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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1. 이월화 (본명 : 이정숙)

 

출생 : 1904년 02월 01일

서거 : 1933년 03월 18일 (향년 29세)

 

데뷔 : 1920년 (연극 '부활')

은퇴 : 1928년 (영화 '지나가는 비밀')

활동기간 : 8년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여배우라고 대중매체 학자들에게 평가받는 인물로 사실상 현 여성배우의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음.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이며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인해 기생으로 살다가 한 지역유지의 첩이 되었음.

 

남편이던 지역유지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다니게 되었고 당시 경성(서울) 최고의 연극극단이 소속된 우미관에 우연히 방문했다가 연기에 흥미를 느껴 학당을 자퇴하고 배우로 데뷔하게 됨.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본인이 소속된 극단 토월회에서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던 배우였다고 함. 그러나 토월회의 창립맴버이자 같은 배우였던 박승희(1901~1964)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박승희는 이미 결혼까지 한 유부남이였음.

 

이후 이월화는 토월회에서 탈퇴하고 본격적으로 영화배우로 전향함. 하지만 신일선, 김소영, 김신재 등의 라이벌에 밀려  큰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키워준 양모로부터 금전지원을 강요받음.

 

그러던 중 이씨라는 청년과 살림을 차려 중국 상해로 이민을 가기도 했지만 실패하고 서울대 법학도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실패함. 실의에 빠진 그녀는 다시 기생이 되어버렸음.

 

이월화는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영화배우로 복귀하지만 흥행에 실패했고 영화배우 생활을 사실상 접은 뒤 본업이던 연극배우로 돌아옴. 이후 스스로 극단을 만드는데 극단의 사장이던 대구의 거부 남성 허씨와 결혼을 했음.

 

그와 함께 중국 상해로 다시 이민을 갔고 이월화는 생계를 위해 무용수까지 함..그러나 빈곤으로 허씨는 스스로 자살을 택하게 됨. 이월화는 무용수로 일하던 중 일본계 중국인 이춘래와 사랑에 빠져 세번째 결혼을 하고 다시 조선으로 귀국함

 

이후 사실상 배우활동을 접고 포목상으로 살다가 1933년 29세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음.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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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2. 복혜숙 (본명 : 복마리)

 

출생 : 1904년 06월 07일

별세 : 1982년 10월 05일

 

데뷔 : 1920년 (연극 '오!천명')

은퇴 : 1982년 (영화 '낮은대로 임하소서')

활동기간 : 62년

 

이월화와 더불어 한국 최초의 여배우로 언급되는 인물이며 당대의 여배우들이 결혼을 하면 은퇴했던것과 달리 그녀는 노년이 되어서도 배우활동을 지속했음. 

 

배우로 활동한 시기는 무려 62년으로 동시대 후배 배우 석금성이 1988년 이 기록을 깨기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여배우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음. 

 

충남 보령 출신으로 그녀는 당시 종교탄압을 피해 활동하던 개신교집안 출신이며 8살때 교회 연극에서 성모 마리아역을 맡아 활동하며 일찌감치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함. 

 

이화학당 보통과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요카하마 기예학교를 다녔는데 이때 영화, 연극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경성의 연극극단 신극좌에 입단해서 1920년 연극배우로 데뷔했음.

 

당시에는 여자가 배우를 하는 사례 자체가 없었기에 이월화와 더불어 1920년대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여배우이기도 함. 당시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벚꽃이 녹아든 여성'이라고 불릴정도로 인기가 좋았음

 

영화매체는 1923년 데뷔했는데 이 당시 이 영화의 제작사가 조선총독부여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네마네하는 문제가 그녀 타계 이후 생기기도 했음. 

 

1929년 25세 나이에 의사였던 남편과 결혼 후 유부녀 + 애엄마가 되면서 작품이 들어오지 않자 20대 중반 나이부터 어머니, 할머니 역할을 맡아서 하기 시작함. 다행히 출중한 연기력으로 완벽하게 소화해서 그 이후에도 배우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음.

