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세상에 좋은 것이 서로밖에 없다.
나는 아이를 낳을 자신이 있고, 철이 들었고, 인구 절벽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다.
단지 우리 부부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이다.
과거의 나는 아이를 꼭 낳고 싶었다. 내 첫 시집의 표제작 은 언젠가 낳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딸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나는 잠시만이라도 행복하고 싶었다. 딸을 낳고, 딸이 웃으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종종 기쁠 수 있다는 것이 태어날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괴로울 일이 훨씬 많겠지. 그래서 딸의 이름도 미리 지었다. 김아니라고 부르자. 그러면 괴로울 때, 세상이 이해되지 않을 때, 아니야, 아니야, 자기 이름만 자꾸 불러도 마음이 차분해질 거야. 이런저런 상상을 참 많이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나는 시인이고 아내는 출판 편집자다. 우리는 4년차 부부지만, 연애 기간은 거의 없었다.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은 꽤 길었지만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판단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지 2주가 안 되어 혼인신고를 했다.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결혼식도 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알린 다음에는 결혼식을 올려야 할지도 몰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어디서 살지? 일단 집부터 알아보자. 우리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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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크로 살기로 한 것을 어떤 신념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출산은 우리 부부에게는 절대로 계획되지 않을 비이성적인 판단에 불과할 뿐이다. 내 아내는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출산과 육아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어떤 어머니들은 종종 “내가 너를 얼마나 힘들게 낳았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이가 빠지고, 죽을 위기도 수차례 겪었다고들 한다. 사랑이 희생을 낳는다는 것은 알겠다. 이미 희생한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통 중의 하나를 어째서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고통이 언젠가 자신에게 찾아올까 봐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다. 희생하지 않아도 나와 아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것이다.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에 우리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낼 것이다. 일단 우리는 아이를 낳는 것보다읽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 그러면 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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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이가 말하는 ‘아이에 대한 책임’이라는 말이 굉장히 형이상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이미 부과된 경제적 책임이나 사회적 책임이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애를 안 낳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압박이 더 심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애를 많이 낳았다. 만약 우리 부부도 그 시절에 태어났으면 애를 낳았을지도 모르지. 여기저기 부모와 친인척이 몰려와서 그러면 안 된다고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다 줬다면, 그냥 한번 낳고 말자, 낳아줘야 되는 건가 보다 했을지도 모른다. 애 낳아야 더 열심히 일하고, 돈도 많이 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힘으로! 얼마나 끔찍한가? 우리 부부가 딩크인 핵심적인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애를 낳지 않는 이유는 차라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이다. 돈이 있든 없든 애를 낳지 않겠다는 거다. 사회가 어떻든 애를 낳지 않겠다는거다. 딩크 부부에게 필요한 자유는 아이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그냥 ‘자유’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는 지금 행복하다. 나도 그렇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생활이고, 목표이고, 행복이다. 그리고 행복은 거절에 있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내 아내의 이름을 자꾸 부른다. 밖에서 왜 부르냐고 물어보면 그냥 불렀다고 한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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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크 부부가 말하는 '자유'
우리 부부는 세상에 좋은 것이 서로밖에 없다. 나는 아이를 낳을 자신이 있고, 철이 들었고, 인구 절벽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다. 단지 우리 부부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이다. 과거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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