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입은 중세 기사는 어떻게 볼 일을 봤을까?
영화 로빈훗의 한장면.
중세의 싸움은 금방 끝나지 않았어요. TV나 영화를 보면 한 두 시간 안에 결판이 나죠?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달라요. 그 시절의 전쟁은 붙었다 하면 최소한 한나절 이상, 대부분 며칠~몇주일, 심할 경우엔 수개월~수십년까지 계속됐어요. 게다가 전쟁은 대부분 푹푹 찌는 여름철에 치러졌어요. 왜 여름이냐고요? 그것은 먹고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 즉 식량 때문이었어요.
식량을 장만하기 위해선 봄에 씨를 뿌려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하죠. 농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잖아요. 그런데 가을 수확기에 전쟁이 벌어지면, 애써 지은 농사가 다 망가지지 않겠어요? 그 동안 정성껏 키운 논밭의 먹거리들이 모두 병사들과 말발굽에 짓밟히게 될 테니 말이에요. 그러면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막심한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지요?
패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래서 수확기인 가을에 전투를 치르는 것은 당시로선 굉장한 모험이었어요. 씨 뿌리는 계절인 봄도 마찬가지였죠. 봄에 전쟁을 하느라 씨 뿌릴 시기를 놓치면, 그것 역시 엄청난 피해가 되니까 함부로 싸울 수가 없던 거예요. 그럼 언제 싸웠을까요? 겨울은 전쟁을 하기엔 너무 추웠어요. 그러니까 다른 방도가 없었지요. 대부분의 전쟁을 여름에 치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예요.
중세의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어요. 한번 상상해 봐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겠다고 소리지르며 칼을 휘두르고 덤벼든다면 기분이 어떨것 같나요? 무척 겁이 나겠죠? 그런데 중무장한 적군 수 백명이 창, 도끼, 철퇴, 칼같은 흉기를 마구 휘두르며 떼거지로 소리지르며 달려든다고 생각해 봐요. 그 느낌이 어떨까요?
중세의 전투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어요. 창-칼에 배를 찔린 사람들의 내장이 터져 나와 질펀하게 들판을 적시고, 쇠도끼나 철퇴에 맞아 부서진 사람들의 머리와 잘려나간 팔 다리가 곳곳에 너부러져 있고,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개울처럼 들판 위로 흘러가는 아수라장이었다고요. 당시의 기사들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아우성, 말이 질러대는 울음소리가 뒤섞여 퍼지는 혼란과 공포 속에서, 물 한컵 제대로 마실 겨를 없이, 진종일 상대를 죽여 가며 싸워야 했던 거예요.
여기서 엉뚱한 질문 하나.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는 소름끼치는 공포 속에서, 과연 마음 편하게 ‘응가’를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싸우고 있는 중세 기사들에게 엉덩이를 까고 앉아 속 편하게 ‘볼일’ 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목이 날아갈지 모를 심각한 상황이잖아요. 게다가 기사들의 쇠로 된 갑옷에는 고무줄이나 지퍼가 달려 있지도 않았다고요. 그러니까 옷을 벗는다는 것이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었어요.
전쟁터에서 적의 칼이나 철퇴에 맞으면, 헬멧 뿐 아니라 갑옷이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울퉁불퉁 구겨지고 우그러진 갑옷을 어떻게 벗을까요? 정답은 대장장이였어요. 대장장이가 작은 해머를 들고, 갑옷을 골고루 두드려서 잘 펴주었던 거죠. 그러지 않으면 기사들은 도저히 갑옷을 벗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한창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사가 대장장이를 불러서 찌그러진 갑옷을 펴 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설사 폈다고 하더라도 갑옷을 벗을 수가 있었을까요? 전장에서 갑옷을 벗는다는 얘기는 한 마디로 ‘살기 싫다’는 말이 되는 거였어요. 게다가 어쩌다 갑옷을 벗었다 쳐도, 전쟁 중에 쭈그리고 앉아 ‘볼 일’을 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던 거죠.
그러니 어떻게 했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서너 시간마다 한번씩 소변을 봐야 하고, 2~3일에 한번씩은 대변을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궁금증이 생기는 거죠. 중세 서양의 기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오줌 똥을 누었을까요?
답은 간단해요. 그들은 아주 손쉽게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어떻게 했냐고요? 갑옷을 입은 채로 그냥 싸버렸거든요. 소변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마르니까, 그냥 싸도 괜찮았던 거예요. 그럼 똥은 어떻게 했을가요? 믿기지 않겠지만… 마찬가지로 처리했어요. 그냥 갑옷을 입은 채로 그 속에다 싸버렸다구요.
치열한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기사에게선 그야말로 끔찍한 냄새가 풍겼어요. 중세의 전투는 대부분 한여름에 치러졌다고 했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에 쇠로 된 갑옷을 입고, 온종일 전쟁터를 뛰어다녔으니 거기서 풍기는 땀 냄새가 어떻겠어요? 말 그대로 ‘으악’이었죠. 그런데 그건 약과였어요. 갑옷을 벗기면 상황은 더 끔찍했거든요. 갑옷 속이 온통 오줌 똥으로 범벅이 돼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돼 있었거든요.
기사들은 이 고약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그들에겐 뒤를 따라다니는 ‘시종’이 있었어요. 시종은 주로 장차 기사가 되려고 하는 견습 기사들이었죠. 이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배설물로 범벅이 된 기사의 갑옷을 닦아내는 일이었어요. 그들은 사람의 오줌에 모래와 식초를 섞어 만든 원시적인 비누로 기사들의 갑옷을 정성껏 닦아냈죠. 기사가 되는 일은 그렇게 힘들고 고된 길이었어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었던 거죠. 휴~

