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진, 움짤, 동영상들은
유튜브, 해당 미드/영드/드라마 공식 웹페이지, 텀블러, 유튜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튜더 가의 여인들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낸 드라마(주관적)인 튜더스에서 주로 움짤과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본인이 캡쳐한 것,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것, 텀블러에서 가져온 것 섞여 있습니다.
안녕! 혹시나 관심있는 공주들이 있을까 해서 가볍게 들고와 봤어ㅠㅠ
부족하지만 열심히 쓴 글이니 재밌게 봐주면 고마워!!
3. 제인 시모어(Jane Seymour)

※글을 쓰기 전에, <천일의 스캔들>(영제 The other Boleyn girl)은 내 포스팅에 사용하지 않음을 밝힐게!
그 책의 저자 필리파 그레고리는 사학과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소문은 근거 없이도 다 갖다 쓰는 걸로 악명이 높다고 해.
나도 몰랐는데 검색해보고 알았어ㅠㅠ※
※또 이 포스팅은 역사 인물에 관한 것이지, 드라마 <튜더스>를 홍보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
다른 드라마들도 있지만 튜더스가 제일 많이 나오는 짤이라 갖다 썼을 뿐이야※
오늘 소개할 왕비는 헨리 8세의 세 번째 부인인 제인 시모어야!
헨리 8세가 그토록 정신 못 차렸던 앤을 밀어낸 제인의 매력은 어땠는지 한번 볼까?

제인은 25살 정도에 헨리 8세와 첫만남을 가졌어.
원래 제인은 앤을 모실 시녀로 궁에 입궁했는데, 시녀 일을 하면서 헨리 8세의 눈에 들었다고 해.
보통 제인은 '현모양처' 의 이미지라 보통 금발의 청순한 미녀일 거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오히려 외모는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들 중 가장 평범하다고 해.
오히려 그렇게 매정하게 내친 캐서린이 젊었을 적에 여섯 아내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헨리 8세는 제인의 외모가 아니라, 앤과는 다른 매력에 끌렸다고 해.
제인은 캐서린 왕비를 깊게 존경하고 있었고, 여성이라면 무릇 캐서린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따르고 있었어.
도발적인 앤과는 달리 제인은 너그럽고 얌전했으며 순종적인 여자였지.
앤의 성질머리에 지친 헨리 8세는 제인을 휴식처처럼 생각했다고 해.

여담으로, 제인도 보통내기가 아닐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
일단 성질머리가 대단한 앤의 눈앞에서 왕과 연애를 하려면 여간 강심장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제아무리 가문이 제인을 왕비로 올리려고 해도, 제인 본인이 왕의 눈길을 붙들지 못하면 소용이 없잖아?

앤이라는 여자 자체에 질리고, 앤이 후계자조차 낳아주지 못하자 헨리 8세는 앤을 쫓아내고 제인을 왕비로 들일 생각을 해.
앤이 캐서린 왕비를 밀어내기 위해 헨리 8세에게 주입시켰던 '왕의 말은 곧 법이다' 는 교리가 그대로 부메랑처럼 앤에게 떨어진 거지.
이제 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왕은 폭주하기 시작했고, 왕을 막는 자는 모두 반역자인 셈이었지.
그리고 앤의 영향으로, 왕은 앤 이후의 왕비들에게는 무조건 순종만을 요구하기 시작했어.
태생적으로 얌전한 성격의 제인이 그 조건에는 딱이었지.

그리고 왕이 제인에게 끌린 또 하나의 이유는 시모어 가문의 다산력에 있었어.
시모어 가문은 대대로 아이를 많이 낳는 가문이었다고 해.
당장 제인만 봐도 위로 오빠만 셋이었으니, 헨리 8세는 제인이 아들을 많이 낳아줄 거라고 기대했던 거야.

