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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날조, 일본 통치시절 탄압?
실제로는 한글을 보급하였다.
한국의 역사는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을 이해하는 최강의 한국사"를 집필한 야와타씨가 한국의 역사수정을 폭로하였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 중에는 무령왕(재위 501~523년)의 자손으로 나라시대에
조정의 하급관료로 등용된 和乙継란 인물이 있었다.
그의 딸인 타카노노 니가사가 덴지 천황의 손자 고닌 천황의 첩이 되어, 山部王를 낳았다.
그는 후일 간무 천왕에 오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즈음하여 천황폐하는 "속일본기"에 타카노노 니가사가
백제왕족의 먼 친척으로 기록되어있음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일부 한국인 학자는 "일왕은 백제왕실의 마지막 후손" 등의 난폭한 해설까지 하게 된다.
이는 곡해이며, 폐하의 양국 우호를 위한 단어를 악용하는 언어도단이다.
■"일본의 통치로 착취 당했다"는 거짓
일본에 의한 조선반도통치는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지배 처럼 일방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도로, 철도, 하천, 댐 등 정비된 인프라는 일본의 것들보다도 훌륭하였다.
1911년에는 압록강 횡단철교가 완성되어 만주로 연결되었다.
압록강에 건설된 수풍댐은, 당시 세계최대급의 수력발전소였다.
일본통치로 가장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교육이다.
일한병합 이후, 교육기관은 급속히 정비되어, 종전시점에는 국민학교 취학률이 남 76%, 여 33%에 달하였다.
그리고 소학교에서는 한국어로 교육이 이뤄졌기 때문에, 한글이 급속히 보급되었다.
한자+한글이 섞어 사용하는 방안도,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설립한 "한성주보"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
일본은 한국어를 보급하였을 뿐, 빼았았다고 비판 받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확실히 일본통치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공과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명확히 공이 크다.
착취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부의 사례를 소개할 수 밖에 없음이 아쉽지만, 온갖 시대의 역사에 대해 날조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게도 있다.
우리들 자신이 역사인식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임나"가 일본령이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론적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인가.
중국은 고구려를 과거 중국동북부의 소수민족이 만든 국가라고 하여,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는 중국이라고 이론적 무장을 치밀하게 행해왔다.
또한 백제의 위치를 어떻께 할 것인가.
백제로부터의 문물 유입에 대한 공식 견해가 없다.
(일본이) 오랜 기간 한국에게 신세를 졌다는 것은 (일본의) 누구도 생각치 못한 것이지만,
이 점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해야한다.
우리들의 견해, 서 있는 위치가 명확히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옆나라의 거짓과 날조가,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오는 것이다.
원문 : 바로가기
번역자 : 노가타무비자
주의 : 일부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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