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은 나를 싫어한다
술을 먹었을 때 잃어버린 기억들이 점차 돌아오며 창피함이 물 밀 듯 파고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모자를 집어 던지고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베개 위에 얼굴을 몇 번 쿵쿵- 찍어도 내가 술 먹고 저지른 짓은 돌이킬 수 없었다. 나한테 왜 그러냐며 징징거리지를 않나, 반말 하라며 협박하지를 않나. 술 먹고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짓은 다 하고 온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래 놓고 왜 반말을 하냐고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나 같았으면 욕은 못해도 화라도 막 퍼부었을 텐데 이쯤 되니 승연이 사실은 정말 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까지 귀에 걸려있던 마스크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들었다가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차마 저지른 짓이 있어 그가 준 마스크를 바닥에 던지지는 못했다. 침대에 누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매니저 오빠에게 온 문자가 가득했다. 연락 좀 달라는 말이었다. 혹시 승연과 한강에서 만난 것이 걸린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매니저 오빠에게 연락을 하기 전에 다급히 인터넷을 켜서 들어갔는데, 다행이 별 다른 기사가 올라온 것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매니저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집에 없던데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어, 갈 데가 있어서 잠깐. 집에 왔었어?”
[응, 대본 들어온 게 있어서 보여주려고. 테이블 위에 올려놨어]
매니저 오빠와는 함께한 세월이 길었다. 연예계 데뷔 후 처음 봤던 매니저가 오빠였으니까, 거의 6년이나 된 인연이었다. 그룹 활동을 할 당시 유독 매니저 오빠와 마음이 잘 맞아서 힘든 것도 서로 많이 털어놓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기회가 겹쳐 같은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나를 챙겨주고는 했는데, 가끔 집에 들러 텅 빈 냉장고를 채워주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집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고.
오빠의 말에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로 향했다. 거짓말은 아닌 듯 테이블 위에는 대본이 무려 세 개나 놓여있었다. 이렇게 대본을 한꺼번에, 그것도 고를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 어이없는 숨이 허- 하고 튀어나왔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승연과의 노이즈 마케팅이 효과가 아주 좋기는 한 모양이었다.
“세 개나 들어온 거야?”
[응, 촬영 급한 건 없으니까 차근차근 읽어보고 알려주면 돼.]
“알겠어.”
[응, 푹 쉬어.]
전화를 끊고 의자에 앉았다. 깔끔하게 묶인 대본 세 개를 보다 하나를 집어 들었다. 들고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는데 대본을 읽으면 읽을수록 좁혀진 미간이 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영화였다. 그것도 꽤 이름있는 감독의. 나름 감동 포인트와 웃음 포인트를 적절히 잘 섞어 만든 영화였는데, 이질감이 가득했다. 이상하게 끼워 맞춰 일부러 집어 넣은 듯한 캐릭터 하나 때문에. 내게 들어온 역할의 이름은 ‘은서’ 였다. 남자 주인공의 곁에 항상 머물며 그를 좋아한다는 캐릭터였는데, 이상하리만큼 스킨십이 많았다. 이걸 여기서 굳이 넣었어야 하나 하는 장면에서도 은서는 그와 입을 맞췄고, 심지어 대본 곳곳에는 아슬아슬한 의상을 대놓고 요구하는 글이 적혀있기도 했다. 누가 봐도 반짝 뜬 인기 덕을 좀 보겠다는 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기분이 더럽게 나빴다. 신경질적으로 대본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입술을 꽉 깨물며 다음 대본을 집어 들었다. 드라마. 이번에도 꽤 인기 있는 감독의 것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캐릭터의 모습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내 이미지에 아주 상반되는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내 이미지에 맞춰진 캐릭터만 찾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배우에게는 맞는 캐릭터가 존재했다. 나이가 많은 배우가 고등학생의 역할을 잘 맡지 않는 것처럼. 나이가 아주 어린 배우가 농익은 역할을 맞지 않는 것처럼. 이걸 왜 나를 캐스팅 했지 하는 생각이 단박에 들 정도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었다. 이번에도 가차없이 대본을 집어 던졌다. 이러느니 차라리 대본을 받지 않는 편이 나았다.
마지막 대본을 집어 드는데, 처음 보는 감독의 이름이었다. ‘아무 의미’ 라는 제목의 드라마였는데, 별 다른 러브라인 없이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었다. 대본 속 이야기는 생각 이상으로 자극적이었다. 그것이 억지로 만들어낸 흥행을 위한 자극이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엔 충분히 이유 있고 타당한 자극성이었다.