(실제 제인 시모어의 초상)
제인이 왕비가 된 배후에도 역시 시모어 가문이 있었어.
시모어 가문의 야망이 하워드 가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시모어 가문도 굉장히 야심이 큰 가문이었지.
시모어 가는 앤의 숙적이자 왕의 오른팔인 토머스 크롬웰과 손을 잡고 앤의 친정인 하워드 가문을 내쳐내기 시작했어.
시모어 가문과 하워드 가문은 대대로 라이벌이었다고 하니, 하워드 가문이 얼마나 속이 쓰렸을지 예상이 가지?
그 뒷이야기는 알다시피 불린 가문과 하워드 가문은 기세가 한풀 꺾였고, 앤은 처형당했으며, 엘리자베스는 공주(Princess)에서 아가씨(Lady)로 호칭이 바뀌는 결과가 일어났어.
그리고 앤을 처형하는 날, 둘은 결혼 예복을 골랐지.
그리고 앤이 처형되고 나서 11일 뒤, 둘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어.
앤은 7년 동안 애써서 얻은 왕비 차리를, 제인은 연애 기간을 몽땅 합쳐도 7개월 만에 차지한 거야.


왕비로 즉위한 제인은 앤이 풀어놓은 왕비전의 기강을 다시 바로잡았어.
캐서린이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엄격하지만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시녀들을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하지 않으며 왕비라는 직책의 위엄을 고수했다고 해.
그러나 너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외로워지기 마련이지?
제인은 말동무가 간절히 필요했어.
왕비라는 직책에 걸맞는 신분이면서 본인과 나이대도 비슷한 여성이 말동무가 되어 주었으면 싶었지.
그래서 제인이 무려 무슨 일을 해냈냐면, 그 고집 센 헨리 8세를 잘 구슬려 메리를 궁으로 데려왔어.
본디 캐서린 왕비를 존경하고 있던 제인은 메리에게도 호감이 있었던 거야.
한참 동안 본인이 아버지의 딸이 아니며 어머니가 진정한 왕비가 아니었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은 메리는, 금전적 어려움과 제인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서류에 서명을 했다고 해.
서명이 된 서류를 받자 왕은 매우 흡족해하며 메리에게 돈을 보내주고, 제인은 하루빨리 메리를 궁으로 들일 준비를 시작했지.

또 제인은 메리가 입궁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좋아하며 목걸이를 선물로 주고, 왕비전에 메리가 들어와 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줬다고 해.
서류에 서명은 했지만 아직 공주라는 직책은 회복하지 못했었거든.

제인과 메리는 매우 친했어.
제인이 따뜻하게 대해 주자 정이 그리웠던 메리는 마음을 열고,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끝에 '내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존경하는 왕비에게' 를 붙이며 제인을 사랑하는 새어머니로 인정했지.

그러나 제인은 엘리자베스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기록에 적혀 있대.
밥을 굶지 않게 않고 레이디 신분에 걸맞는 옷가지 정도는 챙겨 주었다고 하지만, 딱히 공주 지위를 회복하게 했다거나 하는 말은 없어.
엘리자베스가 공주 지위와 계승권을 회복한 것은 헨리 8세가 마지막 결혼을 했을 때였지.
다만 새어머니 된 도리로서 궁으로 몇 번 부르기는 했다고 기록에 적혀 있어.
즉 냉대하지는 않았고 관심을 두었지만, 왕의 자식이라 챙겨 주었을 뿐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야.
더욱이 엘리자베스가 앤의 자식이니 더 그랬겠지.

제인은 헨리 8세와 금슬이 매우 좋았어.
처음에는 정치에 몇 번 참여하려고도 했지만 헨리 8세가 노골적으로 싫어하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고, 부부 사이는 그걸로 더 좋아졌지.
헨리 8세는 제인을 진심으로 사랑한 듯했어.
제인과 결혼해 있는 동안은 한 번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거든.

제인은 매우 조용하고 얌전한 이미지로 헨리 8세의 사랑을 받았어.
처녀 때는 정조를 강조하며 '결혼하지 않은 이상, 남편에게 받은 선물이 아닌 것은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며 헨리 8세가 보낸 선물을 되돌려 준 적도 있었을 정도로 '정조' 를 강조했거든.
그래서인지 대중매체에서 제인은 성적인 매력보다는, 위와 같이 은밀한 매력으로 많이 표현되곤 해.

또 헨리 8세는 제인에게 매일같이 선물을 안겨 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곤 했대.
그만큼 제인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지.

