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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ekxnll조회 812l 1
이 글은 5년 전 (2019/2/21) 게시물이에요

김영하 '어째서 소설 문학은 이토록 괴물들을 사랑해왔는가' | 인스티즈

김영하 산문집 <읽다> 중 일부
(제목은 내가 산문 내용 중에서 따다 쓴거ㅇㅇ)


소설의 역사는 괴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험실에서 태어난 인조인간과 여인의 피를 빨아먹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백작이 그러하고, 자신을 입양한 집안에 철저하게 복수하고 파멸시켜버리는 히스클리프가 또한 그러합니다. 토머스 해리스가 1988년에 발표한 스릴러 소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역시 도덕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지만 문학적으로는 잊을 수 없는 괴물이 분명합니다.

김영하 '어째서 소설 문학은 이토록 괴물들을 사랑해왔는가' | 인스티즈

김영하 '어째서 소설 문학은 이토록 괴물들을 사랑해왔는가' | 인스티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서점의 소설 코너 서가에 서 있노라면 문득 어째서 소설 문학은 이토록 괴물들을 사랑해왔는가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오래전 한 독자가 어떤 소설의 내용을 지적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어째서 가해자의 내면은 그토록 섬세하게 헤아려주면서 피해자의 고통에는 무관심한가. 그 소설에 등장하는 가해자는 여성을 성폭행합니다. 하지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이미 사건 이후인데다 시점 화자가 강간범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다루지 않습니다. 그 독자의 항변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어차피 작가가 창조한 세계라면 피해자의 고통 부분도 넣어줄 수 있지 않은가, 물을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독자가 정말 원했던 것은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고통을 더 중점적으로 다룰 수도 있지 않았는가, 그런 문학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역시 납득할 만한 주장입니다. 저 역시 이런저런 괴물을 작품에 등장시켜온 이력이 있어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뜨끔합니다.


소설 문학은 TV 시사고발 프로그램과는 다른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약자를 옹호하고 강자를 고발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급하게 시정해야 할 문제가 있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테니까요. 수백년 된 나무를 자르고, 강을 오염시키는 것은 즉각 중단시켜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문학은 그런 시급한 고발의 역할을 하기도 어렵고, 그 영향력도 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학은 독자 개개인의 양심과 내면에 조용히 호소하고 설득합니다. 소설이 가해자의 내면을 조명한다고 해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은 우리에게 가해자의 내면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뉴스에서는 피해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우리가 샤를리 에브도/에릭 가너/이라크다"라고 외치면서 피해자와의 연대의식을 드러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설은 우리가 '라스콜니코프', '롤리타', '히스클리프' 라고 말함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자리잡은 독선을 해체합니다. 이것은 가해자와 연대하자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혹시 자기 안에도 이런 괴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는 뜻일 겁니다. 가해자의 내면이 어느 정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한편 독자의 내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나쁜' 인물의 이야기를 오래 읽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복잡하게 좋은' 사람의 이야기는 그보다는 흥미롭겠지만 '복잡하게 나쁜' 사람의 이야기만은 못할 것입니다.

김영하 '어째서 소설 문학은 이토록 괴물들을 사랑해왔는가' | 인스티즈

김영하 '어째서 소설 문학은 이토록 괴물들을 사랑해왔는가' | 인스티즈

김영하 '어째서 소설 문학은 이토록 괴물들을 사랑해왔는가' | 인스티즈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너는 괴물이다. 반성하라!"고 직설적으로 외치지 않고, 괴물의 내면을 이야기라는 당의정으로 감싸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시각으로 괴물을 직시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라스콜니코프도, 토니 소프라노도, 험버트 험버트도, <파리대왕>의 소년들도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믿은 바와 같이, 인간의 성격은 오직 시련을 통해 드러나는데, 우리는 아직 충분한 시련을 겪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언제나 잘 모르고 있습니다. 소설이 우리 자신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유일한 가능성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임에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괴물을 만나기 위해 책장을 펼칩니다.





(첨부된 사진들은 글에 언급된 소설들)
중간에 생략한 부분이 많으니까 궁금한 덬들은 찾아서 읽으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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