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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 넉넉한 겨울 코트를 꺼낸 것은 꼭 2년 만의 일이었다. 

또래에 비해 왜소한 탓에 무슨 옷을 입어도 항상 커 보이기는 했다만 평소 딱 맞는 옷을 즐겨 입던 진환의 취향으로 미루어보아 제 돈으로 산 옷이 아니라는 것이 확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조금 쌓인 것도 같은 옷을 괜히 툭툭 털어도 보고 접힌 소매를 펴 보기도 하며 한참을 거울 앞에 서 있다가 입어본 코트는 아직도 컸다. 하긴 성장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나이이니 그 사이에 옷이 작아졌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구준회가 딱 그랬다.

세 살 연하의 애인은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음은 분명하지만 맞지 않는 옷과 같은 사람이었다. 연애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환은 쉽사리 그에게 마음을 내어 주지 못했고,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니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던 준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유난히 더웠던 어느 여름에 평소와 같이 정사를 마치고 옆에 누워있는 준회에게 불쑥 말했다. 헤어지자. 한동안 말이 없던 준회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제 짐을 챙겼다. 가지런히 옷을 접어 가방에 집어넣는 모습이 마치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보여서 문득 코 끝이 시큰했다. 

좋아해요.

……

형은 절 좋아하긴 했어요?

그뿐이었다. 대답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는지 준회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갔다. 쾅, 하고 문이 닫혔다. 앞으로 볼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가 곧 사라졌다. 딱히 열렬히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준회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진환은 그랬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애정을 갈구했다. 그와 비례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 제 성 정체성을 깨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귄 연상의 회사원은 진환에게 통 관심이 없었고, 헤어지던 날에는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 당연히 좋은 기억으로 남을 리 없었다. 진환이 저보다 어린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준회도 그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생각이 났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두우니 늘 조심하라며 가끔 데려다 주던 준회가 떠올랐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쑥쓰러워 했지만 대범한 편이었다. 교복을 입고 머쓱한 표정으로 제 손을 꽉 잡을 때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날이 추워져 거리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입을까 말까 고민하던 코트를 결국은 걸치고 나온 진환은 별다른 목적지 없이 그냥 걸었다. 공원에도 가 보고, 놀이터에도 가 보고, 괜히 집 앞 골목길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부터 준회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때 나눴던 시덥잖은 대화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형 그저께는 어떤 여자애가 저한테 편지 주고 갔어요. 읽어보지도 않고 버렸어요. 진짜예요. 누가 뭐래?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혼자 찔렸는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던 준회가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었다. 그때 준회는 어땠었나,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은 것도 같았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남자 주인공이 딱 나오던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진환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멈췄다.

저 멀리서 준회가 걸어오다가 진환을 발견하고 멈춰섰다. 이제 막 하교한 듯 교복을 입은 모습은 2년 전과 다를 게 없어서, 진환은 픽 웃었다. 눈이 마주쳤다. 제가 준 코트를 입고 있던 진환을 본 준회도 같이 웃었다. 그새 키가 더 컸네, 하고 진환은 생각했다.

춥다.

……

형도 춥죠?

아무렇지 않게 진환의 손을 잡아 제 코트 주머니에 넣은 준회가 진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코아 마시러 가요, 형 단 거 좋아하잖아. 저 내일 수능인데 형이 너무 추워보여서 같이 가는 거예요, 알아요? 진환은 그저 웃었다. 아마 올해 겨울은 따뜻할 거라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꽉 잡은 코트 안의 손이 따뜻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뭥...... 지나니가 세상의 고독이란 고독은 다 씹어먹은 것처럼 나오네요 제 상상 속의 진환이는 초귀요미 사랑둥이인데...... 다 추워서 그래요... 넹... 오타는 애교로 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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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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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작가님........이런 분위기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ㅠ 더 써주시면 안될까요? 개인적으로 제가 겨울 성애자라섴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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