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끝났다
목요일 오후 6시 40분, 수많은 인파가 엉켜 힘들게 각자의 목적지로 향해가는지하철 안. 간만에 야근 없이 퇴근한다며, 같이 밥이라도먹자는 오랜 친구의 전화에 귀찮음을 겨우 이기고 약속 장소를 향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얘는 이 길을 매일 다니지. 그것도 아침 저녁으로. 이건 복잡한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정도였다. 이미 꽉 찬 지하철임에도 역마다 타는 사람들은 더더욱 늘어났다. 이러다가는 내릴 역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얼른 이 공간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져,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에게‘죄송합니다, 잠시만요’를 외치며 내리는 문 쪽으로 조금씩 몸을 옮겼다. 그리고 이제 ‘이번역은 신논현역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고, 그 순간 손에 쥐고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보나마나 지하철 2번출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 어차피 위치도 문 쪽이겠다, 심지어 곧내릴 테니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디야?’
“이제 지하철에서 내리려, 어!”
그리고 친구에게 곧 내린다는 말을 전한 순간, 지하철 문이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가방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찰나, 뒤를 돌아 바닥을 쳐다보았지만 많은 인파가 미는 힘에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이미 지나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얼른 지하철이 떠나면 확인하겠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아직 끊기지 않은 전화에 친구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남긴 채 급히 종료버튼을 누르고 서둘러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파악한 사라진 물건은 다름아닌 립스틱이었다.
사실 그저 내가 돈을 주고 산 립스틱이었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친구를 만나러 갔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친구의 전화로 내 손에 진동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짐에도 난 바닥만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말을 뒤에서 하든, 지금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꼭 찾아야만 하는, 잃어버려서는 안될 소중한 물건 아니, 그 사람이 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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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가까이를 그 장소에 머물며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일이 벌어지고 그 이후로 2대의 열차가 더 지나갔고 이제는 정말 포기해야하나 싶어, 막막한 마음에 한숨만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를 더 지키며 찾고 싶었지만,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채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친구도 신경이 쓰여 하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저기요,"
"이거 찾고 있었죠."
내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은 내가 그토록 찾던 그 물건을 나에게 선물해준 당사자, 그리고 나를 향해 뻗은 그 손에는 내가 그토록 찾던 립스틱이 있었다.
"아... 네, 맞아요."
일단 맞다고 대답은 했다. 정말 그 물건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어떻게 행동을 해야 좋을까, 그에 대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머리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당황한 나의 표정을 보았는지 너는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옅은 미소를 보여주고는 한 걸음 다가와 급한 마음에 아직 잠그지 못한 나의 가방 속으로 립스틱을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건넬 단 5초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너가 떠난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너는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너가 가장 좋아하는 피어싱, 자주 입던 셔츠, 그리고 향수까지. 단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너와 나의 관계였다. 나는 이제 너를 붙잡을 자격도, 혹은 너에게 안부를 물을 자격도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너무 속상했기에, 아직도 부정하고 싶었기에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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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전화를 몇 통을 했는데 이제 나와!"
"미안해. 갑자기 나오는 길에 뭐가 떨어져서, 그거 찾느라 오래 걸렸어."
"찾기는 찾았어?"
"응, 다행히 누가 찾아줬어."
"그래도 다행이네. 아, 나 배고파. 얼른 가자."
더운 날씨에 지하철역 입구 앞에서 나를 20분 가까이 기다렸던 지수의 얼굴이 보이자 미안함에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갔다. 그런 나에게 약간의 짜증을 내었지만 나의 설명에 금방 표정을 풀고는 팔짱을 꼈다. 지수가 오래 전부터 먹고 싶다고 그토록 외쳤던 오므라이스를 먹으러 가기로 한 만큼 서둘러 가게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운이 좋게도 웨이팅 없이 금방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요리저리 살피며 먹고 싶은 메뉴들을 골라 주문까지 마치고 화장이라도 고치려 파우치를 꺼내려고 가방 쪽으로 시선을 두었을 때, 정신이 없어서인지 아직까지도 잠그지 못한 가방 지퍼가 보였다.
그리고 그 가방 안, 가장 위쪽에는 아까 너가 주워준 립스틱, 그리고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쪽지를 꺼내 펼쳤고, 그 안의 글씨는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이제 이거 그만 써도 괜찮아'
💕 안녕하세요, 한여름의이브입니다 부족한 글 솜씨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쓰고 싶었던 글이기에 가지고 와보았어요 1편이라 보기도 민망한, 그저 인트로와 같은 내용이라 좀 짧은 편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1편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읽으시면서 불편한 부분이 있거나 이런 점이 담겼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자유롭게 댓글 남겨주세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