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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년 전 (2019/10/22) 게시물이에요










박창기, 연두가 보채다

 

 

 

나무가 마음을 열어 날개를 단다

나무는 나이를 먹어도 변함없다

때가 되면 마음을 열어 제 길을 펼친다

느티나무 아래서는 행복하다

나무의 마음에 사로잡힌다

고마움 속에 파묻혀 보지 않았으면

사랑을 말하지 마라

세상의 어느 풀, 어느 나무가

기도 없이 제 마음을 열겠는가

연두의 보챔, 그것은

나무의 마음이 열리는 떨림이다







심재휘, 지저귀던 저 새는

 

 

 

가끔씩 내 귓속으로 들어와

둥지를 트는 새 한 마리가 있다

귀를 빌려준 적이 없는데

제 것인 양 깃들어 울고 간다

 

열흘쯤을 살다가 떠난 자리에는

울음의 재들이 수북하기도 해

사나운 후회를 가져가라고 나는

먼 숲에 귀를 대고

한나절 재를 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열흘 후는

울음 떠난 둥지에 아무것도 남아 있질 않아

넓고 넓은 귓속에서 몇 나절을

해변에 빌려나온 나뭇가지처럼

마르거나 젖으며 살기도 한다

 

새소리는

새가 떠나고 나서야 더 잘 들리고

새가 멀리 떠나고 나서야 나도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김홍신, 기다림

 

 

 

기다림은

사금파리 위에

맨발로 서 있는 것

 

기다림 지쳐 움직이면

피투성이 되고

 

마냥 서 있으면

살점이 녹는 통증

 

그래도

그리움은 내 생존의 가치

통곡의 벽에 기대어

눈물로 그리운 이를 부른다







김상원, 나이테

 

 

골목 아이들의 병정놀이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밤꽃 흐드러진 달밤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소낙비 두드리는 소리만으로는 더구나 안 되는 것이다

청춘 같은 꽃만으로도 안 되고 손 시리고 가슴 저린

대지의 저 하얀 침묵이 나이테를 만드는 것이다

눈물이 여문 것이다






신경림, 아버지의 그늘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는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 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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