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나라 사마염
삼국을 통일한 그 사마염이 맞다.

모용 선비가 285년에 부여를 침공해서 수도를 개털어먹고
포로 1만여명을 잡아갔다.
당시 부여 국력을 생각하면 1만여명의 포로는
나라 망할 정도의 타격이었음
선비족이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던 사마염은
부여를 돕지 않은 장수를 파면하고 포로로 잡혔다가 중국으로
팔려온 부여인들을 돌려보내는 등의 지원을 해줬다.
덕분에 부여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었고
고구려도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킹갓엠페러 만력제
한반도 기준으로 '대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평생 일 안하다가 임진왜란 때 의욕적으로 정사에 개입해
'재조지은'을 베풀었다.
군사적 지원 초창기 명나라가 보낸 주력군 기병이
조선에서 말 식량을 못구해 굶어죽는 사소한 찐빠가 났었지만
중국에서 보내는 물량은 일본군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수세로 몰리게 만들었다.

특히 물적 지원은 어마어마했다.
당시 조선 1년 세입이 곡식(쌀 외에 보리, 조 등 기타 잡곡 포함) 38만석인데
만력'대'제께서는 무려 100만석을 보냈다.
덕분에 조선군 뿐만 아니라 피난을 해 터전을 잃은
조선 백성까지 아사를 면했다.
정유재란 때는 무려 20만명을 보내고 은화 500만냥을 지원했을 정도
조선 기준 만력제는 '대제'가 맞다.

강희제
조선의 가장 참혹한 대기근이었던
경신대기근 (1670년 경술년에서 1671년 신해년까지 진행된 기근)에
조선 조정에서 누군가 "청나라에 지원 한번 '부탁'해볼 까요?"
라고 했다가 삼전도에서 인조의 유연한 허리놀림을 목도했던
신하들이 득달같이 꼽을 줘서 '청나라의 지원' 안은 반려되었다.
자존심 좀 굽혔으면 십만여명 정도는 살렸을 것인데
조선 선비들의 기개가 이처럼 대단했다.
이후 숙종 재위 기간 1695년 을해년에서 1699년 기묘년까지 무려 4년 동안
지속된 을병대기근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다.
이때는 인조의 유연한 허리놀림을 목격했던
신하들도 모두 흙과 한 몸이 되었고
청나라는 남명을 완전히 제압하고 삼번의 난까지 제압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존심 굽힐만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국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강희제는 총 5만석의 식량을 조선에 즉시 보냈다.
하지만 통이 크셨던 만력대제와 다르게 2만석이 무상공여였고
나머지는 교역의 형태로 은화 등과 바꾸어갔다.
당장 식량이 급했던 조선 입장에서는 띠꺼웠지만 급한 불은 끌 수 있었을 정도
다만 살짝 짜치게 강희제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푼거 알지?"라고 해서
조선 선비들의 자존심을 긁었고
식량 지원에도 불구하고 강희제에 대한 평판은
다른 청황제에 비해 조금 나은 정도였다.
번외 천조국 편

장개석과 루즈벨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약에 감동한 장개석은
카이로 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안을 제시했고
연합군 물주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여기에 동의해
전후 대한민국은 '조선만은 우리가 먹게 해주십셔'라고 드러누운
일본의 갠세이에도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위 사진 제일 오른쪽에 흰옷 입은 제국주의자 놈은
식민지 독립에 극렬반대했었다.)

해리 트루먼
6.25 전쟁 북한이 남한을 불법 침공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트루먼은 개빡쳐서 쌍욕을 퍼붓고
연합군의 참전을 결정했다.
그야말로 재조지은 그자체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