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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년ll조회 3869l 3
이 글은 2년 전 (2021/8/05) 게시물이에요

샤를 드 골

(1890~1970)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프랑스는 전투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전쟁에서 지진 않았습니다."

La France a perdu une bataille, mais la France n'a pas perdu la guerre.



선정 이유 : 위대한 군인, 위대한 정치인

 

프랑스의 군인이자 2차 대전 시기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로서 대독 저항 운동을 지휘했으며

 

나치의 압제에서 프랑스를 해방시킨 영웅이자 전후 프랑스의 재건을 주도한 인물

 

사실상 현대 프랑스의 국부이며, 20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거인이라는 이의가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최신예 항공모함과 수도 파리에 위치한 최대의 공항에 그의 이름이 붙을 정도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사관생도 시절의 드골

 

드골은 프랑스 북부 공업도시인 릴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벨기와의 접경지역으로

 

다른 프랑스 지역과 달리 프로방스 특유의 엄숙한 개신교 문화의 영향이 강해

 

드골은 금욕적이고 노동중심적인 문화에서 자랐으며 이 탓에 드골은 다수 프랑스인들과 문화적 거리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70년 보불전쟁의 치욕만은 항상 그의 마음 속에 있었고, 패배의 굴욕을 갚기위해

 

군인의 길을 선택하는 등 이때부터 강경 프랑스 민족주의자로 성장한다

 

사관학교에 진학했지만 에고가 강한 성격과 큰 키로 동기들에게 아스파라거스라고 놀림도 받았지만

 

1차 대전이 발발하며 보병 소위로 임관한 드골은 프랑스군의 영웅인 필리프 페텡 대령 휘하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최악의 살육전인 베르됭 전투에 참가하지만 부상을 입고 32개월간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그는 5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지만 키가 196CM에 달했기에 너무나도 눈에 띄었고, 맞는 옷도 없어서

 

번번히 실패했는데, 당시에는 그래도 장교 출신 포로 대우가 좋아서 걍 독방행으로 끝났다고..

 

종전 이후 육군 원수가 된 페텡의 부관으로 복무했지만 너무나도 에고가 강해 오만하다고 까지 평가받는 성격떄문에

 

10년 이상을 대위로 머물지만 페텡의 천거로 소령으로 진급한다

 

이 때의 기억으로 드골은 2차대전 종전후 나치의 괴뢰 정부 비스 프랑스의 주동자로서 재판을 앞둔 페텡에게

 

"한 때 저의 모범이고 상관이었던 각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셨습니까"


라고 한탄하고, 구명운동을 벌여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형기를 낮춰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

 

 

 

뭐 아무튼 모난 돌에 정 박는다고, 프랑스 육군의 견제를 정면으로 받았고

 

뛰어난 실적에도 부대가 해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히틀러 집권 이후 전쟁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던 드골은 

 

전차 집단 운용 사단 4개와 기계화부대, 지원 포병과 근접항공지원 원활화를 위한 통신/보급 능력을 갖춘

 

10만명 이상의 기동군을 전략 예비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는데

 

이는 기갑전의 달인인 독일군도 시도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얼마나 그의 전략적 식견이 높았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그러나 마지노선을 맹신하던 보수파와 기동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수뇌부는 이를 무시했고

 

그나마 드골을 위시로 한 소수의 소장파 장교가 개 ㅈㄹ발광을 해서 프랑스 침공 직전 극적으로 기갑사단 창설 정도로 쇼부를 본다

 

그러나 결국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했고, 프랑스의 전부대가 밀렸지만 드골이 지휘하는 이제 편성된 4기갑사단은

 

프랑스군 중 제일 분투했고, 실제로 기가막힌 기동전으로 사령관인 구데리안의 사령부 2km까지 파고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똥꼬쇼에도 무능한 프랑스 정부는 항복을 선언하고, 드골은 씨발 좆이나 까드쇼를 외치며

 

동지들과 영국으로 망명했고, 이후 에밀 뒤즐리에 제독이 합류하며 망명 정부인 자유 프랑스를 조직한다

 

그러나 1940년 당시 프랑스의 주력은 페텡이 이끄는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에 장악되어있었고

 

식민지도 비시 프랑스를 지지해서 드골의 자유 프랑스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전무했다

 

