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1154년), 북쪽이 아래를 향하게 그려놓았다.)
바이킹 세계는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이슬람 세계와 접해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향한 바이킹들은 칼리프 지배 체제에서 이탈한 무슬림 스페인과 모로코를 만났고, 동쪽으로 향한 이들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와 교역했습니다. 아랍 제국은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그 구성원이 다양하기는 했지만, 아랍어 기록물은 모든 지역에 존재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슬람 세력과 바이킹의 접촉을 증명하는 아랍어 기록이 동쪽과 서쪽 모두에 남아 있죠.
(영국 링컨셔에서 출토된 사만 왕조 이스마일 이븐 아흐마드(892~907) 시기의 은화)
그중 몇몇 사료는 단순히 바이킹의 습격만을 적어놓았습니다. 알 안달루스 출신의 역사가 이븐 하이얀(Ibn Hayyan)은 844년 스페인 남부 지역의 바이킹 습격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기록상으로 지중해 지역에서 벌어진 최초의 바이킹 습격이었습니다. 그는 바이킹을 majus(페르시아어 magus/magi)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9세기 기록물에서 이란과 그 주변 지역의 조로아스터교 신자를 가리킬 때 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불신자'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죠. 또 다른 역사가 미스카와이(Miskawayh)는 코카서스의 바드하(Bardha'a) 지역에서 벌어진 루스인의 침략을 기록했습니다.
(이슬람 동전을 복제하려고 제작한 거푸집, 독일 헤이제뷰)
바이킹은 아랍 지리서에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주로 상인, 외교관, 모험가 혹은 작가 본인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하여 아랍 제국 밖의 정보들을 종합해서 기록한 것이었죠. 기록을 남긴 이들은 오늘날의 인류학자처럼 접촉했던 민족의 외모, 관습, 종교적 믿음에 관해서도 적어 놓았습니다.
이중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 정착한 바이킹의 분파, 다시 말해 루스인(Rus)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아랍어 기록물들이 세부적인 내용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은 루스인 내부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Saqaliba(일반적으로 슬라브인을 뜻함)라는 단어처럼, 아랍인들이 그들을 부르는 용어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모든 기록물이 신빙성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바이킹의 역사를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슬람 학자 이븐 디야(Ibn Dihya)의 기록을 살펴봅시다. 그는 외교 임무 때문에 무슬림 스페인의 알 가잘(al ghazal)에서 출발하여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바이킹 정착지로 향했습니다. 이븐 디야의 기록은 바이킹 농담에도 나오는 손님을 모욕하기 위해 낮은 문을 설치하고 강제로 손님을 기어서 통과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거나, 바이킹 족장의 부인과 나누었던 사적인 만남 등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의 기록 중 세부적인 내용들은 다른 기록물에서 빌려온 것일 뿐, 바이킹과의 접촉은 물론이고 바이킹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슬람 기록자와 바이킹의 만남이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서 증명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의 지리학자 이븐 루스타(Ibn Rusta)가 언급한 루스인의 헐렁한 바지와 부장품을 묻는 장례 풍습은 실제 바이킹 문화와 일치하죠.
(스칸디나비아의 주화 모양 장신구, 이슬람 쿠픽 서체의 영향을 받았다.)
루스인에 관한 아랍어 기록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Ahmad Ibn Fadlan)의 여행기입니다. 그는 칼리프 무크타디르(908~32)의 외교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921년부터 그 다음 해까지 볼가 불가르족의 수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파들란은 바그다드에서 부하라로 이동한 후, 볼가강이 흐르는 카잔 지역으로 향했죠. 그는 볼가강 유역에서 만난 다양한 루스 부족의 특징을 뭉뚱그려서 그들이 야자수 같이 키가 크고, 피부색과 머리색이 특이하며, 추위에 대한 저항력을 가졌다고 기록했습니다. 파들란은 이보다 완벽한 신체는 본 적이 없다고 칭찬하면서도, 그들의 성문화와 낮은 수준의 위생 관념을 언급하며 신이 창조한 가장 더럽운 생명체라고 비하했습니다. 이 밖에도 그는 루스인의 무기, 복식, 관습, 교역 활동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특히나 사망한 족장을 위해서 노예 소녀를 희생시키는 바이킹 장례식 장면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아바스 왕조 하룬 알라시드 시기(786~809)의 은화를 따라한 복제품, 독일 헤이제뷰에서 출토)
대부분의 아랍어 기록물은 해외에 정착한 바이킹을 조명하고 있지만, 바이킹 세계의 중심지(북유럽)에 관한 기록도 존재합니다. 10세기 말 무슬림 스페인의 모험가 이브라힘 이븐 야쿠브 알 탈투시(Ibrahim Ibn Yaqub Al-Tartushi)는 독일 지역의 바이킹 정착지인 헤이제뷰(Hedeby)에 방문했습니다. 그는 시리우스 성(星)을 숭배하는 이교도 사회 속에 소규모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들의 종교 행사와 동물 희생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바이킹의 주식은 물고기이며, 남녀 모두가 눈 화장을 하고, 여성이 자유롭게 이혼을 하며, 헤이제뷰 사람들의 노래는 개가 짖는 것 같아서 도저히 듣고 앉아 있을 수 없다고 기록했죠. 북유럽 바이킹의 생활상을 이만큼이나 자세하게 적어놓은 아랍어 기록물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바이킹을 야만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아랍제국에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Vikings life and legend (The British Museum)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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