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어디까지나 흥미 본위로 가볍게 작성된 글이며, 엄정성은 많이 배제되었습니다.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부분들 또한 서사에 맞추기 위해 편의상 생략·단정하였음을 알립니다.
영감을 얻은 글 - 영락제와 세조: 찬탈을 둘러싼 두 남자의 평행이론
🎊왕과 사는 남자 1300만 관객 돌파🎉
'왕과 사는 남자'가 2026년 첫 천만 영화에
오르며, '명량' 이후 자그마치 12년 만에
천만 사극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흥행 질주의 도착점이 어디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주인공 '단종'과 더불어 '세조'에 대한 관심
또한 영화 '관상' 이후로 최고로 뜨겁습니다.
한국 영화사 최고의 등장씬 중 하나로 꼽히는 그 장면
(편집본)
하투실리 3세
히타이트 신왕국의 군주
1.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올타임 레전드 중 한 명인
람세스 2세와 격돌했던 무와탈리 2세의 동생
2. 람세스 2세의 정치적 파트너이자 일종의 라이벌
3. 세계 최초의 평화 조약(※아님)을 체결한 것으로
나름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네임드
※엄밀히 말하면, '조약 당사국 양쪽의 판본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평화 조약
종종 '강대국끼리 동등한 최초'라고도 하는데 이 또한 문제의 여지가 있음
조카의 왕좌를 차지한 두 사람의 이야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1.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사람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명군이라 평가됩니다.
할아버지 라인
'태종'과 '수필룰리우마 1세'
태종은 일부 정책적 한계와 실책이
있음에도, 강한 왕권을 구축하고 국가의
운영 골격을 정비해 조선의 기반을
튼튼히 닦은 점이 높이 평가됩니다.
▶ 특히 정치적 능력이 두드러짐
반면 수필룰리우마는 즉위 전부터
적들을 연파한 명장 출신이었고,
즉위 후에는 공격적인 확장 정책으로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정복군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합니다.
▶ 특히 군사적 능력이 두드러짐
흥미롭게도, 두 할아버지 모두 즉위 과정에서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자의 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이방원처럼
수필룰리우마 또한 자신의 형제(※혹은 처남)를
시해하고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형제/이복형제/처남, 수필룰리우마는 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정비였던 '헨티'가 제1등급 왕녀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수필룰리우마는 단순히 왕의 사위가 아니라 일종의
양자로 취급되기에 실제로 왕의 아들인지 사위인지 혼동됨
할아버지 라인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자식 농사 대풍년입니다.
아버지 라인
'세종'과 '무르실리 2세'
두 사람은 즉위 과정부터 차이가 있는데,
최우선 후계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같습니다.
순수 폐급이라 나가리 된 양녕대군과 달리
수필룰리우마에게는 그야말로 빚어다 놓은
완벽한 적장자가 태자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병이 히타이트를 집어삼키고
수필룰리우마와 그 뒤를 이은 태자
'아르누완다 2세'가 연이어 사망
젊고 경험도 부족한 무르실리의
갑작스러운 즉위로 사방에서 반란이
우후죽순 터지는 최악의 상황
다행히도 무르실리와 그의 두 형,
유능한 신하들이 활약하여 위기의
히타이트를 정상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세종은 조선사 GOAT를 넘어서 많은 분들이
한국사 GOAT로 꼽는 명군이니 넘어가겠습니다.
2. 군주가 되기 전의 삶과 형제 관계
타고난 무골 / 병약한 아이
문종이 직접 활을 하사하고 작시(作詩)해서
읊어줄 정도로 무골 기질이 상당했던 세조.
이와 달리, 하투실리는 단명할 것이라고
여겨졌을 정도로 병약한 아이였습니다.
다행히도 무르실리 치세의 중신이자
훗날 전통적인 수도, 하투사의 총독직을
수행하는 명망 있는 인물 '미탄나무와'의
보호 아래에서 무사히 장성합니다.
두 사람 모두 왕위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세종 슬하엔 뛰어난 자식이 많았지만
가장 출중한 인물 셋을 꼽자면, 대체로
문종–수양대군–안평대군을 꼽습니다.
세조는 분명 능력도 있고 원래부터
야심가 기질을 품고 있던 것 같지만,
능력과 경험까지 모두 우위인 적장자
문종의 입지가 너무나 견고했습니다.
하투실리는 적자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고
사제로 지내는 동안, 아버지 밑에서 기반을
닦을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르실리 생존 시기에는 다소 어렸을 가능성이 있음
그런 하투실리가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중용하여 권력과 세력의 기반을 키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형 무와탈리였습니다.