영화 로빈훗의 한장면.
중세의 싸움은 금방 끝나지 않았어요. TV나 영화를 보면 한 두 시간 안에 결판이 나죠?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달라요. 그 시절의 전쟁은 붙었다 하면 최소한 한나절 이상, 대부분 며칠~몇주일, 심할 경우엔 수개월~수십년까지 계속됐어요. 게다가 전쟁은 대부분 푹푹 찌는 여름철에 치러졌어요. 왜 여름이냐고요? 그것은 먹고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 즉 식량 때문이었어요.
식량을 장만하기 위해선 봄에 씨를 뿌려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하죠. 농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잖아요. 그런데 가을 수확기에 전쟁이 벌어지면, 애써 지은 농사가 다 망가지지 않겠어요? 그 동안 정성껏 키운 논밭의 먹거리들이 모두 병사들과 말발굽에 짓밟히게 될 테니 말이에요. 그러면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막심한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지요?
패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래서 수확기인 가을에 전투를 치르는 것은 당시로선 굉장한 모험이었어요. 씨 뿌리는 계절인 봄도 마찬가지였죠. 봄에 전쟁을 하느라 씨 뿌릴 시기를 놓치면, 그것 역시 엄청난 피해가 되니까 함부로 싸울 수가 없던 거예요. 그럼 언제 싸웠을까요? 겨울은 전쟁을 하기엔 너무 추웠어요. 그러니까 다른 방도가 없었지요. 대부분의 전쟁을 여름에 치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예요.

중세의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어요. 한번 상상해 봐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겠다고 소리지르며 칼을 휘두르고 덤벼든다면 기분이 어떨것 같나요? 무척 겁이 나겠죠? 그런데 중무장한 적군 수 백명이 창, 도끼, 철퇴, 칼같은 흉기를 마구 휘두르며 떼거지로 소리지르며 달려든다고 생각해 봐요. 그 느낌이 어떨까요?
중세의 전투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어요. 창-칼에 배를 찔린 사람들의 내장이 터져 나와 질펀하게 들판을 적시고, 쇠도끼나 철퇴에 맞아 부서진 사람들의 머리와 잘려나간 팔 다리가 곳곳에 너부러져 있고,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개울처럼 들판 위로 흘러가는 아수라장이었다고요. 당시의 기사들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아우성, 말이 질러대는 울음소리가 뒤섞여 퍼지는 혼란과 공포 속에서, 물 한컵 제대로 마실 겨를 없이, 진종일 상대를 죽여 가며 싸워야 했던 거예요.

여기서 엉뚱한 질문 하나.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는 소름끼치는 공포 속에서, 과연 마음 편하게 ‘응가’를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싸우고 있는 중세 기사들에게 엉덩이를 까고 앉아 속 편하게 ‘볼일’ 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목이 날아갈지 모를 심각한 상황이잖아요. 게다가 기사들의 쇠로 된 갑옷에는 고무줄이나 지퍼가 달려 있지도 않았다고요. 그러니까 옷을 벗는다는 것이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었어요.
전쟁터에서 적의 칼이나 철퇴에 맞으면, 헬멧 뿐 아니라 갑옷이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울퉁불퉁 구겨지고 우그러진 갑옷을 어떻게 벗을까요? 정답은 대장장이였어요. 대장장이가 작은 해머를 들고, 갑옷을 골고루 두드려서 잘 펴주었던 거죠. 그러지 않으면 기사들은 도저히 갑옷을 벗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한창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사가 대장장이를 불러서 찌그러진 갑옷을 펴 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설사 폈다고 하더라도 갑옷을 벗을 수가 있었을까요? 전장에서 갑옷을 벗는다는 얘기는 한 마디로 ‘살기 싫다’는 말이 되는 거였어요. 게다가 어쩌다 갑옷을 벗었다 쳐도, 전쟁 중에 쭈그리고 앉아 ‘볼 일’을 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던 거죠.

그러니 어떻게 했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서너 시간마다 한번씩 소변을 봐야 하고, 2~3일에 한번씩은 대변을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궁금증이 생기는 거죠. 중세 서양의 기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오줌 똥을 누었을까요?
답은 간단해요. 그들은 아주 손쉽게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어떻게 했냐고요? 갑옷을 입은 채로 그냥 싸버렸거든요. 소변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마르니까, 그냥 싸도 괜찮았던 거예요. 그럼 똥은 어떻게 했을가요? 믿기지 않겠지만… 마찬가지로 처리했어요. 그냥 갑옷을 입은 채로 그 속에다 싸버렸다구요.
치열한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기사에게선 그야말로 끔찍한 냄새가 풍겼어요. 중세의 전투는 대부분 한여름에 치러졌다고 했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에 쇠로 된 갑옷을 입고, 온종일 전쟁터를 뛰어다녔으니 거기서 풍기는 땀 냄새가 어떻겠어요? 말 그대로 ‘으악’이었죠. 그런데 그건 약과였어요. 갑옷을 벗기면 상황은 더 끔찍했거든요. 갑옷 속이 온통 오줌 똥으로 범벅이 돼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돼 있었거든요.
기사들은 이 고약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그들에겐 뒤를 따라다니는 ‘시종’이 있었어요. 시종은 주로 장차 기사가 되려고 하는 견습 기사들이었죠. 이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배설물로 범벅이 된 기사의 갑옷을 닦아내는 일이었어요. 그들은 사람의 오줌에 모래와 식초를 섞어 만든 원시적인 비누로 기사들의 갑옷을 정성껏 닦아냈죠. 기사가 되는 일은 그렇게 힘들고 고된 길이었어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었던 거죠. 휴~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40113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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