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 잘생긴 또라이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서도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내 쪽으로 다가온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몬드 봉봉 싱글킹 컵 한 개."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체크카드. 서명란이 뜨기가 무섭게 숫자 몇 개, 폰번호임이 틀림없는 11자리 숫자를 빼곡히 써넣는다.
"아 원래 내일 말하려고 했는데 못 참겠다 진짜. 그 번호로 연락해." "저 손님 아이스크림!" "너 먹어. 그리고 나 손님 아니고 남우현"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뭐지? 진짜 연락을 해야 하나? 아이스크림에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냐? 아 맞다 이거 내가 파는 거지. "저… 베라 알바생인데요." "어? 진짜 전화했네." "그쪽이 하라면서요……. 맞다 왜 나이 안 말해주세요?" "그쪽 아니고 우현이라니까? 나이 말하면 나랑 통화 안 할 거잖아." "우현이고 뭐고. 전화 안 끊을 테니까…" "진짜? 진짜죠? 나 스물한 살" "속고만 살았… 뭐?" "끊지 마요. 설마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 "야 이 새끼야. 나보다 어린놈이 나이를 알고서도 반말을 해? 기가 막혀서 진짜. 처음부터 너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게 얼만데. 됐고 너 다신 가게 오지 말고, 이 번호로 연락도 하지 마" "…화 많이 났어요? 그러게! 왜 그렇게 어리게 생겼어…요…. 그리고 가게 매출 올려주는 손님한테 다신 오지 말라는 건 좀… 형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가게는 갈 수 있게 해주세요……." "너같으면 화 안 나게 생겼냐? 바빠 죽겠는데 초면에 장난치면서 재밌죠? 이딴 소리나 해대고, 나이도 숨기고 반말이나 찍찍해대는데 너 같으면 그냥 넘어가? 어? 짜증나 진짜. 너 나한테 뭐 원한 있어? 왜 이래?" "…죄송해요. 전 그냥… 형 눈 동그랗게 뜨고 반응하는 게 귀여… 재밌어서……." "아휴 이걸 팰 수도 없고 진짜. 내 반응이 재밌어? 넌 내가 우스워? 이유가 그게 다야?" "우습긴 누가 우스워요? 제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여요?" "그럼." "아 진짜…… 조… 좋아요." "뭐? 뭐가 좋아. 나 갖고 노는 게 좋아?" "아씨… 형이 좋아요. 형, 성규형이!" 뭐래. 얘가 지금 뭐라고 했지? 좋겠지그래. 좋아? 누가? 내가? …뭐? "…… 뭐?" "형이 좋아…요……. 그러니까 가게는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장난칠 게 없어서 하다 하다 이딴 질 낮은 장난…" "장난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형이 싫다면 귀찮게 안 하고 가게에도 안 갈게요." "…진짜 진심이야? 아니 대체 왜?"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좋아요. 처음엔 그냥 형이 그 작은 눈으로 저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게 귀엽고 재밌어서 계속 놀려주고 싶은 건 줄 알았는데, 온종일 생각나고… 아이스크림 먹는다는 핑계 대서라도 가게 찾아가서 보고 싶고… 짓궂은 장난을 쳐서라도 형이 저 기억하게 하고 싶고, 가게에서만 형 목소리 듣고 얼굴 보고 그런 거 말고, 계속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그럼. 저도 제가 어린애같이 군다는 거 아는데, 이렇게 하면 형이 싫어하고 귀찮아할 거라는 거 아는데 어떡해요……." "중증이네 중증. 어휴… 그래 좋아. 진심인 건 알겠는데, 내가 나보다 어린놈이 나한테 반말하는 거 엄청나게 싫어하거든?" "그건! …죄송해요. 전 진짜 형이 스무 살인 줄 알았어요… 볼도 말랑말랑하게 생겼고 애기 같고 귀엽고… 어… 음……." "그만! 그만해 소름 돋았어. 내가 이 나이 먹고 나보다 어린, 그것도 남자한테 귀엽다는 소릴 들어야 해?" "사실인데… 아, 이건 둘째치고 저 그러면 가게 계속 가도 되는 거죠? 형한테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해도 되죠?"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아직 전화 안 끊으셨잖아요. 그럼 계속 연락해도 된다는 거지 뭐예요. 설마 저 갖고 노신 거예요? 헐."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되냐니까? 아오… 내가 애를 키운다 진짜. 그래 가게를 오든가 말든가 네 마음대로 해. 대신 이게 너한테 호감이 있다는 뜻은 아니야. 그건 알지? 난 여자 좋아하고 아직 너한테 티끌만큼의 감정도 없거든?" "에이, 그건 좀 섭섭하다. 자기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어딨어요. 아니 잠깐만, 아직? 아직이면 앞으로 생길지도 모른다는 거네요?" "……."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어? 전화가 안 들려 아아아아아……." 뚝. …너무 티 났나? 뭔가 들킨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왜? 내가 왜? 아 몰라. 아니 이 어린 남자는 대체 내 어디가 좋다는 걸까. 솔직히 나도 내가 못생겼다고 매일 생각하는데. 내가 게이라면 나 같은 사람한테는 아무 감정도 못 느낄 텐데. 취향 참 이상한 애야. 으으… 일이나 해야지. 꽤 오랫동안 통화를 한 것 같은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게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다들 회사와 학교에 있을 시간이라 그런가.
전화 왔다! 메세진데. 속았지? 안 속았어 이 새끼야. 누구지? 이 시간에 나한테 문자 보낼만한 사람이 없는… '형' 데가 아니구나. 오늘 생겼지… 이 시간에 나한테 문자 보낼 사람. '진짜진짜 좋아해요. 저 아무한테나 고백하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문자 보고 있는 거 다 알아요. 씹지 마요.' '와 계속 씹네. 이거까지 씹으면 너 나랑 사귀는 거다.' '뭐 이 새끼야? 너 또 반말했지. 죽는다 진짜.'
'에이 씹길 바랐는데. 저랑 사귀는 게 그렇게 싫어요?'
상종할 가치도 없다. 완전 애잖아 애. 어머니… 왜 저를 이렇게 낳으셨어요……. '부끄러워서 씹는 거라고 생각할게요. 착각하게 한 형 잘못임.'
'형이 꼭 저 좋아하게 만들 거예요. 두고 봐요. 형 진짜 좋아해요. 진심으로.'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