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고려 고종 41년 ...
고종의 아들 안경공 왕창을 몽골에 보내서 인질로 삼아 침입을 막고자 했는데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는
쿠빌라이 칸:"어, 마침 잘왔다. 네 형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도 여기 있는데 이산가족 상봉 시켜줄게.^^"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음.. 헛...?
안경공 왕창, 최린:헉....
민칭(閔偁):"사실 왕준은 왕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고려가 우리 몽골에 항복한 관리들을 죽였대요~! ㅋㅋ"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저는 어릴때 궁중에서 자라서 친아들로 알고 있었는데요? 출생의 비밀을 몰랐던 거임. 최린이 날 인질로 보냈으니 최린에게 물어보셈."
최린:"우린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왕준은 왕의 ‘애자(愛子)=사랑하는 아들’이지 ‘친자(親子)=친아들’는 아닙니다. 전에 보낸 국서에서도 애자(愛子)라고 썼는걸요?"
쿠빌라이 칸:"이.. 이놈이 어디서 약을 팔어?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너 국서 확인해서 구라치다 걸리면 ?"
확인결과...
“저는 어려서 궁중에서 자라나 왕을 아버지로 왕후를 어머니로 불러 왔기에 자신을 친아들로 알아왔습니다. 이번에 사신으로 온 최린은 바로 전번에 저를 인질로 보낸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소서.”
라고 대답했다. 황제가 다시 최린에게 묻자 최린은 “왕준은 왕의 ‘애자(愛子)’이지 ‘친자(親子)’는 아닙니다. 전에 올린 표문이 있으니 조사하여 보면 알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몽고 황제가 “애자와 친자는 무엇이 다른가?”라고 묻자 최린은 “애자란 남의 아들을 길러서 자기 아들로 삼은 것입니다. 만약 자기 소생이라면 어찌 달리 애자라고 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황제가 과거에 올렸던 고려의 표문을 조사해보니 모두 ‘애자’라 씌어 있었으므로 결국 이 일은 불문에 붙였다. 최린은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두 번이나 지공거를 맡아 뛰어난 인재를 선발했다는 칭송을 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유청(崔惟淸) 부 최린(崔璘)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경인문화사)
음...
위 상황을 보면 고려측에서 들킬걸 감안하고 이걸 설계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말이죠...
이 이야기를 저도 몰랐는데 [만인만색 역사共작단]다시또역시 팟캐스트 듣고 고려사를 찾아보니 이런 일이 있었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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