그러나 왕실 부부에게도 위기는 찾아왔지.
제인이 임신을 하지 못한 거야.
그러나 이건 대부분 헨리 8세의 탓이라고 보는 관점이 대부분이야.
앤이 왕비로 있을 때, 마상 창 시합을 하다가 떨어진 이후 다리 상처가 생겼는데 이것이 곪아들어가면서 낫지 않았거든.
대부분 학자들은 이것이 불임을 유발했다고 봐.
제인은 결혼기간 1년 후에야 겨우 임신했어.
헨리 8세는 매우 기뻐하며, 제인이 먹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해다주었는데 제인의 입맛에 제일 맞았던 것은 메추리였다고 해.
제인이 품이 넉넉한 임신복을 입고 궁정에 나타나자 다들 박수를 쳤지.
이번에야말로 왕자가 태어날 거라고 다들 소망하고 있었거든.

그러나 왕비가 임신해 있는 와중에 전이 돌기 시작했어.
아내 곁에 있어주어야 하는 것도 잊고, 전의 두려움에 왕은 홀로 멀리 시골로 피난을 가 버렸지.
물론 아내에게 예방법을 이것저것 추천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어.
그러나 이 일로 왕비가 두려움을 많이 받았을 거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
헨리 8세가 중요할 때는 좋은 군주이자 좋은 남편이 못 된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유산기 하나 보이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났어.
제인은 실제로 왕과 대신들의 앞에서 아이가 태동을 한다며 자랑하기도 했대.
그리고 산달을 다 채운 다음, 드디어 제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진통을 시작했어.
메리와 여러 시녀들이 출산을 도왔지.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

드라마 한정이긴 하지만, 저 불안한 표정대로 출산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어.
아주 지독한 난산이 온 거야.
(난산: 亂山, 아주 힘든 출산을 일컫는 말)
제인은 하루 넘게 진통을 했지만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고 해.
이때 아이를 꺼내기 위해 제왕절개술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야!
마취약도 없고, 위생관념도 턱없이 부족했던 튜더 왕조 시대에서 제왕절개술이 행해졌다면 제인은 그야말로 난도질되어 죽었을 거야.
당시에는 제왕절개술에 대한 지식도 관념도 없었고, 그나마 가장 비슷하게 행해졌던 게 산모가 확실히 죽은 상태에서 아이라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무식하게 배를 가르던 게 전부였다고 해.
그런데 이걸 왕이 더없이 총애하는 왕비에게, 그것도 마취약도 없이 행했을까?
무작정 아이를 꺼내려고 했다고 변명한다 한들, 사랑하는 왕비를 잃은 왕 앞에서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더욱이 수술을 권했다 하더라도 독실한 카톨릭이었던 제인이 마취약 대신 대용품으로 쓰이던 술을 살자고 마셨을까?
행했다간 왕에게 그대로 목이 잘리겠지.
대신 제인은 지독한 난산에 시달렸고, 꼬박 하루를 진통한 후에야 겨우 아이를 낳을 수 있었어.
아이의 성별은 몇십 년 동안 온 왕국이 기다려 왔던 대로 사내아이였어.
드디어 왕자가 태어난 거야.
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했고, 죄수들을 사면하고 세계 각국에 잉글랜드의 왕자가 출생했다는 공문을 보냈으며, 백성들에게 공짜 포도주를 베풀었어.

왕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위의 두 누나와는 달리 굉장히 환영받았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콘웰 공작에 추대되었고, 곧장 화려한 육아실로 옮겨졌어.
왕은 아기를 애지중지했고, 육아실을 관리할 시녀들과 젖을 먹일 유모를 직접 검사했다고 해.
아기 옆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눈처럼 새하얘야 했고, 얼룩 하나라도 있다간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대.
매일 아기 옆의 모든 물건들은 비눗물로 깨끗하게 청소해야 했고, 육아실의 복도, 홀, 바닥, 벽을 매일 깨끗하게 쓸고 닦아야 했어.
그러나 이것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 에드워드 튜더는 면역력이 약해져 단명을 불러왔다고도 하지.

