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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과 신문지로 꽁꽁, 83세 엄마가 딸에게 건넨 것 | 인스티즈

비닐과 신문지로 꽁꽁, 83세 엄마가 딸에게 건넨 것

오늘 아침, 엄마에게서 또 꽃 사진이 왔다. 휴대전화 카카오톡 알림을 열자 하얀 백합이 화면 가득 피어 있었다. 어떤 날은 수국이고, 어떤 날은 백합이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과 함께 "예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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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아침, 엄마에게서 또 꽃 사진이 왔다. 휴대전화 카카오톡 알림을 열자 하얀 백합이 화면 가득 피어 있었다. 어떤 날은 수국이고, 어떤 날은 백합이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과 함께 "예쁘지?"라는 말 대신 사진 한 장이 도착한다. 사진을 보는 순간, 엄마가 꽃 앞에 서서 얼마나 오래 바라보셨을지 자연스레 그려진다. 꽃을 좋아하는 딸들이 먼저 떠올라 보내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닐과 신문지로 꽁꽁, 83세 엄마가 딸에게 건넨 것 | 인스티즈▲ 수국과 백합 엄마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신 여름꽃 사진입니다.ⓒ 김남정


올해 여든셋이 된 엄마다. 엄마는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신다. 산책길에서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 보내신다. 사진 구도도 나보다 훨씬 좋다. 햇살이 가장 예쁜 방향을 찾고, 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를 고르신다. 처음에는 "사진을 참 잘 찍으신다"고만 생각 했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엄마는 꽃을 찍는 것이 아니라, 꽃을 바라보는 시간을 사진으로 보내고 계셨던 것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지난주 병원에 다녀온 날이 떠올랐다. 한 달 전쯤 엄마의 혈압이 많이 높아졌다. 오랫동안 같은 혈압약을 드셨는데도 수치가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결국 대학병원을 예약했고 여러 검사를 받은 뒤 하루 한 번 드시던 약을 아침 저녁으로 늘려 복용하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내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혈압이 점차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을 놓았다. 대신 더운 날씨에는 기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잘 드시고, 충분히 쉬고, 잠도 푹 주무시라는 당부를 들었다. 병원을 나와 엄마와 안양천을 걸었다. 벚꽃이 지고 초록 가로수길이 된 산책길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 백합은 아직 단단히 꽃봉오리를 닫고 있었다. 엄마가 발걸음을 멈추셨다.

"백합이 피면 여기가 얼마나 향기로운지 몰라."

잠시 꽃봉오리를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피면 사진 보내줄게."

그렇게 오늘 아침 정말 사진이 도착했다. 하얗게 핀 백합들이 여름 하늘 아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다.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더 깊이 바라보는 일

비닐과 신문지로 꽁꽁, 83세 엄마가 딸에게 건넨 것 | 인스티즈▲ 엄마가 싸 주신 오이지 지하철에서 냄새날 까봐 여러 겹으로 싸 주셨습니다.ⓒ 김남정


그날 엄마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엄마가 담근 오이지가 얼마나 맛있던지 몇 번이나 젓가락이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닐에 담고, 신문지로 감싸고, 다시 비닐에 싸서 내 가방에 넣어 주셨다. 딸을 위해 몇 겹이나 싸 주시는 마음이 고맙고도 짠했다. 집에 와서는 오이지를 두 가지로 무쳤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고춧가루를 넣은 무침을 만들고, 매운맛을 못 먹는 나를 위해서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담백한 무침을 만들었다. 그때 엄마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딸 수고했음."

짧아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무쳐 놓은 오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오이지 너무 맛있어요. 잘 먹을게요.^^"

엄마는 답장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사진을 보며 웃으셨을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무언가를 보내신다. 계절이 바뀌는 봄에는 봄나물과 꽃 사진을 보내시고, 반찬을 보내시고, 안부를 보내신다. 딸들은 모두 중년이 되었는데도 엄마 눈에는 아직도 챙겨야 할 아이들인가 보다.

중년이 지나고 있는 나는 아직도 받기만 한다. 오이지를 받고, 꽃을 받고, 걱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 엄마가 보내주신 수국과 백합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도미니크 로로의 를 읽고 기억에 남았던 에리히 프롬의 문장이 떠올랐다.

"꽃을 바라보는 것은 존재하는 삶의 방식이고, 꽃을 따는 것은 소유하는 삶의 방식이다." - 223 쪽

엄마는 꽃을 꺾지 않으신다. 걸음을 멈추고 오래 바라보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아 딸들에게 보내신다. 엄마에게 꽃은 소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기쁨이다. 생각해 보니 엄마의 삶도 그랬다. 무언가를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 계절을 누리고, 가족과 나누고, 작은 기쁨을 오래 바라보며 살아오셨다.

내일도 아침이면 엄마에게서 또 다른 여름 꽃 사진이 올지 모른다. 언젠가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된다면, 꽃을 보면 누군가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꽃을 소유하기보다 오래 바라볼 줄 알고,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사랑으로 건네는 사람. 나는 여든셋 엄마에게서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비닐과 신문지로 꽁꽁, 83세 엄마가 딸에게 건넨 것 | 인스티즈▲ 카카오톡 메시지 엄마가 보내신 메시지입니다.ⓒ 김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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