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장례 날도 아니고, 생일을 이러는건 너무 오바다 싶지만...
마오안잉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했던 '마오쩌둥'의 아들
애초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고 함.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을 잡은 귀하신 도련님이었음
마오쩌둥은 후계자 수업의 일환으로, 경험을 쌓게 해줄 셈이었음
마오쩌둥과 마오안잉
당시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마오안잉을 데려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후환이 노답일 것을 직감하고 마오쩌둥을 말렸지만
마오쩌둥의 결심으로 마오안잉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됨
물론 최전선은 당연 아녔고
안전한 사령부에 배치됨
마오안잉
그러나 북한의 호의가 마오안잉의 죽음을 부르는데...
북한으로선 어쨌든 자기나라를 위해 참전해준 게 고마워서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에게 당시에 귀한 계란을 구해서 선물함
계란을 선물한 북한군 - 박일우
펑더화이
우리 휴전 협정문서에 이름적힌 사람이 바로 이 사람
펑더화이는 부상병에게 넘기라며 계란을 먹지 않았는데...
무려 사령관이 손을 안댄 계란을 아무도 감히 손을 못대는 중...
- 당시 사령부에는 부상병이 없기도 했어, 그만큼 안전했던 곳
마오쩌둥의 아들인 마오안잉이 내가 먹겠다며 계란 볶음밥을 해먹음

그리고 그는 연기 때문이었는지, 미군의 시야에 잡혀서 폭격 당하게 되고 바로 사망
한반도에 도착한지 한달만이었음
+ 중국 사령관 펑더화이는 중국에 돌아간 뒤
문화혁명 와중에 뚜드려 맞고 사망
중국으로선 어쨌든 나름 영웅인데
마오쩌둥이 자기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앙심을 품었단 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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