 

해방, 6.25 휴전 이후 1962년부터는 TV드라마에도 출연하기 시작함. 말년에도 드라마, 영화, 연극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다가 1982년 78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별세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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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 서있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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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석금성

 

출생 : 1907년 12월 05일

별세 : 1995년 09월 03일 (향년 87세)

 

데뷔 : 1925년 (연극 '추풍 감별곡')

은퇴 : 1991년 (드라마 '분레기')

활동기간 : 66년

 

1920년대 후반 ~ 1930년대 중반 전성기를 누린 여배우, 배우로 활동한 기간만 무려 66년으로 연극배우 백성희가 2011년 이 기록을 깨기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랜기간 활동한 여배우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음.

 

현재 북한이 된 평안남도 지역에서 태어났고 빈곤한 형편탓에 일찌감치 기생이 됨. 이후 이리저리 떠돌다 연극극단 토월회 사장의 눈에 띄게 되어 1925년 연극배우로 데뷔했음. 

 

1920년대 후반부터 영화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 중반까지 괜찮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음. 1940년대 중반부터는 나이탓에 어머니, 할머니역을 맡아 활동하기 시작함. 말년에도 영화, TV드라마를 찍으면서 배우로 활동했음.

 

18살때 충청도 갑부 이충직과 결혼해 장남 이택균(1926~2011)을 낳았지만 이충직과 갈등으로 인해 3년만에 이혼,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과 결혼해서 2남 2녀 자식들을 낳음. 하지만 1948년 남편이 월북하여 자녀들과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고 함.

 

북한으로 떠난 자식들중 장녀 최로사(1931~2011)은 시인이 되었고 막내아들 최호섭도 북한에서 배우가 됨. 석금성은 계속 배우활동을 지속하다가 1995년 87세에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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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일선

 

출생 : 1912년 09월 21일

별세 : 1990년 06월 03일 (향년 78세)

 

데뷔 : 1926년 (영화 '아리랑')

은퇴 : 1936년 (영화 '아리랑3')

활동기간 : 10년 (잠정은퇴기간 제외시 4년)

 

1920년대 중반~1930년대 초반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조선의 연인이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배우라고 볼 수 있는 인물임.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출신으로 어린 시절 양친을 모두 여의고 오빠밑에서 자람. 이 오빠는 일본 순사 출신인데 완전 개망나니여서 14살이던 신일선을 집에서 내쫒았고 1925년 조선예술가극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단역으로 일하다가 영화감독 나운규의 눈에 띄게 됨.

 

이후 1926년 영화 아리랑으로 데뷔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외모로 최고의 인기를 누림. 사실 이때 신일선은 연기를 전공한적 자체가 없어서 현재 기준 발연기지만 워낙 외모가 출중한터라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되었다고 함.

 

1926~1927년 무려 16편의 영화를 찍을정도로 잘나갔던 그녀는 1927년 15세 나이에 호남의 부호 양승환과 혼인해서 16세, 17세에 두 아들을 연년생으로 낳게 됨. 이 결혼은 신일선의 오빠가 여동생을 팔아넘긴 강제적인 결혼이였고 도박에 빠진 남편이 재산을 탕진하고 가정폭력까지 휘두르자 그녀는 자살까지 기도함

 

결국 도망치다시피 이혼한 그녀는 7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1933년 이혼 후 다시 배우로 복귀했음. 그러나 당시 그녀는 이미 이혼녀에 애엄마였고 문예봉, 김신재 등의 여배우들에 밀리게 되었다고 알려짐.

 

배우생활도 실패하자 1935년 가수로 데뷔해서 일본까지 건너가 활동했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1936년 연예계를 아예 은퇴함. 이후 유곽포주의 첩으로 살기도 했고 생활고로 기생이 되기도 했음.

 

심지어 그녀의 차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용되어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어 참척까지 경험하게 됨. 6.25 중 한 남성과 재혼을 해서 이후 이 남성과 같이 살아감.