다만 영국 총리인 윈스턴 처칠은 드골의 잠재력을 보고 유일하게 지원했지만

 

또 그놈의 성격 때문에 같은 연합국 지도자인 루스벨트와 지원자 처칠과 심각한 갈등을 겪는데

 

이는 드골이 일부러 그랬던 것으로 그는 프랑스가 독일의 부역자로 낙인 찍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또한 루스벨트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독재자가 될 것을 우려하여 정식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점차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프랑스 망명인들을 휘어잡는 것을 보고 1945년이 되서야 인정하게 된다

 

또한 자유 프랑스 해군 원수인 프랑수아 다를랑 제독이 암살되며 사실상 자유 프랑스에서 드골을 대체할 인물은 없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파리는 상처 받았습니다. 파리는 파괴되었습니다. 파리는 고문받았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해방되었습니다."

-파리 해방 연설-

(해방된 파리에 입성하는 드골, 다른 요인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위용을 자랑한다)

 

 

또한 특유의 카리스마와 비전으로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을 자유 프랑스의 편으로 끌여들였고

 

이를 통해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프랑스 국가자유위원회를 출범시켜 자유 프랑스를 연합군에 일원으로 공식 편입시킨다

 

즉 프랑스는 이제 더이상 부역자가 아닌 독일과 전쟁하는 국가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파리 해방이 목전에 다가오자 전후 프랑스 주도권을 위해

 

미군, 비 드골계 우익 레지스탕스, 공산당과 함께 파리 함락 레이스를 펼쳤고

 

결국 드골의 자유 프랑스의 2개 사단이 레지스탕스와 파리 시민의 도움으로 파리를 점령하고

 

드골과 자유 프랑스군은 수십만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개선 행진을 했고, 여기서 해방자 드골의 신화가 만들어진다

 

이때 비로소 전 연합국 지도자들에게 드골은 프랑스의 정식 지도자로 인정받고 평생 정치적 자산이 된다

 

뭐 얍삽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드골의 나름의 정치적, 전략적 계산이었는데

 

물주인 미국은 원래부터 자유 프랑스를 연합국의 일원으로 보지 않아서 얄타 회담 같은

 

전후 세계질서 개편을 위한 중요 회담에서 프랑스를 제외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결국 프랑스 정국을 휘어잡은

 

드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연합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즉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드골이 파리를 먹은게 득이 된것이다

 

 

그러나 전후 치러진 내각 선정에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70프로를 차지하던 프랑스 공산당을 제외하는

 

악수를 뒀고, 국민 다수의 지지는 중도파나 좌파에 몰려있었으므로 결국 총선에서 공산당이 제 1당으로 올라서며

 

드골은 그해 말에 깔끔하게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참고로 70이 넘은 나이에도 풍채가 저 정도였다ㄷㄷㄷ

 

50년대 중반 까지 회고록 집필들 취미 생활을 즐기던 드골에게 다시 한번 프랑스의 국운이 맡껴지는데...

 

당시 1956년 수에즈 전쟁에서의 패퇴, 58년 지옥같은 알제리 전쟁과 군부 쿠테타 위험으로 사회당 정권이

 

전복될 위험에 처하자 그는 알제리는 프랑스의 것이다!!를 외치며 우파와 중도파의 압도적인 지지속에

 

4공화정을 무너뜨리고 5공화국을 수립해 프랑스의 대통령이 된다

 

참고로 4공화국 바보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2차대전의 모욕을 잊기위해 식민지에 집착했고

 

베트남에서 그 전비를 다 쓰고도 디엔비엔푸 전투로 강제로 쫓겨났고

 

이에 아프리카의 4분의 1인 프랑스 식민지 전역에서 독립요구가 빈발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본토로 인식한 알제리에서는

 

아예 무장 독립 운동이 벌어졌는데, 프랑스군은 이를 나치독일 뺨치게 잔혹하게 진압하는 등 상황이 개판인 상태였다

 

여기에 중도파 사회당 내각은 알제리와의 타협을 주장했지만, 당연히 야당인 극우파와 군부는 쿠테타 위협까지 할 정도였고

 

이에 4공은 저 미친개들을 제어할 유일한 인물인 드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생업에 종사해주십쇼

그러던 와중 쿠테타군이 코르시카를 점령하고 남프랑스에 상륙해버리고, 이미 2차대전과 베트남, 알제리 전쟁에

 

