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곽주 함락으로 거란군이 처한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거란은 흥화진을 공격했지만 무너트리지 못했다. 7일간의 공격에도 굳건히 버틴 흥화진은 심지어 거란 성종을 비웃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로대에 20만 병력을 남겨두고 남하하게 된다. 두 번째로 벌어진 큰 전투는 통주 전투다. 당시 통주에는 강조가 이끌던 고려의 주력군에 도착해 있었고, 병력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거란에 엄청난 부담이었을 게 분명했다. 거란은 이 주력군과의 전투에서 고전하다가 한 번의 양동작전으로 고려군을 무너트린다. 살아남은 고려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거란은 고려의 패잔병이 흘러들어 간 곽주성에 도착해서 곽주성을 함락시켰다. 여기까지는 꽤 좋은 성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경에서 뜻밖의 관문에 도달한다.
청천강 방어선의 핵심이었던 안주성의 부사 박섬이 달아나면서 고려는 위기에 처했다. 개경 북쪽으로 서경과 황주 이외엔 방어선이 없었던 것. 그래서 조정은 병력을 모아 서경에 보내서 거란에 대항하게 했는데, 여기서 지채문이란 명장이 나타나 거란을 크게 격파했다. 그러나 탁사정을 비롯한 성을 지키던 장군들의 미련한 용병술을 펼치다 반격당해 군사 대부분이 죽고 만다. 지채문은 간신히 혼자 살아서 개경으로 도망쳤고, 탁사정이 성을 버리고 도망치자 탁사정에게 속았던 대도수는 거란에 항복했다. 거란엔 최고의 기회. 서경이 무너지면 황주뿐이고, 황주에 병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세상사라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당시 서경성은 고려에서 가장 큰 성이었다. 고구려 시절 '장안성'이라 불렸던 성으로 축조되었던 당시 성 안에 머물 수 있는 인구가 엄청났다고 한다. 고려는 청야전술을 택해왔으므로 서경성엔 인근 주현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을 것이다. 즉, 서경은 성민을 동원해 공성전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서경은 그렇게 했다.
지쳤다는 건 군대엔 끔찍한 재앙이다. 당시 거란군은 확실하게 지쳐있었는데, 그들은 고려 내지 깊숙한 곳까지 쾌속전진해왔다. 그냥 전진한 게 아니라 대규모 전투를 수차례 벌였고, 패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이렇게 지친 마당에 서경성은 항전을 택했고, 거란은 서경성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쟁에 익숙한 거란군이라고 해도 너무 힘겨운 전쟁이다. 이럴 때 날아온 소식이 곽주 함락 소식이다. 서경 이북에 가장 중요한 보급 거점이었던 곽주성이 함락되었다니 병사들 뿐 아니라 지휘부도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으리라.
이순신이 없었다면, 양규의 곽주성 탈환(8편 참고)은 한국 역사에서 둘도 없는 명장면으로 손꼽혔을 최고의 전략이었고, '무쌍'이었다. 700명의 정예병과 1000명의 패잔병(!)으로 곽주를 지키고 있었을 거란군 6000명을 격멸(!)하고 곽주성을 차지하면서 보급을 끊어버린 위대한 전투. 이렇게 되면 거란은 북쪽에 남아 있는 고려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꼴이 된다. 남쪽에 있는 개경에서 군대를 보내 장기전으로 나가면 거란군은 끝장이었다. 이제 서둘러 퇴각하는 수밖에 없달까. 그런데 여기서 거란 성종이 무모한 전략을 세운다. 퇴각하는 게 아니라 개경을 향해 진군하는 전략이었다.
정상적인 군운용이 아니다. 지친 군대가 먹을 것조차 잃었다.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진군이라니. 그러나 보통은 무모하다 했을 법한 이 전략이 고려군의 의표를 찔렀다. 거란군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알고 있었다 해도 미친 군운용이다.), 서경 남쪽엔 고려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고려의 임금은 아무런 방어책도 없이 개경에 남아 있었고, 임금을 사로잡으면 먼 훗날 병자호란과 비슷한 결과를 추구해볼 수 있게 된다. 거란 성종의 결정은 무모했지만, 의표를 찔렀다는 점에서 합격점이었던 셈이다. 역사 속 어느 전쟁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둘 땐 이런 의표를 찌르는 전략이 유효하곤 했다. 이 결정이 바로 그런 전략이었다.
전략이 결정되자 거란군은 남하를 시작했는데, 이전처럼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남하하진 못하고 꽤 차분하게 움직였다.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부족한 병량을 얻기 위해 약탈하면서 남하한 게 아닌가 싶다. 뭐, 어떤 식으로 남하했건 간에 고려에 멸망의 위기가 닥쳐왔음은 확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경에서 도망쳤던 지채문이 개경에 도착해 전황을 보고한 것이다. 그는 서경이 함락되었다고 보고했는데, 사실은 아니었지만, 고려 조정에 충격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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