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고대나 중세시대에 중앙 정부가 지방의 유력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는 방법은 뻔함.
군대를 몰수하거나, 주기적으로 숙청하거나.
그런데 17세기 일본 에도 막부(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는 아주 기상천외하고 우아한 방법으로 지방 영주(다이묘)들의 반란 싹을 잘라버림.
바로 참근교대라는 역대급 삥뜯기 시스템.
1. 네 돈을 다 쓰게 만들어 줄게
막부가 내린 명령의 핵심은 아주 간단함.
"전국의 모든 영주들은 1년은 자기 영지에서, 1년은 수도인 에도에 머물며 쇼군을 모셔라"
그리고 영주의 정실부인과 후계자(장남)는 에도에 영구적으로 인질로 잡아둠.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인질극 같지만, 이 제도의 진짜 무서움은 교통비와 유지비에 있음
2. 영주들의 등골을 부러뜨린 가오싸움
수백키로가 넘는 거리를 매년 왕복해야 하는데, 짐꾼 몇 명 데리고 조촐하게 갈 수가 없음.
명색이 한 지역의 왕인데 남들 보는 눈이 있으니까 가문을 상징하는 화려한 깃발, 수백~수천 명의 호위 무사와 시종들, 그리고 에도 쇼군에게 바칠 막대한 지역 특산물까지.
게다가 에도에 머무는 1년 동안 지낼 저택도 엄청나게 화려하게 꾸미고 유지해야 했음. 옆 동네 영주 저택보다 꿀리면 가문의 수치로 여겼으니까.
결과적으로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걷어들이는 1년 치 세금의 50%~70%를 출퇴근 비용과 수도 체류비로 탕진하게 됨.
돈이 없으니 무기를 살 수도, 용병을 모을 수도 없음, 반란? 꿈도 못 꿀 정도로 다이묘들은 만성적인 적자와 빚더미에 시달리게 됨
3. 기막힌 나비효과 : 일본을 바꿔놓다.
근데 이 다이묘 괴롭히기 시스템이 일본 역사에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옴
수백 명, 수천 명의 돈 많은 VIP들이 매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도를 향해 고속도로를 뚫고 지나가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 교통과 인프라 폭발: 행렬이 지나가야 하니 도로가 쫙쫙 정비되고, 강에 다리가 놓임
2. 지방 경제의 활성화: VIP들이 묵고 갈 거대한 숙박촌(역참)이 생기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 술집, 상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거대한 상권이 형성됨
3. 문화의 통일: 지방의 특산물과 문화가 수도로 모이고, 수도의 최신 유행이 다시 행렬을 타고 지방으로 퍼지면서 일본 전체의 문화적 수준이 상향 평준화가 되버림
반란을 막기 위해 지방 권력자들의 돈을 강제로 쓰게 만들었던 이 기발한 통제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약 260년 동안 일본을 전쟁 없는 평화 시대로 이끌었음.
아이러니하게도 다이묘들을 쥐어짜서 만들어진 이 거대한 전국구 도로망과 상업 인프라는 훗날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됨.
하지만 그 화려한 근대화 이후 일제가 주변국에 저지른 끔찍한 만행들을 생각하면 참 씁쓸해짐. 지배자의 불순한 통제욕이 우연히 국가적 발전을 낳았다고 해서, 그 힘이 항상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보여주는 일화인 듯.
다음편
참근교대로 털린 돈, 뒷주머니 차서 막부 엎어버린 지방 촌놈들
참근교대로 털린 돈, 뒷주머니 차서 막부 엎어버린 지방 촌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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