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우 올림픽 당시 인터뷰)
-개막식 의상이 많은 화제가 되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어머니는 호주, 아버지가 통가 출신이다. 통가 대표로 선발된 뒤 기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을 했다. 첫 올림픽 출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옷을 입고 싶었다. 모두가 입고 나오는 서양식 재킷을 입고 싶지는 않았다. 200년 전 선조들이 입었던 옷,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옷을 입고 싶었다.
-태권도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5살 때 엄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했다.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내가 개구쟁이여서 좀 반듯해 지라고 가르치신 듯하다(웃음). 바르고 성실한 아이가 되라며 태권도 클럽에 보냈다.
-태권도 선수가 된 이유는?
=11살 때부터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출전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1996년 당시 통가에서 복싱선수 파에아 볼프그램(Paea Wolfgramm)이 통가 사상 첫 은메달을 땄다. 모든 통가 사람들이 흥분했다. 그 때 나도 태권도 통가 대표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리우가 생애 첫 올림픽 무대이다. 올림픽 출전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매우 긴 여정이었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부터 도전이 시작되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오세아니아 대표 선발전을 거쳐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뉴칼레도니아에서 열린 대표 선발전에 나갔다. 당시 결승까지 올랐지만, 경기 도중 킥을 하다가 발이 부러졌다. 발 뼈가 부러지고 발목도 삐었다.
태권도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나. 그래서 발목에 테니스볼을 대고 2라운드를 더 뛰었다. 그때 발목이 아예 나가버렸다. 이후 6달 동안 걷지 못했다. 귀국을 할 때도 휠체어를 타야만 했다. 이후 2012년까지 4년을 더 기다렸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에 나갔다가 무릎을 다쳤다.
8주 뒤가 오세아니아 대표 선발전이었는데, 한 다리로 버텼다. 첫 경기에서 만난 상대가 아주 강했다. 3라운드에서 떨어져 버렸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4년 뒤에는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한다고 마음먹었고, 드디어 해냈다.
-부상도 많이 겪고, 힘든 시기를 보냈을 텐데, 시련을 어떻게 견뎌 냈나?
=태권도는 항상 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는 18살 때부터 노숙자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과 생활하면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나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뼈는 부러져도 다시 붙고, 몸이 다쳐도 다시 회복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면 잘 낫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견디게 했다.
-태권도는 한국에 뿌리가 있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나?
=물론이다. 2012년에 수원에서 6달 동안 살았었다. 경희대, 용인대에서 훈련을 했다. 기량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시 교회 부설 유치원에서 숙식을 해결했었다. 아이들이 쓰는 작은 책상을 치우고 잠을 자고,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에 짐을 싸서 나오기를 반복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꿈을 쫓던 시기였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한국 정말 좋아한다. 일단 음식이 너무 맛있다. 김치, 불고기를 좋아한다. 사람들도 참 친절하다. 그리고 늦은 밤에도 어린 학생들이 학교나 학원이 끝난 뒤 걸어서 귀가할 수 있을 정도로 치안이 잘 되어 있는 점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종목(+80kg)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차동민이 있다. 대결해본 적 있나?
=차동민을 아나?(반가워하며..) 차동민은 몇 년 전 만난 적이 있다. 한 번도 대결해본 적은 없다. 서로 잘 모르지만, 서로 존중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 번 겨뤄보고 싶다. 이번 대회에서 어쩌면 차동민과 만날 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림픽 전에도 모델 제의, 방송 출연이 가끔 있었지만 지금은 넘쳐난다. 경기를 마친 뒤 어떤 걸 선택할 지 고민해 보겠다. 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역할을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걸 선택하겠다. 스케일이 큰 일을 하고 싶다.
-‘자고 일어나니 인생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하나?
=많은 사람들이 하룻밤 만에 인생이 변했다고 말한다. 인터넷 깜짝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룻밤에 이뤄진 게 아니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렸다.
-앞으로 인생이 많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나?
=나의 인생은 변하겠지만, 나의 가치와 인생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태권도와 함께 할 것이고, 나의 종교적인 신념도 이어질 것이다(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나의 의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이타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의 능력이 더욱 커질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첫 올림픽이다. 목표가 남다를 것 같다.
=나의 목표는 2가지이다. 하나는 물론 금메달이다. 선수로서 금, 금, 금만 바라보고 있다. 두 번째는,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전 세계에 통가를 알리는 것이다. 태평양에 있는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에 널리 알릴 것이 많은 나라이다. 지켜봐주시라.
전 세계에 통가를 알리는 건 얼추 성공한 거 같고...
한국에서 60년 살아보는 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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