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숙종의 취향은 소나무다. 명성황후의 외모는 후일 총애한 순헌황귀비 엄씨와 비슷했다. 왜 황귀비냐 하면, 숙종이 후궁을 왕비로 들이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서다.
엄씨의 외모... 확실히 고종의 취향은 소나무임이 틀림없다.
2. 장녹수는 얼굴은 별로였지만 캐동안이었다. 30대 중반이 중딩처럼 생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녹수는 연산군을 때리고 조롱하며 놀았는데 현대로 따지면 SM플레이였다.
2-1. 그녀는 반정 이후 곱게 죽지 못했다. 백성들은 장녹수의 옥문(성기...)에 이 곳에 우리들의 고혈이 다 빨려들어갔다!!!! 하며 성기에 돌을 던졌다. 그녀는 그렇게 죽었다. 연산군과의 사이에선 딸이 있었는데 걘 시집가서 평탄하게 살았다.
3. 덕혜옹주, 이우 왕자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 덕혜옹주는 그냥 조현병이 있었던 것이고 소 다케유키는 매우 미남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잘생겼다. 밑은 두 사람과 다케유키.
이우 왕자는 애국자이긴 했지만 독립운동은 안 했다. 그리고 다케유키는 일본왕족이 아니라 대마도의 왕공족이다.
4. 명궁 이성계의 자손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 활을 잘 쏘았다. 이성계는 만 보 밖에서도 활을 쏘아 정중앙에 맞혔다는 레전드 일화가 있다.
5. 이방원은 문신이었다. 그것도 집안 중 유일하게.
6. 장녹수 뺨치게 년이 있었으니 그녀는 귀인 조씨(소용조씨)이다. 이건 많이 알려졌지만 그녀의 딸인 효명옹주의 악행은 알려지지 않았다.
효명옹주는 새언니들을 괴롭히기 위해 엄청난 양의 쌀을 빻으라고 하고, 윗사람인 새언니의 자리를 무품 옹주라는 이유로 빼앗았다. 새언니가 맘에 안 들어서 자기 노비를 친오빠의 첩으로 보냈으며, 결혼 후에도 궁에서 2년 넘게 살았다.
그녀는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이복오빠인 효종과 인평대군이 죽으라고 어머니 조씨와 함께 흉악한 주술과 부적을 파묻었다. 그러나 더는 그 꼴을 보기 싫었던지 첩으로 보냈던 자기 노비가 고발했다. 조씨는 죽었고 옹주는 폐위되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복위되지 못했다.
7. 영조랑 경종은 사실 친했다. 대신들이 이간질을 했고 독살설도 있지만 사실 숙종이 하도 갈궈서 동지애 같은 게 있었다. 영조는 형이 죽고 나서 몇십년이 지나도 형을 그리워했다.
8. 영조는 꽃미남 이었다. 숙빈 최씨가 미녀라서다. 실제로 실록에 장희빈이랑 숙빈 최씨의 미색이 다이다이 떴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장옥정이 더 화려하게 이쁘긴 했겠지만 숙빈은 청순하고 청초한 미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9. 숙빈은 장희빈이 죽은 직후 이현궁으로 갔다고 전해지는데, 구라다. 적어도 궁에서 10여년을 더 살았다. 이현궁 썰이 나온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숙종은 최씨를 버리지 않았다. 승자는 최씨였다.
10. 조선시대에는 보쌈단체가 있었다. 범죄조직이 아니다. 유교탈레반 성종 때문에 여성은 재혼을 못 하게 되고, 재혼을 하면 자식이 벼슬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보쌈단체. 홀아비 홀어미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단체였다.
의뢰인이 강가에서 기다리면 보쌈을 해서 홀아비에게 갔다. 그리고 죽었다고 신고한 다음 돈 주고 새 신분으로 갈아타면 그만이었다.
번외-
홍길동전에 나오는 실제 홍길동은 의적이 아니라 갱단의 보스였다. 서자였지만 그의 이복형은 관직에 있었고 조카는 무려 성종의 가장 큰 총애를 받은 후궁인 숙의 홍씨(자식 12명)였다. 빽이 엄청나서 죽이질 못했던 것이다. 갱단 보스 홍길동은 개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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