즉, 두 사람은 모두 형이 죽기 전까지는
'형의 그림자' 속에서 가려져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3. 형의 죽음 이후, 조카의 입지
어린 적장자 임금 / 불안한 서자 대왕
세조와 하투실리 모두 처음부터 왕위를
향한 야망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조는 고작 일 년 남짓한 시간,
하투실리는 대략 칠 년 정도의 기다림 끝에
판을 뒤집는 찬탈자의 무빙을 시작합니다.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왕좌를 내준 단종과
달리 우르히테슙(무르실리 3세)은 문제를
야기할 정도의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서자라는 약점(※다만)이 있었습니다.
※히타이트의 계승 서열은 위계가 매우 뚜렷한 조선의 적서와 다르다.
제2등급 왕자(서자)는 제1등급 왕자(적자)에 비해 당연히 불리했지만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흠은 아니었다.
거기에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시리아 압박,
왕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내부 분쟁까지...
우르히테슙은 이런 난국을 돌파할 만큼의
정치력과 판단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우르히테슙 치세의 몇몇 내부 문제는
상당 부분 선왕 무와탈리 치세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의 연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와탈리의 신임 덕에 성장한
하투실리는 이 시점에서 수양대군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권력자였는데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강력한 병권과 독자적인 세력은 물론,
북방의 이민족까지 아우른 무력 집단을
거느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수양대군+김종서에
가별초까지 얹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권신이었던 셈이죠.
우르히테슙은 숙부의 권력을 억제하기
위해 강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4. 폐위 이후, 조카의 행방
비극의 폐왕 / 위험한 망명 군주
단종은 세조의 통제 아래서 결국
비극으로 삶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반면에 하투실리는 조카의 신변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우르히테슙은 시리아로 유배되고
다시 또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그 와중에도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등
주변 강대국의 지지를 타진했습니다.
심지어 미케네 그리스(아히야와)와의
접촉 시도 가능성으로 거론되는 기록
또한 확인됩니다.
결국 숙부의 추격을 피해 이집트로
망명하는 데 성공한 우르히테슙.
이후 하투실리는 람세스가 질릴 정도로
우르히테슙의 문제를 물고 늘어집니다.
나중에는 차라리 이집트 안에서 감독하여
히타이트 본토로 돌아와 힘을 키우지
못하게 해 달라고 청할 정도였습니다.
우르히테슙의 행적은 이후 흐려지는데
람세스의 표현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
"새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훗날 외교 문서에도 그 이름이 몇 차례
거론되는 것을 보면, 당시 근동 세계의
국제 정치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큰 손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5. 정실 부인
정희왕후 / 푸두헤파
세조와 하투실리 모두 조카에게는
비정한 숙부였지만, 부부 관계만큼은
매우 돈독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의 정비인 정희왕후와 푸두헤파는
수동적인 내조에 머물지 않고,
중요한 정치적 조력자로서 왕을
보필하는 데 크게 활약했습니다.
6. 세조 VS 하투실리 / 최종 평가
그림: Gemini/gpt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모두모두 행복하십시오~
근데 뛰어난 인물이 즉위하고 모처럼 이집트와의 평화가 찾아온
히타이트가 왜 저리 급 멸☆망한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하투실리의 능력을 일반적인 평가보다 낮게 평가하긴 하지만, 개인의 능력 보다도 내외부에 굵직한 문제가 많았던 게 한 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장 하투실리 아들인 투드할리야도 서부 반란, 이복형제한테 암살 위협, 아시리아한테 뚜까 맞기도 하고 이미 무르실리 때부터 역병으로 인해 농업 기반이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거기에 하투실리 때부터는 서서히 기후까지 문제를 일으켰으니...
당장 저 푸두헤파가 람세스한테 보낸 서신에도 우리 곳간이 불타서 다 거덜났는데 남은 건 또 우르히테슙이 바쳤다고 징징 거리는 내용이 있습니다ㅋㅋㅋ 이후에도 히타이트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암시하는 서신이 여러 차례 발견되지요. 무엇보다 급멸☆망 보다는 중심 권력이 무너지면서 우르르 와해된 형태에 더 가까워서 기후 문제나 난민, 외적 등등도 컸지만 내부에서 그걸 지탱할 힘이 없었다는 게 제일 큰 요인 같아요ㅎㅎ
오 제1등급 왕녀라는게 친딸이라는 뜻인가요? 아니면 왕녀끼리도 신분이 갈렸나
아 정실부인의 소생은 제1등급 왕자/왕녀(DUMU.LUGAL hantezis/DUMU.MUNUS hantezis)고 후궁의 소생은 제2등급 왕자/왕녀(DUMU.LUGAL tan pedas/DUMU.MUNUS tan pedas)입니다.
쉽게 말하면 적자녀/서자녀 개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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