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이 주변을 맴도는 고양이가 울기 시작하면,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의 꿈을 꾼다.
검은 나비
그냥 지나가다가 문득 마주쳤을 뿐인 그 남자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무심코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그 날 이후로 그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상황은 그 때 그 마주침.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를 지나치고, 나는 돌아본다. 이내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간 그는 자취를 감춘다. 언제나 그 날과 같은 스웨터, 그 날과 같은 미소, 그 날과 같은 마른 뒷모습. 현실과 다른 점은 이제 내가 그를 따라간다는 것. 그러나 끝끝내 나는 그의 옷자락 하나 잡지 못한다. 그러다 어떤 골목에 다다르면 갑자기 시야가 암전 되고, 집 천장이 보이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 끝에, 다시 반복되는 꿈.......
그 꿈을 삼 주 째 되는 날까지 꾸고 있자니, 슬슬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해서 이런 꿈을 만들어 내지. 그 찰나의 순간에 홀리기라도 한 것 처럼 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나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메마른 줄만 알았던 심장 한 가운데서부터 일어난 파문은, 서서히 내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조급해지고, 히스테릭해져갔다. 그 변화는 비참하기만 한 삶에 더해진 짐만 같았다.
바닥 나무 판자 틈새에 손톱을 박아 넣고 견디던 폭력은, 으레 그렇듯 명치를 차이고 나서야 빈 교실을 울리던 둔탁한 타격음이 멈췄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고통에 잇새를 악물었다. 낄낄대는 저열한 웃음소리들이 교실 안을 시끄럽게 채웠다.
"진짜 요 새끼 만한 호구는 없다. 인마는 존심도 없나?"
"물어보잖어 씨발아~"
"그 육중한 몸으로 깔아뭉개놓고 성하길 바라냐."
"푸하하하!!"
"아 이 씨발놈이 왜 지랄이야......."
그 때였다. 미약하게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제일 가까이에 서 있던 새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어, 어? 당황한 놈들은 멍청히 제 무리가 맞는 꼴을 보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한 놈이 내게 다가왔다. 이미 바닥에 널부러진 놈을 뒤로 하고 의자를 거칠게 잡아 빼 휘둘렀다. 저, 저 미친 놈이! 몇 년을 인형처럼 맞기만 하던 놈이 갑자기 돌변하니 어지간하게도 놀란 듯 놈들은 쉬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들도 의자건 책상이건 빼든 놈들이 단체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호기 좋게 덤빈 것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나뒹굴었다.
"이, 이 미친 새끼!"
"씨발 놈아. 잠깐 재미 좋았냐?"
"존나 간 떨어질 뻔 했잖아, 새끼야!"
몸을 둥글게 말고 쏟아지는 발길질을 맞았다. 나는 맞고만 있지 않고 다시 수 차례 덤볐다. 뒤로 나자빠져 책상에 머리를 박을 뻔한 놈은 여태까지와 다른 기세로 나를 밟기 시작했다. 나는 아픔보다는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였다. 내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그리고 그 남자, 그 고양이에 대한.
"...야 야 쟤 죽어!"
같이 밟던 놈들은 내가 토혈을 하자 그제야 위험을 직감하고 놈을 말리기 시작했다. 쉽사리 떨어져 나가지 않던 놈은 여럿이 가세하자 양 팔을 붙잡힌 채로 교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분한 듯 욕지거리를 계속 내뱉으면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운 나는 오늘만은 그 꿈을 꾸길 기다렸다. 제발 끝내고 싶었다. 나를 뒤흔드는 이 감정은 내게 독과도 같았다.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꾸만 스믈스믈 기어 나왔다.
예전과 같이 돌아갈까봐 무서웠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는, 바닥까지 떨어진 인생에 난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그 삶의 끝자락에서 나를 보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내가 무의식 중에 만들어 낸 허상인 것을. 내 자신에 대한 비난을 돌릴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을. 그렇게라도 치졸하게 삶을 이어 나가고 싶었던 나를....... 그래서 난 이 모순적인 내 내면을 비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 이 꿈을 버리려 한다. 모순적인 것은, 꿈 속의 그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나였기에. 그는 내게 그런 욕을 먹을 처지도 아니고, 내가 그를 욕할 자격도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난 여전히 그를 원한다. 그 미소가 뇌리에 박혀 도무지 지워지질 않았다. 그렇기에 그를 내 꿈에 박제시켰다.
그러나 이젠, 끝낼 때가 왔다. 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소모할 감정도, 이제 내겐 사치여서.
곧 어김없이 고양이 울음이 들린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 자리, 그 장소, 그 뒷모습, 나는 그를 돌아본다. 나는 약간의 미적거림도 없이 그의 팔을 잡았다. 잡혔다. 그의 몸이 천천히 나를 향한다. 나에겐 마치 억겁과도 같은 그 찰나, 그의 눈도 나를 향한다. 심연과도 같은 새까만 동공.
여전히 입가에 지어진 미소.
"이제야 잡았다."
"---!"
갑자기 주변이 새까맣게 변했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로 돌아왔으나,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천장이 아닌 그가, 내 위에서, 웃고 있었다.
아아... 너는 정말로 악마이던가.
그 어릴 적 보았던 저택의 마수처럼, 그는 날 어둠으로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