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대규모 무역회사의 간부였고, 일년 정도만 신규지사에서 진두지휘를 맡아달라는(사실상은 다 명목뿐이지만) 사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온 가족이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별 미련도 감흥도 없이 맞이한 부산 변두리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내 취향 밖이었다. "서울에서 온 표지훈이라 칸단다. 다들 잘 지내고." "잘 부탁한다." 서울에서 왔대. 시계 봐바라. 신발도?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신선함도 재미도 없는 인삿말을 내뱉었건만,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게 웅성대는 애들에게 짜증이 치미는 걸 꾹꾹 참으며 단 한개 비어있는 자리로 들어와 앉았다. 사내놈들 여럿이 선뜻 말을 걸진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데 도리어 내가 낯이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부산의 변두리(아무리 좋게 말해보려해도 촌에 가까웠으니까), 그것도 시꺼먼 사내새끼들로 가득찬 남고로 내려온 건 내겐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변화였다. 뭐 씹은 표정을 하고 있자니 온통 나에게 쏟아지던 시선이 조금 흩어지는 듯 했다. 이 와중에도 옆자리에 앉은 녀석은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담임이 억센 부산 억양으로 읊어대는 전달사항이 무척이나 듣기 싫어서 턱을 괸채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나한테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서일까, 유리창에 비친 옆 분단 애들 중 하나가 키득대며 제 친구놈에게 뭐라뭐라 귓속말을 해대더니 내 옆자리의 팔을 툭툭 쳤다. 엎어져 자고 있던 부스스한 갈색 머리통이 스윽 일어나더니 나를 향한다. 부은 것 같긴 한데도 쪽 째진 눈이 마치 한 마리 새끼 사막여우같았다. 뭘 봐. 상당히 불쾌한 말투였는데도 잠결에 보는 건지 원체 낯가림이 없는건지 날 이리저리 뜯어보는 노골적인 시선에 지지 않고 나도 녀석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계집애마냥 입술을 오물오물거리더니,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어,어 하던 녀석의 눈이 이내 동그랗게 떠진다. "와,니가 그 서울서 온 전학생이가?" "잘생겼다이가..막 피부 윤기나는거 바라. 서울아들은 다 이카나?" "여자친구 있나? 있제? 맞다.그렇겠다.이쁘나?" "표..지훈? 내는 우지호다. 우-지-호. 어때 쉽제?" "야. 야아." "와 새끼..내랑 말하기 싫으나..하.나도 그만할란다." 그러더니 다시 책상에 푹 엎드려버린다. 참 특이한 녀석이다 싶었다. 피부도 눈에 띄게 하얀 게 생긴 건 여자애마냥 새침하게 생겨선, 말하는건 또 괄괄하니 사내새끼같고. 제 팔을 베고 엎드려서 고개를 꼬물꼬물 움직이더니 금새 잠이 든건지 잠잠했다. 쉬는시간이 되자 반 아이들이 하나둘 내게 다가와 온갖 잡다한 질문을 쏟아냈고, 나는 정말로 흥미가 없었기에 어.아니,로 대답을 일관하다 우지호를 따라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아까는 몰랐는데 부산 사투리는 좀 시끄럽고 머리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점심 안 싸왔나." "울 학교는 도시락 싸가지고 다닌다." "야아..이거라도 먹을래?" "표지훈아.이거.." "안 먹어." 자꾸 내 앞으로 도시락을 들이미는 흰 손을 탁 쳐냈다. 내용물이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우지호란 녀석은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았다. 알았다. 미안타. 하는 말이 조금 거슬렸다. 미안할 건 없는데. 굳이 달래줘야 할 필욘 없는 것 같아 그냥 말을 아끼기로 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아무리 수업이 듣기 싫어도 엎드려 자는건 질색하는 편이라 항상 수업시간엔 피치못해 깨있곤 하던 나였는데, 옆에서 우지호 혼자 깨작깨작 밥을 먹는 소리를 자장가삼자 희한하게도 잠에 들 수 있었다. 전학 하루째일 뿐이었지만 정말 희한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릴픽입니닷 쓰니1이에욘 마니마니 기대해즈세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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