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7월 26일 아시아나 항공 733편은 전라남도 해남군 목포공항에 착륙 시도
날씨 소낙비와 안개, 이미 2번의 착륙 실패 후 3번째 시도
항로를 이탈하여 고도를 급하게 낮춘다
남은 연료량, 승객들의 아우성, 항공편 스케줄 차질 등등 여러 이유로 기장의 마음이 조급했던 것으로 추측
낮은 고도에서 선회하던 중 안개에 가린 산을 보지 못함
눈앞의 산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
급하게 비행기 머리를 올려 그나마 충격을 줄인다
하지만 충격으로 비행기가 조각나고 산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지대 자체가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공항 부지로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장소
66명 사망, 44명 생존
2007년 무안국제공항이 개항하고 목포 공항은 현재 군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게된 계기가 된 해당 영상 베댓
사고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와 희생자들 몸에서 귀금속 털어가는 사람
자기 얼굴이 벗겨지고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생존자를 도와주는 사람
(모바일배려)
아시아나 733편 생존자입니다. 사고 당일 5살난 여동생 생일이었는데 아버지가 일이 바빠 챙겨주지 못하게 된 것이 미안해 당일자 표를 구해 친정으로 생일잔치하러 태워보내던 것이 사고가 났습니다. 살아남은 두 아이 중 하나가 저였고 한 아이는 어머니가 의식을 잃으면서도 절대 놓지않고 지켜내 하반신 불구가 되었음에도 아이는 생채기 하나 없었던 점으로 화제. 저는 사고 직전까지의 상황기억과 사고 직후 현장기억이 있었던 것으로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동아일보 93년 8월자에 저와 다른 아이의 사진이 크게 실렸었죠. 원래 이런 영상에 글을 남기지 않았었는데 마천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나와서 글을 적습니다. 제가 사고 현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밀짚모자에 낫을 들고 돌아다니며 어머니 패물을 끊어가던 남자였습니다. 사고현장에 누구보다도 빨리 왔고 빠르게 걸어다니며 어머니의 시신에서 금팔찌와 금 목걸이를 끊어갔습니다. 가방 안에는 다른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패물들도 있었습니다. 왜 그걸 가져가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당시에는 판단할 수 없었고 그저 저와는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던 기억이 납니다. 두번째로 만난 사람은 얼굴 전체에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말라붙은 채로 산을 걸어 내려가던 아주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신음하면서 무너지는 몸을 팔로 버티던 제게 다가와 자세를 고쳐주고 바르게 앉혀주고 가셨습니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떠나가신 그분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 정상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해병대 헬기로 구조되었지만 저는 어머니 산소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 남자가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었겠지요. 그저 제게는 사고보다 그 남자가 더 충격이었고 지금까지도 인간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간불신에 시달리면서도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게 해주셨던 아주머니.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악마와 천사를 동시에 보았을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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