드라마 속 여자 아이의 이름은 ‘김 봄’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밝고 착한 아이였는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그것도 꽤나 악질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진행이 주변 사람들로 인해 이루어졌다. 아이가 괴롭힘으로 인해 결국 목숨을 끊은 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회상하는 형식이었다.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것 없이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빠져서 대본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과연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또 이 대본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대본을 꽉 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머릿속엔 ‘봄’ 그 아이가 나를 헤집고 뛰어다녔다.
조승연은 나를 싫어한다
촬영 날이었다. 쪽팔림에 승연 앞에서 죽으면 어떻게 하지, 했는데 걱정과 달리 그런 일은 없었다. 승연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고, 나 또한 그런 승연 덕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를 대할 수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승연과 나 사이에 대화가 생겼다는 것 정도. 그리고 연기가 끝난 후에도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것 정도. 그 뿐이었다. 다른 스텝들은 은근 친밀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우리를 보며 놀란 눈을 했다. 아마 기사가 떴을 때 가장 놀랐던 사람들일 테다.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더니 연애라고? 기사를 봤을 때 그들의 얼굴이 그려지는 듯 했다.
꽤나 친하게 대화를 하는 승연과 나를 보며 사람들은 수근수근 귓속말을 했다. 쟤네 혹시 사귀는 거 들키기 싫어서 전에 그렇게 연기한 거야? 말만 귓속말이지 다 들리는 게 문제였다.
“선배, 이거 대본 새로 들어온 거야?”
다음 씬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화장 수정을 받는데, 대기실 한 쪽에 놓아둔 대본을 보던 승연이 내게 물었다. 아까 잠깐 인사를 하기 위해 왔다더니 자기 대기실을 두고 굳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힐끗 보니 궁금한 듯 대본 세 개를 궁금한 눈치로 만지작거린다.
“궁금하면 봐도 돼.”
“진짜?”
“어차피 몇 회 안 나와있고, 네가 뭐 어디 가서 말할 것도 아니고.”
너무 읽고 싶어하는 눈치길래 먼저 말을 걸었더니 신이 난 얼굴로 대본을 집어 든다. 하필 처음 든 대본이 그 스킨십 가득한 대본이다. 의도 다분한 저런 대본을 받은 게 왜인지 창피하기도 하고 좀 그래서 일부러 눈을 감았는데, 뒤가 조용하다. 대본 넘어가는 소리만 조용한 대기실 안을 울렸다.
“선배.”
갑작스런 목소리에 눈을 뜨자 거울로 시선이 마주친다. 승연은 또 묘한 표정을 한다. 그의 손엔 아직 그 대본이 들려있었다. 들고 있는 손가락이 하얗게 질린 게 힘을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거, 해?”
“무슨 말이야?”
“이거 촬영 하냐고.”
담담한 얼굴인데 손 끝은 그렇지 않다. 얼마나 봤다고 이제 조금 그를 알 것 같은 마음도 든다. 조금 놀려줄까 싶다가도 그래서 얻는 게 뭐가 있을까 싶어 사실대로 말했다. 그 대본에 관심 없다고. 그 밑에 걸로 고민 중이라고 하자, 승연의 얼굴 위로 잠시 안도감이 스쳐 지나간다.
“이거 진짜 미친 거 아냐?”
그러다가도 잠시 짜증이 났는지 들고 있던 대본을 살짝 강하게 테이블 위로 올려 놓는다. 자기가 말을 중얼거린다는 것은 아는지, 꿍얼꿍얼 뭐라 중얼거리던 승연이 투덜거리며 내가 말했던 대본을 집어 들었다. ‘아무 의미’ 제목을 승연이 잠시 바라보다 대본을 펼쳐 든다. 대본을 읽고 있는 얼굴이 이번엔 진지하다. 대본을 넘기는 소리가 느릿느릿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긴장 되는 마음에 침을 꿀꺽- 삼키는데, 대본을 다 읽은 그가 마지막 페이지를 끝으로 대본을 덮었다. 무언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왜, 별로야?”
“아니, 좋아. 선배가 분명 잘 소화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뭐야. 왜 그런 얼굴이야?”