 

그녀의 말년도 참 파란만장했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식당을 차렸지만 갑상선 문제로 건강이 악화되어 폐업했고 선술집, 여관사업도 했지만 망했으며 심지어 재혼한 남성도 사업이 망한 후유증으로 화병에 걸려 세상을 떠남.

 

건강까지 악화되자 경북 청송지역의 암자에 들어가 수행하며 살았고 1977년 65세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지며 반신불수가 되었음. 이후 큰아들의 부양을 받으며 노년을 보냄.

 

1990년 78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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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옥

 

출생 : 1911년 04월 02일

별세 : 1969년 10월 22일  (향년 58세)

 

데뷔 : 1927년 (영화 '낙원을 찾는 무리들')

은퇴 : 1969년 (영화 '후취댁')

활동기간 : 42년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중 한명으로 중견배우 최민수씨의 외할머니이기도 함. 함경북도 함흥군 출신으로 어린 시절 가세가 기울자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고 1927년 나운규 감독의 영화 '낙원을 찾는 무리들'로 데뷔했음.

 

배우 이외에 가수로써도 큰 성공을 거둔 첫 연예인으로 사실상 원조 멀티엔터테이너로 평가받기도 함. 영화배우로 데뷔 후 2년뒤 극단 토월회에 입단해서 연극배우 활동도 병행했고 18살에 결혼해 1남 1녀 자식들을 낳음.

 

193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눈물연기를 너무 잘해서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함. 

 

딸 강효실(1932~1996)도 배우가 되었고 배우 최무룡(1928~1999)과 결혼해 1남 4녀를 낳는데 이들중 1남이 바로 최민수임. 어쨌든 전옥은 1950년대부터는 어머니, 할머니역을 하기 시작했고 6.25 휴전 이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함

 

말년에도 활발하게 배우활동을 지속하던 중 1969년 58세 나이에 과수원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별세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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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소영 (본명 : 김혜득)

 

출생 : 1914년 01월 19일

별세 : 1989년 04월 08일 (향년 75세)

 

데뷔 : 1927년 (영화 '뿔빠진 황소')

은퇴 : 1948년 (영화 '수우')

활동기간 : 21년

 

1930년대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여배우들중 한명이기도 함. 강원도 영월 출신이며 경성으로 이주 후 배화여고를 다니다가 가세가 기울며 학업을 중단하게 됨. 

 

돈을 많이 벌수도 있다는 일명 길거리케스팅으로 1927년 영화계에 데뷔했고 예쁜 외모로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자리에 우뚝 올라가게 되었음. 또한 토월회, 동양극장 등 당대를 대표하는 연극극단에서도 활동함.

 

단 본인이 출연한 영화들중 일부가 군국주의 옹호 영화인지라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간 인물임. 1933년 19세 나이에 결혼해서 딸 1명을 낳았음.당대 여배우들이 결혼과 출산을 하면 인기를 잃은것과 달리 1930년대 중반~후반에 그녀의 인기는 절정을 찍었다고 함.

 

명랑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고 외모가 서구적인터라 일본에서 잡지모델을 하기도 했음. 첫남편과 사별 후 좌익계열 무용수 조택원과 만나며 1948년을 끝으로 배우활동은 사실상 끝이 남.

 

조택원과 재혼 후 두사람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불화로 이혼했고 그녀는 미국 LA에 정착해서 살다가 한때 귀국해서 딸 추나미와 살았고 다시 LA로 정착해서 살다가 1989년 75세 나이에 지병으로 그곳에서 별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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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예봉 (본명 : 문정원)

 

출생 : 1917년 01월 03일

별세 : 1999년 03월 26일 (향년 82세)

 

데뷔 : 1932년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

은퇴 : 1997년 (영화 '먼 후날의 나의모습')

활동기간 : 65년

 

1930~1940년대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여배우로 해방 이후 월북해서 북한으로 간 뒤로도 배우활동을 계속 지속했던 인물임. 아버지 문수일 역시 일제시대 연극배우로 그녀는 1932년 영화를 촬영하면서 배우로 데뷔했음.

