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연아, 빨리 일어나. 학교가야지..."
엄마의 자명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시선은 유리깨진 낡은 시계를
향해있었다. 난 찌푸리고 소리쳤다.
"왜 지금 깨워줬어! 일찍 깨워달라고 했잖아! 아우 짜증나!!
-쾅!!
방문소리가 세게 울려퍼졌다. 교복을 주섬주섬 입고 나가려 하였다. 그때,
"미안하구나....... 엄마가 몸이 좀 안좋아서......."
"아씨.... 또 감기야? 그놈의 감기는 시도때도 없이 걸려?!"
"미안하구나.... 자.. 여기 도시락 가져가렴....."
-타악!
"됐어! 나 지각하겠어! 갈게!"
도시락이 땅바닥에 내팽쳐졌지만 신경쓰지 않고 내 갈길을 갔다.
뒤돌아보니 엄마는 말없이 주섬주섬
도시락을 줍고 있었다. 여느때보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보였다.
하지만 늘 엄마는 그랬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또 지긋지긋한 일상,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간댄다.
다녀왔단 소리도 하지 않고 엄마에게 졸랐다.
"어어.. 우리 민연이왔어?"
"엄마! 나 수학여행 보내줘!!"
"수학여행..? 얼만...데...?"
"8만원은 든다는데?"
"8...8만원씩이나?"
"8만원도 없어? 우리 생그지야? 그지!!"
이런 가난이 싫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다.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가난이 싫었다.
엄마도 싫었고, 가족이 엄마와 나뿐이란 것도 싫었다.
엄마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이불 속에서 통장을 꺼냈다.
"민연아... 이거 엄마가 한푼두푼 모은거거든? 여기서 8만원빼가......"
난생처음보는 우리집의 통장을 보며 흐뭇했다.
고맙단 인사도 안하고, 시내의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때의 나로선 100만원이란 돈이 어마어마했다.
수학여행비 8만원을 뺐다. 92만원이 남았다.
90만원이나 남았기 때문에 더 써도 될 것 같았다.
친구들과 연락수단인 핸드폰이 생각났다.
그래서 사기위해 40만원을 뺐다.
핸드폰을 들고 거리를 쏘다녔다.
새 옷도 사기 위해 20만원을 더 뺐다.
그리고 언뜻 엄마가 잘라준 촌스런 머리카락도 생각났다.
5만원을 다시 뺐다. 머리를 자르고 다듬었다.
마구 닥치는 대로 고르고 사고 수학여행에 필요한 걸 사고 보니깐통장에는 9만원의 돈밖에 남지 않았다.
"엄마!! 나왔어!"
엄마는 남은 돈을 확인도 하지 않고 이불 속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수학여행 날,
쫙 빼입고 온 날, 친구들이 이뻐해주었다.
고된 훈련도 있었지만.. 그때 동안은
집생각과 엄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날...
집으로 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가야 했기 때문에 갔다....
"엄마! 나왔어!"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칫, 내가 그렇게 돈 쓴 것 때문에 화났나? 그래봤자 내가 이기는데 뭐. 엄마, 일어나."
엄마를 깨우려 엄마를 흔드는데...... 엄마가....... 엄마가......... 차가웠다.
그렇게 싫었던 엄마였는데..... 왠지 슬펐다. 얼른 이불속에서 통장을 꺼내 엄마의 얼굴에다 대고
소리쳤다.
"엄마! 엄마! 일어나..... 나 다시는 이런짓 안할게!! 안할 테니까........ 제발 눈좀 떠! 엄마......."
그런데 통장을 세우자 무언가 툭 떨어졌다. 엄마의 편지였다. 펼쳐보았다.
나의 사랑하는 딸 민연이 보아라. 민연아. 내딸 민연아. 이 에미 미웠지? 가난이 죽도록
싫었지? 미안하다.... 미안해... 이 엄마가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가진 것도 없었어.....
민연이한테 줄 거라곤..... 이 작은 사랑, 그리고 쓸모없는 내 몸뚱이뿐이었단다.
아... 미안하다... 엄마 먼저 이렇게 가는구나....... 실은.... 수술이란 거 하면 살 수 있다던데...
돈이 어마어마하더라. 그래서 생각했지. 그까짓 수술안하면.... 우리 민연이가 살 수 있는 것
다 살수 있으니까..... 내가 수술 포기한다고..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되어서...
이젠 몇달을 앞두고 있단다. 딸아... 이 못난 에미... 에미라고 생각해 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 딸...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딸아... 우리 민연아...사랑한다......... 사랑해..........
추신: 이불 잘 뒤져봐라. 통장 하나 더 나올 거야...... 엄마가 너 몰래 일해가면서 틈틈이 모은
2000만원이야....우리 민연이... 가난 걱정 안하고 살아서 좋겠네.......'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미워진다. 그동안 엄마를 미워했던것보다
100배.. 아니 1000배.. 내 자신이 미워진다..왜 나같이 못난딸을 사랑했어....? 내가 펑펑 쓴 그 돈..
수술비... 왜 말안했어?어....? 왜 진작 말 안한거야...엄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도 팽개쳤는데..
엄마한테 신경질내고 짜증부렸는데..... 엄마 그토록 미워했는데..... 왜 날 사랑한거야...? 엄마 바보야?
왜 날 사랑했어... 왜...왜.... 이젠 그렇게 보기 싫었던 엄마의 그 모습도 볼 수 없겠네..... 엄마의 그 도시락도 먹을 수 없겠구..... 엄마가 깨워주던 그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겠네... 나.... 다시 한번.. 엄마가
살아난다면... 하느님이 내게 기회를 한번 더 주신다면..... 나 그땐 엄마한테 엄청 잘할텐데..........
엄마.. 우리 다음생에서 꼭 만나자..........? 어..?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 나 이말
엄마한테 처음으로 말하는 거다....? 엄마........ 사랑해........ 사랑해.........사랑해.... 정말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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