“한편으로는 안 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서.”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하지 않는다. 이제 수정 메이크업도 끝났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승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옆에 있는 의자에 자리잡고 앉자 그제서야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거 트라우마 심하다고 하더라. 배역에서 빠져 나오기도 힘들고. 마냥 좋고 행복한 역할은 아니니까.”
그의 말에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딱 고민했던 부분이니까. 솔직히 배역은 많이 탐이 났는데 그 후가 걱정됐다. 그 배역을 고스란히 받아낼 내가. 누군가는 겁쟁이라고 할지라도 많이들 고민을 하는 부분이었다.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가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더욱 큰 일이 되는 거니까.
“근데, 선배 할 거잖아.”
“어? 네가 어떻게 알아.”
“할 것 같은 얼굴이잖아. 누가 봐도.”
굳은 얼굴로 고민을 하는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그를 바라봤다. 확신이 가득 찬 목소리. 당사자인 나조차 하지 못하는 확신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의 모습에 당황한 얼굴이 멍해졌다. 단호한 눈빛이 내게 말한다. 왜 선택을 해놓고 하지 못한 척 망설이냐고. 왜인지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숨이 턱- 막힌다.
“분명 역할은 잘 소화할 것 같은데,”
“힘들진 않았으면 좋겠다.”
승연이 나를 보며 웃는다. 누가 봐도 가 아니라, 너만 나를 보고 있다고. 말을 할까, 하다가 만다.
조승연은 나를 싫어한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기로 했다. 그 전에도 왜 SNS를 하지 않냐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며 애써 둘러댔는데, 오래 안 하다 보니 정말 그런 게 됐다. 다시 하려니 도통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연구를 하다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조금씩 해볼 걸. 후회가 됐지만 그런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SNS를 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SNS를 통해 말실수나 업로드를 잘못해서 골치 섞는 연예인들이 많았다. 그보다 사진 몇 장 올리기 위해 그 많은 불안감을 껴안아야 하는 것이 싫었다. 실수할까 봐 계속 걱정할 바에 차라리 안 올리고 말지. 그런 주의였다. 두 번째, 사실 올릴 사진이 얼마 없었다. 내가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움직여봤자 촬영장이나 집인데, 굳이 올릴 것이 무엇이 있겠나 싶었다. 남들 SNS를 보면 예쁘고 좋은 사진들 많이 올리던데, 그런 사진을 올릴 자신도 여유도 없었다. 셋 째, 마지막으론 반응이 없을까 두려웠다. 사진을 올리고 뭐 하고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그거 때문에 오히려 불안하고 후회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자잘한 고민이 많아서 만들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런 내가 SNS를 시작하기로 다짐한 것은 조승연 때문이 컸다. 시작은 대기실에서 조승연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때였다.
“너 인스타 하네?”
“응.”
“그거 왜 해?”
“어? 그냥 사진도 올리고 뭐, 그러려고?”
“무슨 사진 올리는데?”
심심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승연의 옆으로 다가가 앉아 그가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방금 올린 건지 그가 들고 있던 커피 사진이 떡-하니 올라와있었다. 다른 사진들도 딱히 특별하게 꾸며내거나 예쁘게 찍은 사진이 아니라 그의 일상이 가득 담긴 사진이었다.
“이렇게 아무 거나 올리는 거야?”
“응, 그냥 생각 날 때?”
“왜 올리는데?”
“어? 어, 그냥 팬분들이 궁금하실 수도 있잖아.”
“응?”
“나에 대해 뭐든 궁금해하실 수 있으니까. 그리고 뭐, 나중에 보면 이런 거라도 추억 되기도 하고. 심심할 때 댓글 보면 되게 재미있어.”
“안 좋은 댓글도 있지 않아?”
“응. 근데 좋은 댓글도 있잖아.”
무심하게 꺼내놓은 말에 그렇지,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엔 인스타 하면 뭔가 예쁘고 신경 쓴 것들을 올리고 좋은 댓글을 봐야지 뭔가 성공한 느낌이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그의 방식도 꽤나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연은 SNS를 자랑이나 다이어리 같은 느낌이 아니라 일기나 편지 느낌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일기처럼 자신이 한 일을 생각날 때 마다 올리고, 나중에 그를 보며 추억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일기를 읽고 어떤 말을 해주면, 그를 보며 좋아하고. 나쁜 댓글만 생각하며 겁을 먹었는데, 그 덕에 좋은 댓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팬 입장으로서는 좋아하는 상대가 뭘 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잖아.”
