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60년대에는 남진이 더 인기 있고 유명한 가수였음
나훈아가 남진보다 어리고 데뷔가 늦기도 했지만
남진은 이미 국민적인 가수,배우였고
나훈아는 이제 막 활동 시작하는 신인
그리고 둘다 전국적인 가수가 됐던 시기가
1970년대 초반인데
1969년에 남진이 해병대에 입대하고
나훈아는 전국을 흔들어버린 스타가 됨
그렇게 나훈아의 독주 시대가 열리나 싶었는데
남진 3연타가 터짐
모두가 아는 '님과함께'를 비롯해서
'마음이 고아야지' '그대여 변치마오' 로 남진은 완벽하게 부할하고


당시 tbs와 mbc 대상을 싹쓸이함
나훈아는 당시 콩라인. 남진에게 계속 대상 수상이 막혔던 2인자였음
그러나 이후 남진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긴 슬럼프에 빠짐
나훈아는 76년 공군 전역 이후 매년 꾸준히 히트곡을 발매
더더욱 압도적인 스타가 됨
여기에 남진은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으로 이민
나훈아는 대동강 편지 ,잡초,18세 순이 등 80년대 들어서도 매년 히트곡을 발매함
82년도 통금시간 해제가 되면서
나훈아는 밤무대의 황제가 되었고 '무시로' '갈무리'등으로 부르는게 값인 초대형 스타가됨
90년대에 남진이 다시 히트곡을 발매 '내 영혼의 히로인' 그러나 나훈아의 '갈무리',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가 더 히트함
이 시점에서 나훈아는 신비주위로 들어가게 되고
남진은 예전처럼 다양한 방송 활동으로 친근한 오빠 가수였음
남진도 90년대에 히트하긴 했지만
90년대는 가왕 조용필의 시대였기때문에
더 이상 70년대의 남진의 시대가 아니었고
남진은 조용필과 같은 후배들에게 인기가 밀리기 시작함
나훈아는 상황이 달랐는데
나훈아는 신곡 발매 기간이 길었고 방송활동이 없어서 신곡을 듣기 위해선 콘서트에 가야 했음
나훈아 콘서트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이 되었고
80년대에 밤무대에 있었던 나훈아 모시기가 방송국에서도 시작
나훈아의 콘서트의 대박으로 나훈아 모시기가 더 치열해짐
이렇게 90년대부터 남진은 전성기에 비교해서 완전한 하락세가 시작됨
(하락세가 당연한게 6070년대에 대중성 갑이었던 가수가 90년대에도 대중성 갑이 되는건 사실상 불가능함)
그러나 나훈아는 방송 출연을 자제하면서도 공연 대박으로 압도적인 가수의 위상을 유지했음
둘의 콘서트를 비교하자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남진보다 나훈아의 콘서트가 반드시 꼭 가야하는 콘서트였음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 유지되는중임
남진은 활발한 방송으로 꾸준하게 히트곡을 발매
나훈아는 신비주의로 압도적인 인기 유지
이 둘의 차이는 누가 더 대단하냐의 차이보단
두 사람의 가수에 대한 신념 차이임
나훈아는 말그대로 슈퍼스타, '빛나는 별'로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 가수라고 생각하고
남진은 연예인 그 자체를 즐기고 시장바닥이여도 관객이 있으면 노래를 부르는게 가수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친구'였음
남진은 대중형 가수로 정점을 찍었지만 전성기를 찍고 자연스럽게 내려왔음 내려왔음에도 꾸준하게 히트곡 나옴
(당연한 얘기지만 70년대 가수가 2020년대에도 그 인기와 임팩트를 유지하는건 사실상 불가능)
나훈아는 맞대결 당시에는 밀렸을지 모르지만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고 놀랍게도 70년대의 임팩트를 지금도 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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