 

1930년대 중반부터 인기가 급상승했고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누림. 16살 어린 나이에 극작가였던 남편과 결혼해서 17살, 20살에 두 자녀를 낳음. 1940년대 출연한 영화가 전형적인 선정영화인터라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기도 함.

 

해방 이후 좌익으로 전향하여 월북했고 북한에서도 배우활동을 지속했으나 1960년대 중반 남편이 숙청되며 본인도 지방으로 쫒겨났음. 그리고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다시 배우로 복귀하게 된것으로 알려짐.

 

말년에도 배우활동을 지속하다가 1999년 82세에 세상을 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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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신재

 

출생 : 1919년 03월 31일

별세 : 1998년 03월 31일 (향년 79세)

 

데뷔 : 1937년 (영화 '심청')

은퇴 : 1989년 (영화 '잡초들의 봄')

활동기간 : 52년

 

1930년대 후반 ~ 40년대 중반까지 큰 인기를 누린 여배우, 전성기때 정상급 여배우들중 노년기까지 배우활동을 지속한 몇 안되는 여배우이기도 함. 현재 북한지역이 된 평안북도 의주군 출신이라고 알려짐.

 

집안이 가난해서 일찌감치 신의주의 한 극장의 경리사원으로 일하던 중 훗날 남편이 된 영상기사 최인규와 16살에 결혼했고 그의 권유로 1937년 영화배우가 되어 데뷔하게 됨. 청순한 외모탓에 만년소녀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로 평가받음.

 

1940년대에도 배우활동을 지속했는데 남편 최인규가 제작한 영화들이 노골적인 친일영화였고 그녀 역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여러번 출연한터라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있음. 해방 이후 6.25 때 남편이 납북되자 혼자 두자녀를 키웠다고 함.

 

이후에도 1980년까지 배우활동을 계속 지속해나갔으며 1980년 출연한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라는 작품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는데 후배배우들이 다들 기립박수를 쳐줬다고 알려짐.

 

1983년 딸과 함께 버지니아주로 이민간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 미국을 오가며 배우활동을 지속한 그녀는 1998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병원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79세 나이에 타계했음.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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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은진

 

출생 : 1918년 09월 06일

별세 : 2003년 07월 16일 (향년 84세)

 

데뷔 : 1937년 (연극 '춘향전')

은퇴 : 1997년 (드라마 '여자')

활동기간 : 60년

 

1930~40년대에 활동해서 전성기를 누린 여배우로 무려 60년간 수많은 드라마, 영화, 연극에 출연해서 나잇대 있는 팸붕이들은 얼굴을 알수도 있는 분임.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경성전기회사 평사원으로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우연치않게 연극을 본 후 회사를 퇴사하고 연극극단에 입단해서 배우로 데뷔했음.

 

외모는 아름답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지만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서 높은 인기를 누림. 1940년대 후반부터 주로 어머니, 할머니 연기를 시작했고 사실상 1950~80년대 거의 모든 드라마, 영화에서 나이 든 여성의 단골배우였다고 볼수 있음.

 

용의눈물이라는 드라마에서 공민왕의 왕비 정비 안씨 역할을 맡은걸로도 알려졌고 영화 유작인 '축제'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력을 선보임. 1997년 60년의 연기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함.

 

이후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노년을 보내다가 2003년 7월 84세에 노환으로 별세하심.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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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윤인자 (본명 : 윤인순)

 

출생 : 1923년 03월 10일

별세 : 2012년 08월 21일 (향년 89세)

 

데뷔 : 1941년 (연극배우로 데뷔)

은퇴 : 1999년 (영화 '얼굴')

활동기간 : 58년

 

1950년대 큰 인기를 누린 여배우로 한국 여배우들중 최초로 키스 촬영, 상체 노출을 한 배우라고 알려짐. 현재 북한 지역인 황해도 시리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찌감치 연극에 눈을 띄게 되어 연극배우로 데뷔했음.

