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정권시절 당국자들은 재야인사나 운동권 대학생들만 탄압한 것이 아니었다. 음력 1월1일 설날을 ‘구정(舊正)’으로 깎아내리면서 음력설을 쇠는 사람들을 ‘이중과세(二重過歲)를 조장하는 무지몽매한 무리’쯤으로 은근히 매도했다
음력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는 당연히 음력 1월1일이 설날이었다. 그러나 1894년 김홍집 내각이 이른바 갑오개혁 조처로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면서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은 최초의 시련를 맞게 된다. 고종은 1895년 음력 11월17일을 양력 1896년 1월1일이라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전통 설을 일컫는 ‘구정·음력설’이란 말과 새로운 설을 가리키는 ‘신정·양력설’이라는 말이 생겼다.
정부에서 새로운 설을 만들었지만 전통의 뿌리가 깊은 농촌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순한 개화라기보다는 일본화에 가까웠던 갑오개혁이었고, 일본의 강요에 의해 양력설이 추진됐던 만큼 신정을 ‘일본설’ ‘왜놈설’이라고 부르면서 끝내 거부했던 것이다. 민중들의 ‘설날 사수(死守)’는 항일의식의 영향도 컸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이중과세를 없앤다’는 명분 아래 신정이 계속됐다.
그러나 온갖 ‘계몽’에도 불구하고 신정이 맥을 못 추자 1985년 전두환 정부는 ‘민속의 날’이라는 어설픈 이름으로 설을 부활시켰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쇠는 음력설을 없앨 수는 없고, 그렇다고 오랫동안 자신들이 강조해왔던 ‘이중과세 회피’라는 명분 때문에 ‘설’이라고 이름까지 복원시키기는 쑥스러운 상황에서 선택한 일종의 고육책 또는 타협책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89년 1월24일 설은 ‘설날’이라는 이름을 온전하게 되찾으면서 완전히 복권(復權)됐다.
북한은 1953년 휴전 후 음력설을 국가 명절에서 뺐으나 89년 음력설을 새로 공휴일로 지정, 복원시켰다. 설날 부활에 관한 한 남북한은 이미 20년 전에 통일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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