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쿠
이 작품의 수위
변태 막장 교사가 여학생들의 스커트를 들추며 논다는 게 이 만화의 주요 설정
"..... 만화의 연재 당시에 직접적인 성적 상황을 묘사한 적은 없었으나 이 작품은 최초의 현대적인 에로틱 만화로 여겨지며, 종종 최초의 헨타이 만화로도 여겨진다.
..... 파렴치 학원으로 나가이는 엣치 만화의 창시자가 되었고[4] 금기를 깨는 개그 만화의 포문을 열었으며,[5] 모든 세대의 상징이 되었다.[3] 이 작품은 일본 사회에 빠르게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 규범과 만화에 무엇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영향을 미쳤다.[6]"
밑에가 유명한 '파렴치 대전쟁'의 일부 장면들.
※성인용이 아님에도 잔인한 묘사가 많으니 주의
1부의 결말은 파렴치 학원의 선정성,폭력성에 화가 난 일본 학부모 단체들이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는 내용
1부의 완결은 '파렴치 대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전개
거의 지옥도가 펼쳐지며 죽어나간 캐릭터들은 이후 2부가 전개되었음에도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말로 죽었기 때문에
이후 사망처리된 캐릭터들이 너무 많아 스토리 전개를 힘들어하던 작가는 만화를 완결시킴.
편집부에서는 인기작의 연재종료를 안타까워하며 "개그만화인데 그냥 죽은 애들 살리면 되잖아?" 라고 했는데
작가는 "파렴치 대전쟁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 생각과 진심이 담긴 장면입니다. 거기서 죽은 애들은 정말로 죽은 겁니다. 억지로 부활시킬 수 없습니다." >라고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완결되었다.
+정리
1. 1968년에 파렴치학원이라는 소년만화가 연재되었는데 주로 치마들추기,여자 알몸 훔쳐보기 등을 개그로 삼을 정도로 수위가 높았음
2. 이 만화로 인해 실제로 일본 학생들 사이에서 여학생 치마들추기가 유행.
3. 이에 빡친 학부모단체들이 만화 연재 중단을 요구, 그리고 자극적인 만화에 대해 정부의 규제와 압박까지 생김(작가에 대한 악성루머까지 퍼짐)
4. 작가는 연재를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극단적인 내용으로 저항함.
5. 이런 사태를 본 다른 만화가들도 "표현의 자유"를 외치고 동조하여 만화를 더 자극적으로 그리기 시작, 이렇게 되면서 사회적 압력도 유야무야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