 

이후 현재 중국의 동북3성이 된 만주지역에서 연극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6.25 휴전 이후인 1954년 영화계에 발을 딛게 됨. 1950년대 당시 한국 여배우들중 최초로 키스씬, 상체노출 장면을 촬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음.

 

1965년 영화 빨간마후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고 중년, 노년의 나이가 되서도 배우활동을 지속함. 다만 3번의 결혼생활이 모두 실패했고 1974년부터 78년까지 4년간 비구니로 출가해 도를 닦기도 함. 또한 입양한 자녀들의 배신, 심지어 아들의 방화로 말년에 생활고까지 경험해야 했음.

 

2007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면 배우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라고 밝힐정도로 배우생활에 대한 회한이 있던걸로 보여짐. 2012년 89세 연세에 노환으로 별세하심.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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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여성)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11. 백성희 (본명 : 이어순이)

 

출생 : 1925년 09월 02일

별세 : 2016년 01월 08일 (향년 90세)

 

데뷔 : 1945년 (연극 '봉선화')

은퇴 : 2013년 (연극 '바냐아저씨')

활동기간 : 68년

 

1945년 데뷔해서 2010년대까지 활동한 여배우로 한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여배우라는 기록 역시 가지고 있음. 거의 대부분 연극작품만을 출연하고 영화, 드라마 등의 매체에 거의 출연하지 않아 인지도는 매우 낮음.

 

마를린 먼로가 방한했을때 영화배우 최은희와 함께 나가 환영식을 같이 한적이 있다고 함. 2016년 1월 노환으로 별세함.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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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황정순

 

출생 : 1925년 08월 20일

별세 : 2014년 02월 17일 (향년 88세)

 

데뷔 : 1943년 (영화 '그대와 나')

은퇴 : 1986년 (영화 '88짝꿍들')

 

1940년대 데뷔해서 1980년대까지 40년 가량 활동한 배우로 비교적 젊은 나이인 20대부터 어머니, 할머니역을 도맡아서 했음. 주로 영화계에서 활동한터라 청룡영화상, 대종상을 수상했고 연극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고 알려짐.

 

대종상 여우조연상 최다 수상자로 무려 3번이나 수상했음. 1986년 은퇴할때까지 43년간 배우로 활동하며 수백편의 유작을 남김. 은퇴 후에는 시상식, CF 위주로 활동했고 2014년 지병인 알츠하이머로 88세에 타계함.

 

결혼을 했지만 남편과 사이에 자녀가 없었고 사후 남편의 전처 자식과 큰오빠의 외손녀 사이에 유산분쟁이 터져서 뉴스에 나오기도 했음.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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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최은희 (본명 : 최경순)

 

출생 : 1926년 11월 20일

별세 : 2018년 04월 16일 (향년 91세)

 

데뷔 : 1942년 (연극 '청춘극장')

은퇴 : 1990년 (영화 '마유미')

활동기간 : 48년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중 한명으로 1950~60년대에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배우들중 한명임. 경기도 광주 출신이며 1942년 연극배우로 처음 배우생활을 시작하게 됨.

 

영화감독 김학성과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이후 영화감독 신상옥과 재혼하게 됨. 신상옥의 작품들 위주로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단번에 195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었음. 배우 이외에 연출가로써 재능도 있어서 1965년 본인이 만든 작품 민며느리가 크게 히트하기도 했음.

 

신상옥과 사이에 자녀는 없으며 입양한 자녀 2명, 신상옥이 배우 오수미와 사이에서 낳은 자녀까지 친자식처럼 키웠다고 함. 사실 요즘 사람들한테 이분이 알려진건 1978년 홍콩에서 남편과 함께 강제납북되었다는 사실임.

 

이후 북한에서도 배우활동을 지속하다가 19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13년간 한국, 미국을 오가며 지내다가 1999년에 영구귀국했음. 