“가끔 취미 생활 한 것도 올리고, 아님 아까처럼 이런 사소한 사진들도 올리고. 나도 팬분들이 내 사진들 보면서 좋아해주시는 거 보면 좋으니까.”
“서로 소통하는 데 SNS만한 게 없더라고.”
그러고 보면 난 팬들과 소통을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고작 그룹일 때 뵀던 것들? 매번 나는 팬이 얼마 없으니까, 하고 소통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단 한 분이라도 내 팬이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을 텐데. 단 한 분이라도 나를 궁금해 해주시는 분이 있을텐데.
“그거 어떻게 만들어?”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즉흥적이었지만 확실한 마음이었다. 소통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상대가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마음을 나눠보고 싶었다.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승연은 끝내 환하게 웃었다.
“만들게? 진짜?”
“내가 알려줄게.”
내가 계정을 만들려는 것인데 어째 그가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하나하나 눌러 재빠르게 어플을 깐 그가 내게 다시 핸드폰을 내밀었다. 난관에 부딪혔다. 아이디를 뭐로 해야 하나 한참을 머리 맞대고 서로 고민했다. 그러다 나온 아이디가 im_beee_ 였다. 솔직히 9할은 조승연의 생각이 들어간 아이디어였다. 나비. 예전 예명을 따온 아이디였다. 왜 이상한 작대기를 넣는 거냐는 말에는 멋이라고 했고, 왜 e가 세 개야 하고 물었을 때는 자기는 벌을 싫어한다고 엉뚱한 말을 했었나. 하여튼 그렇게 난생 처음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었다.
“이거 그 다음은 어떻게 해?”
“음, 웃어 봐 내가 사진 찍어줄게!”
계정은 만들었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데, 핸드폰을 가져간 승연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민다. 당황한 마음에 어색하게 입 꼬리를 올렸더니 찰칵- 하고 사진이 찍힌다. 승연이 다시 내민 핸드폰에는 프로필 사진이 뚝딱 만들어져 있었다.
“촬영 준비할게요!”
바보같이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 뭐라고 하려고 했더니 문이 열리고 스텝 한 분이 들어왔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승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촬영을 하러 가자는 말에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앞서 걷는 승연의 모습을 보다 문득 멈춰 섰다. 아까 승연이 했던 것처럼 몰래 그의 사진을 찍는다.
“뭐 해, 안 와??”
재촉하는 그의 말에 후다닥 핸드폰을 집어넣고 발걸음을 빨리 한다. 왜인지 주머니 속 알림이 처음으로 기분이 좋다.
*
저 언니 인스타 처음 하는 거 확실하넼ㅋㅋㅋㅋㅋㅋ |
인스타 만들었다고 하길래 신나서 후다닥 달려갔는데 조승연 머리랑 다리랑 다 잘려있어ㅋㅋㅋㅋㅋㅋ그것도 화질 왜 저러는지 아시는 분???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 사진 보자마자 진짜 현실로 터졌다곸ㅋㅋㅋㅋㅋ -사진 도대체 무슨 일이야ㅋㅋㅋ -나 처음에 내 눈이 흐린가 했어ㅋㅋㅋㅋ뭔 짓을 했길래 사진이 저렇게 됔ㅋㅋ -그 와중에 프로필 예쁜 거 실화 -나도 계속 봤엌ㅋㅋㅋ -오늘 조승연 뒷모습이 다 했다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저 언니 인스타 시켜도 되는 거 확실해? 다들 그렇게 생각해?ㅋㅋㅋㅋ -에이 설마 처음이라 그렇겠지…또 저런 사진 올리겠어? -인스타 사진 잘린 것도 모를 것 같은데ㅋㅋㅋㅋ -조승연은 이 사진을 알고 있을깤ㅋㅋㅋ -아니 럽스타 보면서 이렇게 웃기는 또 처음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너무 해맑아서 뭐라고 말도 못하겠엌ㅋㅋㅋ -2222인스타 올리고 신난 거 눈에 너무 보옄ㅋㅋㅋ -누가 잡아놓고 인스타 강의 좀 시켜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언니 원래 저런 이미지였어??ㅋㅋㅋㅋㅋㅋㅋ -나 좀 차갑고 깍쟁이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뎈ㅋㅋㅋ이건 뭨ㅋㅋㅋㅋ -아니 근데 다들 왜 언니라고 해…진짜 언니야…? 나만 나이 들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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