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해서 영화를 찍을 때 어려운 점은 고증에 따른 사실 증빙의 확보다. 더구나 실존 인물을 다룰 때에는 후손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어렵다. 실존 인물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물의 삶의 가치관에 충실한 영화가 돼야한다”고 설명했다.
박열’ 역시 역사적 고증을 철저히 지킨 작품으로 일본 작가가 쓴 평전부터 당시 관련 내용이 담긴 일본 아사히 신문의 기사를 모두 검토해 영화 안에 그대로 녹였다.
"그 중에도 근현대 실존인물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너무 조심스럽고 위험하다"며 "지나치게 미화하면 왜곡이 되고, 폄하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왜곡과 날조를 배제하며 성실히 가기 위해서는 어렵고 위험한 선택들을 많이 해야 한다"고 고충을 알렸다.
이 감독은 "미화와 폄하를 하지 않고 그 선을 달려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고백한 뒤 '실존인물의 후손들이 살아계시니 그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노력한다"고도 알렸다.
그는 "특히 박열 의사의 경우는 후미코 사망 후 해방 이후 1940년대 한국에서 결혼해 자제와 손자 분들이 있다"며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해,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필요한데 사건과 활약만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예의없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고민을 밝혔다.
또한 "그의 인간관, 세계관, 가치를 향해가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물이 아니라 시대를 보게 된다"며 "(시대를) 실존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더라"고 시대극과 사극을 자주 연출해 온 감독으로서의 소회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