 

2006년 남편 신상옥이 별세했고 2010년부터 척추질환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으며 2017년부터는 지병인 신부전으로 투병하다가 2018년 91세에 노환으로 별세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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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주증녀

 

출생 : 1926년 02월 11일

별세 : 1980년 09월 18일 (향년 54세)

 

데뷔 : 1943년 (연극 '무영탑')

은퇴 : 1977년 (영화 '야행')

활동기간 : 34년

 

1940년대 중반 ~ 1950년대 후반 최은희, 문정숙, 이민자, 조미령과 더불어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여배우들중 한명으로 현재 북한이 된 함경남도 영흥 출신이라고 알려짐. 

 

1943년 연극으로 데뷔했고 이듬해 광복이 된 후 영화계에 데뷔해서 스타덤에 올랐지만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다소 전성기가 일찍 끝나버림. 휴전 이후 김지미, 엄앵란, 최지희 등 젊은 배우들이 등장하자 30대 초반 나이부터 어머니 역할을 하기 시작함.

 

당시에는 지금처럼 나이대 높은 배우들이 많은 시기가 아니였기에 많은 어머니 역할을 맡아 소화했고 대종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음. 

 

1978년 뇌종양이 발병하며 사실상 배우활동을 중단했고 2년간 투병끝에 1980년 54세로 별세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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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민자 (본명 : 이용랑)

 

출생 : 1929년 04월 10일

별세 : 1986년 01월 19일 (향년 56세)

 

데뷔 : 1944년 (영화 '태양의 아들들')

은퇴 : 1967년 (영화 '팔도강산')

활동기간 : 23년

 

1940년대 중반 ~ 1950년대 후반 최은희, 문정숙, 조미령, 주증녀와 더불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던 배우들중 한명, 당대 다른 여배우들이 빈곤층, 서민가정 출신인것과 달리 서울에서 한의사 가정의 넷째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부유하게 살았음. 

 

중학교 2학년때 우연치않게 연극작품을 본것을 계기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1944년 15세때 영화 태양의 아들들로 데뷔함. 16살때 배우 김진규(1923~1998)와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음.

 

배우로써 전성기가 짧았는데 6.25 전쟁으로 인해 사실상 문화예술계가 쑥대밭이 되어버렸기 때문임(....) 남편 김진규와 14년 결혼생활끝에 1959년 이혼했고 이후 조연급 배우로 활동함.

 

이후 한국인 남성과 2번째로 결혼하지만 이 결혼생활 역시 실패했고 1968년 일본인 남성과 3혼을 한 뒤 일본으로 이주함. 도쿄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클럽 '민자'를 운영했음. 

 

평소 건강했던 그녀는 1986년 1월 1일 새해 첫날 지병인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일본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2주 이상 치료를 받다가 1월 19일 57세 나이에 별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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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문정숙

 

출생 : 1927년 03월 12일

별세 : 2000년 03월 01일 (향년 72세)

 

데뷔 : 1943년 (연극 '왕자호동')

은퇴 : 1996년 (영화 '학생부군신위')

활동기간 : 53년

 

1940년대 중반 ~ 1950년대 후반 전성기를 누린 여배우들중 한명, 현재 북한이 된 평안북도 선천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보성여학교에 다니다가 16세에 연극배우로 데뷔했음.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영화 '양공주'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50년대에는 내성적이고 순응적인 역할들을 주로 맡았지만 배우로써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준 이만희 감독과의 영화들에서는 적극적인 여성상을 주로 연기함.

 

그 당시 대부분 여배우들이 결혼 후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면 조연으로 밀린것과 달리 연기력이 돋보적이여서 나이 40대에도 주연으로 영화계에서 활동했음. 나이가 들어 중년, 노년이 된 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찍었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2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상 2회를 수상할정도로 연기력도 인정받았음.