따른 군사비로 경제는 엉망이었고, 외환보유고는 이미 바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골은 정복을 차려입고 TV 연설을 하며 국민들에게 호소했는데

 

이거하나로 그는 정권 자체를 무너뜨리고 의회 해산과 헌법 개정, 임시 정부 수반 자리를 쟁취한다

 

당연히 좌파들은 총궐기해서 제 2의 나폴레옹이다하며 시위에 나섰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드골이 없으면

 

공산당이 다시 집권하기에 사회당과 제도권 좌파, 중도세력들은 드골의 집권은 작은 불행이나, 공산당 집권은 악몽이다

 

라는 결론을 내려 드골의 집권을 인정한다

 

당연히 군부와 우파, 중도파는 으역시 드골 행님이제를 외치며 당연히 알제리 독립 요구를 묵살할 줄 알았다

 

그러나 드골은 희대의 명연설인 "나는 여러분을 이해했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알제리를 독립시켜버린다

 

사실 드골은 누구보다도 알제리 독립에 부정적이고, 최소한 속령이라도 만들고 싶어했짐나

 

그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했고, 이 모든 막장 상황의 해답은 식민지 독립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드골은 아프리카 식민지들의 독립을 용인했고, 이미 전 국민적 지지를 받는 드골마저 군부는 재낄 수 없었다

 

다만 식민지에서 나올 때 영연방 같은 프랑스 연합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기구를 창설했는데

 

이 때를 시작으로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가지는데, 사실상 신 제국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것을 생각하면

 

드골의 선택은 식민지 독립이라는 명분과 영향력 투사와 관리비 절감이라는 실을 제대로 챙긴 것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사실상 유럽연합의 시초라고 평가되는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 드골의 만남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독일인이 선정한 위대한 독일인 1위에 등극한 현대 독일의 국부다)

드골은 또한 유럽주의자이기도 해서 사실상 유럽을 제치고 최강대국이 된 미국을 견제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 유럽 경제 공동체을 발족하거나 독자적인 핵무장, 미국의 시다바리인 나토 탈퇴등

 

위대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민족주의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는데, 이 과정에서 불구대천의 원수이지만

 

실익을 위해 독일과 협력했다. 이는 드골도 프랑스 혼자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적합한 파트너를 서독으로 정했는데, 이는 패전국의 오명과 프로이센식 독자 노선이 아닌

 

서유럽 세계로의 완전 편입을 목표로 한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들어간 것이다

 

서독의 본으로 날아간 드골은 아데나워 총리와 오랜 갈등 관계를 종식하고,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협력하자고 합의한

 

독일-프랑스 화해협력조약을 맺는다

 

그래서 이 때를 저런로 해서 불구대천의 원수인 독일과 프랑스는 최고의 협력국으로 바뀌게 된다

 

아 참고로 동맹인 영국을 ㅈㄴ 싫어했는데, 영국은 미국이 유럽으로 침투하는 교두보로 생각했고

 

결국 영국이 택할 길은 유럽보다는 미국임을 알고 있었기에,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려고 할 때마다 거부했다

 

뭐 브랙시트를 생각하면 드골의 예측이 옳기는 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그렇게 되어 드골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좌파는 반포기 상태였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한 인물이 45프로정도나 득표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프랑스 사회당이 배출한 첫 대통령이자 위대한 프랑스인 순위에 있는 프랑수아 미테랑이다

 

뭐 암튼 집권 2기에 들어선 드골 내각이지만 프랑스 퀘벡에서 아따 퀘벡 느그들은 프랑스어 쓰는데

 

왜 캐나다 연방에 있음? 아 자유 퀘백 만세!!!ㅋㅋㅋㅋ 라는 연설을 공식석상에 지껄이며 외교적 결례를 범했고

 

이때는 꽤 권위적인 통치를 보여주었지만 다른 유럽의 대통령제 국가들보다는 유연한 면이 많았다

 

그는 자유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신문, 잡지 같은 활자 언론에는 관대했고, 르몽드의 설립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방송만은 친정부 논조로 철저하게 통제했고, 68운동 때는 보다못한 방송사 직원들이 편집의 독립성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연히 이는 19세기 인물이었던 드골이 방송은 정부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드골 시절의 대통령 권력 집권은 유럽 현대 정치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제왕적이었고

 