온 나라에 기쁨의 축제가 열렸고, 왕은 국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푸짐한 음식과 술을 대접할 것을 명령했어.
전국 교회와 성당에서 특별 감사 기도가 올려졌고, 궁에서는 하루 종일 연회가 열렸지.
왕자는 10월 15일에 세례를 받았고, 왕의 적법한 후계자이자 차기 왕으로 인정되었어.
세례식에는 약 400명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더없이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성당에서 아기는 세례를 받았대.
왕은 흡족한 표정으로 왕좌에 앉아 있었고, 제인은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침대에 누운 채 아이에게 축복을 빌어주었어.

그러나 제인은 아들의 출생을 기뻐할 틈도 별로 없었어.
아이를 낳으면서 생긴 산욕열로 바로 몸져눕고 말았거든.
아이를 받을 때 손을 씻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당시 위생개념 때문에, 아이가 나올 때 찢어진 부위가 감염된 거야.
또 잘못된 산후조리 개념 때문에 제인은 출산하자마자 몸보신 음식들이라고 나온 기름진 것들을 최대한 많이 먹어야만 했어.
이렇게 악재에 악재가 겹쳐 병을 불러오고 만 거지.

왕은 큰 충격에 빠졌어.
산욕열이 산모들에게 흔한 병이긴 했지만, 설마 제인에게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거지.
부랴부랴 모든 성당이란 성당에서 제인의 쾌유를 비는 기도가 이루어졌지만, 제인은 설사를 하고 열이 나서 를 하는 등 점점 더 중태에 빠졌어.

왕실 예배당은 왕비의 쾌유를 비는 자발적 기도자들로 꽉 차 있었지.
'기도만으로 쾌유할 수 있다면, 제인 왕비는 불로장생할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백성들, 귀족들, 왕족들 할 것 없이 제인 왕비의 쾌유를 빌고 있었어.
주치의들이 노력해서 차도가 조금 보이긴 했지만, 제인은 그래도 인사불성이었어.
'오늘 밤이 고비입니다' 라는 말을 전해 듣자 제인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졌지.

밤 8시에 왕은 서둘러 아내 옆으로 달려왔어.
아내가 낫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서 왕은 아내 곁을 지켰지.
그리고 10월 24일 새벽, 제인 왕비는 침대에 누운 채 마지막 미사를 드렸고 2시쯤 조용히 숨을 거두었어.

헨리 8세는 제인을 본인의 '진정한 아내이자 훌륭한 왕비' 라고 칭했고, 죽어서 제인 옆에 묻어줄 것을 명했어.
제인은 화려한 장례식을 치렀고 왕실 묘지에 경건하게 매장되었대.
제인은 아들을 낳아줬기에 헨리 8세에게 가장 사랑받고, 또 잉글랜드에게 사랑받는 왕비로 남아 있게 돼.
왕은 제인의 죽음에 몹시 상심했고, 제인의 명복을 비는 기념패를 남겼으며 본인 역시 사후 제인과 함께 매장될 뜻을 내비치며 합동 무덤을 만들라는 명을 내려.
겨우 2년간 왕비로 있으면서 이렇게 사랑받은 왕비는 드물었다고 해.

제인이 낳은 아들, 에드워드 튜더(즉위명 에드워드 6세)는 헨리 8세의 유일한 남성 후계자였어.
(사진상 안은 여인은 메리 튜더, 안긴 아이가 에드워드 6세)
즉 앞으로 보게 될 세 명의 아내에게서도 헨리 8세는 후계자를 얻지 못해.
아마 그 이야기는 캐서린 하워드쯤에서 상세하게 다루게 될 것 같아!!
클레페의 앤은 그럴 건덕지(?)도 없어서...ㅠㅜ
챕터
1. 아라곤의 캐서린 [완]
2. 앤 불린 [완]
3. 제인 시모어
4. 클레페의 앤
5. 캐서린 하워드
6. 캐서린 파
7. 헨리 8세의 정부들-베시 블런트, 메리 불린, 매지 셸턴
8. 9일 여왕 제인 그레이
9. 메리 1세
10. 엘리자베스 1세
으어ㅠㅠㅠㅠㅠㅠ 뭔가 제인 시모어는 너무 노잼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힘들게 쓴 만큼 조금이라도 집중해서 읽었다면 난 기분좋을 것 같아(하튜)(하튜)!!!!
공주들아 오늘도 수고했당 내일도 활기차게 보내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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