 

2000년 지병인 간암으로 72세에 별세했고 사후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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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조미령

 

출생 : 1929년 02월 04일 (현재 95세)

 

데뷔 : 1937년 (연극 '임자없는 자식들')

은퇴 : 1981년 (영화 '두아들')

활동기간 : 44년

 

1950년대 중반 ~ 후반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여배우, 경남 마산 출신이며 예술계 집안인터라 8살때 연극 '임자없는 자식들'에서 아역배우로 배우활동을 시작했음. 영화계에서는 1948년 '해연'으로 데뷔했고 1950년대 중후반 여자배우들중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림.

 

영화 해연의 제작자 이칠혁과 결혼해서 1남 2녀를 낳았지만 사별했고 재미교포 최동원과 재혼해서 딸을 낳고 1969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가서 골동품가게를 경영하며 여생을 보냄. 1982년 중년의 나이에 영화 '두아들'에 출연하기도 했음.

 

이후 연예계와 담을 쌓고 살았고 간혹 미국 교민, 여행객들이 그녀를 알아보기도 했으나 사진촬영을 철저히 거부했다고 함. 현재 95세로 생존중이며 국내 여자연예인들중 최고령자에 해당됨.

 

가장 최근 소식은 2015년 당시 자신의 데뷔작 해연이 발굴되자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것과 같이 너무 기뻤다'라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밝힌적이 있음.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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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도금봉 (본명 : 정옥순)

 

출생 : 1930년 08월 27일

별세 : 2009년 06월 03일 (향년 78세)

 

데뷔 : 1949년 (연극배우로 데뷔)

은퇴 : 1997년 (영화 '3인조')

활동기간 : 48년

 

1950년대 후반 ~ 196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누린 여배우들중 한명, 당대 최고의 팜프마탈 여배우로 도화적인 이미지로 유명했다고 함. 경기도 인천 출신이며 만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 연극배우로 19세에 데뷔했음.

 

연극배우 시절 예명인 지일화로 활동했고 이때부터 뛰어난 연기력으로 연극계에서부터 이름을 알렸다고 함. 1957년 27세 나이에 뒤늦게 영화계에 데뷔한 후 천의 얼굴이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누림.

 

여러 스캔들로도 유명했는데 프로복싱 쳄피언 강세철, 배우 남궁원(1933~2024), 예비역 장성 등다양했음. 사업가로써 꿈도 커서 '고향에 고급호텔을 짓겠다'라는 소망이 있었음. 1980년대 50대까지 활발하게 배우활동을 지속하다가 97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3인조'를 끝으로 배우생활에서 은퇴함.

 

그리고 삼청동에서 복어요리집을 경영하다가 그만두고 한참동안 소식이 없던 중 2009년 78세 나이에 폐혈증으로 별세함. 배우에서 은퇴 후 2005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노인시설에 입소할때까지 행적자체가 미궁으로 알려짐.

 

가족관계의 경우 첫남편과 사이에서 슬하에 쌍둥이 아들이 자녀로 있는것으로 알려짐.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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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빈화 (본명 : 이숙한)

 

출생 : 1934년 02월 03일 (현재 90세)

 

데뷔 : 1952년 (영화 '성불사')

은퇴 : 1969년 (영화 '황진이의 첫사랑')

활동기간 : 17년

 

1950년대 초반~후반 인기를 누린 여배우로 서울 돈암동 출신, 원래 무용수를 꿈꿨지만 영화감독 윤봉춘의 권유로 영화배우가 되어 1952년 데뷔하게 되었음.  

 

195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에서 스타가 되었으며 69년 은퇴할때까지 많은 작품들을 남겼음. 현재에도 살아있는 몇 안되는 50년대 여배우로 3년전 영화의 날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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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엄앵란 (본명 : 엄인기)

 

출생 : 1936년 4월 11일 (현재나이 87세)

 

데뷔 : 1956년 (영화 '단종애사')

은퇴 : 2022년 (TV예능"사연있는 쌀롱하우스 '')

활동기간 : 66년

 

1950년대 후반 ~ 196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남편 신성일 역시 당대 최고의 배우였으나 그녀도 당대 최고 여배우들중 한명이였음. 사실 배우로 활동한 시간보다 TV예능 패널로 활동한 시간이 훨씬 더 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부모님 역시 연극배우 출신임. 어머니가 대학을 낙방하길 바랄정도로 가난했는데 숙명여대에 합격했고 등록금을 벌 방법을 찾다가 배우로 데뷔하게 되었음. 당시에는 고학력자 배우가 없었기에 엄앵란은 똑똑한 신여성이미지로 인기가 높았다고 함.