이를 본 동양의 한 독재자는 10월 유신의 모델로 삼는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 정책에 반대하고 금본위제를 주장하던 드골은 미국과 그 친구들에게 강한 견제를 받았고

 

닉슨이 달러의 금태환을 중지하며 드골의 인기는 하락했고, 신세대는 권위주의적이고 구시대적인 드골을

 

혐오했고, 이는 거대한 시대적 물결인 68운동으로 폭발한다

 

정부는 몇몇 주요 도시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정도였고, 파리 마저도 몇몇 지역이 시위대에게 점거될 지경이었다

 

근데 당시에 드골은 파리에 없었는데, 그건 도망친게 아닌 서독에 있던 프랑스군 정예부대의 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시위대는 당연히 드골이 도망갔다고 받아들이고 승리감에 젖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드골은 이미 최고지도자로서 군대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군대에 대한 통제력 확보를 우선시해야 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고, 프랑스군 헌병대 전원이 폭동 진압에 투입되었으며

 

프랑스 기갑부대들은 국방부의 명령에 따라 대도시들을 포위하며 계엄령 확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드골은 끝까지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쥐면서 상황을 진정시켰고

 

총선에서 드골파가 압승, 그것도 개헌이 가능할 정도로의 초압승이었다.

 

뭐 당연한 결과인게 드골 정권을 붕괴직전 까지 몰아넣은 68운동의 주역은 학생이었고

 

걔네는 투표권이 없었다. 또한 반드골로 뭉친 정치세력들에게는 드골급의 카리스마를 가진

 

구심점이 없었고, 결국 통일된 리더를 가진 드골파에게 썰리게 된것이다

 

다만 드골 역시 리더쉽에 큰 타격을 입었고, 여러번 사임을 건 국민투표로 무마했지만

 

1969년 국민 투표가 부결되자 더이상 국민 여러분이 신임하지 않는 다는 다고 판단해 깔끔하게 사임한다

 

그의 사임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그를 아직까지 욕하는 반대파조차 그의 사임만은 정말 민주적이고

 

영웅적이었다고 인정할 정도.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 인스티즈

 

 

 

프랑스의 대영웅이 묻힌 무덤에는 그저 그의 이름만 적혀있다

 

이후 사저에서 회고록을 출판한 이후인 1970년 드골은 타계한다

 

대영웅 드골은 당연히 팡테옹에 묻혀야 했지만, 드골은 스스로 내 고향인 콜룽베에 묘를 마련하고

 

가족과 주민들만 참석하며 묘비도 내이름과 연도만 쓰라고 한다

 

그러기에 그의 무덤에는 그의 이름과 연도만 쓰여있다

 

드골은 정치적 야심가이고 독선적인 기질의 소유자였다

 

또한 좌파에 대해서도 경계하여 많은 것을 놓치거나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해 거대악 나치에 항전한 애국자였으며

 

1세계의 이익을 가지면서도 비동맹 노선을 확립한 외교는 프랑스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무리하고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에서 탈식민화로 전환 한 것 역시 드골이다

 

그가 권위주의적 독재자의 면모를 보인 것만은 사실이나 그는 국민의 인권을 탄압할 정도로 막 나가지도 않았고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반대세력을 그대로 나두었다.

 

또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투표권을 확대했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 대체복부를 신설했으며

 

자신의 독점적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여 국회의 역할을 늘렸고

 

결선투표제를 신설해 양당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등 민주주의로서의 면모도 많이 보인다

 

이는 그의 라이벌인 처칠이 전시수상의 성격에 강하다는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프랑스 사상 최악의 혼란기에 걸맞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명과 암이 갈릴 지언정 드골은 하늘이 프랑스를 위해 내려준 인물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

참고로 이사람의 아들인 필리프 드골 제독(1921년 생)은 아직 생존해 있다

 

참고로 가족들도 상대하기 힘든 완고한 인물이었지만, 애정을 표정하는 편지만은 굉장히 많이 보냈고 문장도 이미지와 달리 부드러웠다고..

 

그리고 둘째 딸 잔느가 다운 증후군이었는데, 당시 애를 버릴 정도로 취급받던 다운증후군 딸을

 

평생 아끼고 사랑했으며, 딸이 스스로 비정상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주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다만 다운증후군 떄문에 딸은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그리고 드골은 자신의 무덤을 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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