 이 서점에서

내 책을 감시하고 있는 이유이다.



몇 시간째 손님들이 책 주위를 어슬렁거렸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렇게 내 마지막 작품이

아무도 모르게 묻히는구나.





내가 쓴 책을 꺼내 펼쳐보았다.



이미 수천 번은 읽었을 책의 첫머리가 보였다.


글을 넘기기 직전에

몇 번이나 고쳤던 문장도 보였다.



분명 새 책이지만

내 손때가 묻어있었다.






" 그 작가 책 좋아요. "




나에게 한 소리인가?


옆을 돌아보니

이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 같았다.


[고르기] 나의 팬인 남자 고르기 | 인스티즈




" 그 책은 아직 못 읽어봤지만

분명 좋은 책일 거에요. "





당연하겠지만 이 사람은

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내 책을 칭찬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이 마지막 책이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래도

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설렜다.







" 제가 이 작가를 잘 아는데

이 책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어요. "




내가 작가거든요. 하고 무덤덤한 척 말하자

그는 꽤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아닌 척하며 지나칠 수 있었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그 책을 내가 썼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었다.


인기 없는 작가가

처음 만난 팬이었기 때문일까.



물론 입 밖으로 내뱉고는 곧 후회했지만.






얼어붙은 그의 옆을 지나쳐서

가려는데


그가 다시 내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고르기] 나의 팬인 남자 고르기 | 인스티즈



" 난 당신의 책을 읽을 때마다 설레요.

그러니 이게 마지막 책이 아니길 바랄게요. "








-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난 다시 글을 쓸 수 없었다.


책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거 말고는 다른 일은 안 해봤는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눈앞이 캄캄했다.





답답한 마음에 산책 할 겸

밖으로 나왔지만


깊은 물 속에 있는 빠진 것처럼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생각 없이 걷다 보니

그때 그 서점 앞이었다.



서점엔 그사이 새로 나온 신작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내 책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지 않았다.




내 자식이 남들에게 외면받는 느낌이었다.

이게 다 부모가 못난 탓이야.





쌓여있는 내 죽은 책들에게

애도를 표하는데


그가 또다시 나타났다.





" 그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가님 오실 줄 알면 책을 가져올 걸 그랬네요. "




그가 웃으며 말했지만

난 진심이 아닌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내 책들이 좋은 곳에 잘 버려지기를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방금 내가

좋은 곳으로 가라며 애도한

책을 한 권 들더니 나에게 건넸다.



다른 한 손엔 펜도 들려있었다.

누가 봐도 싸인을 해달란 느낌이었다.


[고르기] 나의 팬인 남자 고르기 | 인스티즈



" 집에 이미 있지만

또 한 권 사야겠네요. "







-







그 눈빛은 이미 다 접은 내 마음을

다시 펼쳐버렸고


난 다시 책상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다.




신기하게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니

물속에 있었던 것 같은 답답한 기분은

사라진 듯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그 눈동자를 보기 위해

그를 몇 번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를 보면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지금 쓰는 이 글 속에서

주인공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그의 눈동자를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







책이 발간되고

엄청난 대박은 아니었지만


내 책이 입소문을 타고서

꽤 괜찮은 판매량을 보였다.




글을 쓰고 나서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


낯설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다른 일은 알아보지 않아도 되겠다며

안도했다.





다시 그 서점을 찾아갔을 때,

내 책은 꽤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었고


손님들이 내 책을 집어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 책이 잘 팔리는지를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서점을 찾아온 목적이

저 멀리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 그를 부르자

그는 역시나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덕분에 또 책을 쓰게 됐네요. "



고맙다고 그에게 말하자

그는 이제 자기만 아는 작가가 아니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고르기] 나의 팬인 남자 고르기 | 인스티즈



" 하지만, 당신이 언젠가 빛을 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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