 

1964년 배우 신성일과 결혼하며 배우에서 은퇴했지만 남편의 사업실패, 정계진출 후 파산으로 인해 한때 대구에서 식당을 경영하거나 영화사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음. 그러다가 1990년대 아침마당의 상담코너에 패널로 출연하며 연예계에 복귀하게 됨.

 

신성일과 사이에 1남 1녀 자식들이 있으며 2022년까지 방송인으로 활동했으나 그 이후로 건강이 악화되어 방송출연을 안하고 있음. 관절 수술 이후 거동이 불편하다고 함.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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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최지희 (본명 : 김경자)

 

출생 : 1940년 01월 22일

별세 :  2021년 10월 17일 (향년 81세)

 

데뷔 : 1958년 (영화 '아름다운 악녀')

은퇴 : 1994년 (드라마 '인간의 땅')

활동기간 : 36년

 

1950년대 후반 ~ 6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누린 배우, 일본 오사카 출신이며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했고 18세 나이에 영화 아름다운 악녀로 스크린에 데뷔함. 배우활동 이외에 패션디자이너, 영화의상감독으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음.

 

36년의 배우생활동안 200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적이 있음. 1994년 배우생활을 완전 끝낸뒤로 평범하게 노년을 보내다가 2021년 81세에 지병인 루프스병, 알츠하이머로 별세함.

 

26살에 결혼해서 딸 1명을 낳고 이혼했음.

 

일제강점기 ~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여배우들 정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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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지미 (본명 : 김명자)

 

출생 : 1940년 07월 15일 (현재나이 83세)

 

데뷔 : 1957년 (영화 '황혼열차')

은퇴 : 1992년 (영화 '명자 아끼꼬소냐')

활동기간 : 35년

 

195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까지 근 40년간 활동한 여배우로 사실상 한국 영화계에서 손가락안에 들어갈정도로 인기, 위상을 다 가진 배우라고 평가받음. 

 

충남 대덕군 출신이며 부친이 큰 인쇄업체를 경영해서 8남매 중 7째임에도 미국유학을 준비할정도로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자람. 집에 그랜드피아노가 있고 자가용으로 자동차 뷰익이 있을정도로 부잣집 출신이였음.

 

영화감독 김기영의 눈에 띄게 되어 17세 나이에 영화배우가 되었고 90년대까지 450편의 영화에 출연했음. 1980년대에는 여배우 최초로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서 영화사 CEO로 직접 경영에 나서게 됨. 

 

수상경력도 화려한데 청룡영화상 1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3회, 청룡영화상 영화부문 최우수상 3회를 수상함. 여배우로써 당시 기준 노역으로 넘어가는 40대 나이에도 흥행작을 배출한터라 상업적인 평가도 매우 좋음.

 

결혼을 4번이나 한것으로 알려졌는데 첫남편인 영화감독 홍성기와 두번째 남편 배우 최무룡과 사이에 슬하에 두 딸이 있음. 

 

2000년 미국 LA로 이주했고 두 딸, 8명의 형제자매들중 4명, 손주들과 거주중임.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함.

 

 

 

 

대략 이정도로 추정됨. 이후 1960년대부터는 트로이카 배우들이 등장함

 

 

 

참고로 막짤 김지미 선생님의 경우
본문 내용처럼 총 4번 결혼하셨는데
그 중 3번째 남편이 바로 나훈아 선생님이시라고
(사실혼으로 6년을 사셨다고 함)
당시 보기드문 연상 연하 결혼이라 화제였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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