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열이 전학을 온 지도 벌써 2주가 흘렀다. 종대는 박찬열과 아주 오래 전부터 친했던 것처럼 많이 가까워진 상태였다. 둘은 톰과 제리처럼 큰 체격 차이를 보였지만 종대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부잣집 애가 질질 끌고 다니며 매점에서 무언가 손에 쥐어 주는 게 좋은지 늘 헤벌쭉 웃으며 박찬열을 부르곤 했으니까. 나는 체육 시간에 나와 박찬열의 공통점을 알게 된 이후로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는다. 단순히 할아버지의 우정일 뿐 나와 그 애 사이에 직접적인 일이 있었던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박찬열은 날 골치 아프게 한다. 여자애들이 주는 먹거리는 마치 내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쪼르르 내게 가져와선 건넨다. 이젠 그게 일상이 되어버렸고 난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몽땅 먹어 치운다. 종대는 박찬열의 표현 방법이 서툴러 초등학생처럼 맛있는 걸 주는 거라고 말했다. 박찬열은 날 좋아하는 거라고. 사람이란 게 참 우습다.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다가도 순식간에 혹 해서 진짜인가? 하고 의문을 품는 걸 보니.
“똥. 오늘은 이거 먹어. 민트 좋아해? 나 이런 거 싫어하는데 애들이 사 왔어.”
“너까지 나한테 똥이라고 그러냐. 네가 좋아하는 거 사왔대도 나한테 줄 거 아니었어?”
“귀엽네. 내일은 걔네가 김치 고로케 사준대. 그건 내가 좋아하는 거라서 너 안 줄 거야.”
“좋은 생각이다. 난 그거 진짜 싫어하거든.”
“우리 천생연분이네.”
“즐.”
나는 박찬열이 건넨 민트 초코 라떼를 집어 들곤 맛을 보았다. 정말 거지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박찬열은 기대에 잔뜩 부푼 눈으로 날 보고 있었기에 나는 그걸 몽땅 마셔야만 했다. 한약을 들이킨 것처럼 잔뜩 인상을 구긴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잘 했다며 쿠키를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열 여덟 남자애 둘이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종대는 그저 내 뒤에 서서 우리 둘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곧 종이 쳤고 일 교시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악 시간이었다.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악기를 못 다루는 것도 아니었지만 음악 시간이 싫은 이유는, 박찬열 때문이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똥.”
“…….”
“넌 말 씹는 게 취미야? 아님 내 말이 맛있어서 씹는 건가.”
“…….”
“우리 할아버지한테 말했더니 언제 너 한 번 보고 싶다더라. 우리 집 올래?”
“싫은데.”
“왜. 우리 어렸을 땐 같이 만나서 논 적도 있대. 기억 안 나?”
나는 박찬열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눈가를 긁었다. 그랬었나. 난 원래 과거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내 선에서 그냥 기억을 없애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도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유치원을 다녔거나 그 이전의 아주 어릴 때는 기억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희뿌연 기억이 두리뭉술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박찬열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긋 웃더니 다시 내 뒷자리에서 고집스럽게 날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똥. 또 내 말 씹는 거야? 나는 기억나는데. 너랑 나랑 중학교 때 한 번 만난 적 있었어. 그 때 파티 재미없다고 둘이 튀어서 밖에 나가서 오렌지 맛 슬러쉬 사 먹고 그랬는데. 진짜로 기억 안 나?
나는 박찬열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 없이 교과서 틈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왜 그러냐는 그의 질문엔 그저 배가 아프다고 답했다. 이럴 땐 ‘생리통 때문에’ 라고 변명할 수 있는 여자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물론 소중한 부분에 묻어난 축축한 피를 마주하고 직접 처리하는 그 과정이 한 달에 한 번씩 반복된다면, 거기에 고통까지 따른다면 아마 난 돌아버릴 테지만.
“보건실 같이 갈래? 김종대한테 오잉 사 오라고 시킬까? 너 오잉 좋아한다며.”
“됐다니까. 넌 원래 그렇게 사람 귀찮게 하는 게 취미야?”
단순한 일 하나로 사람은 순식간에 까칠해진다. 난 내뱉은 뒤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로 날카로운 말을 토해냈다. 박찬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늘 장난스럽게 웃곤 했었는데. 나는 눈을 크게 뜬 뒤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실수를 저질렀으니 봐달라는 일종의 신호였다. 박찬열은 참 착한 애다. 다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곤 아파서 성질 낸 거라 생각하고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으로 향했다. 박찬열의 말을 듣고 나니 진짜 오잉이 먹고 싶어져서 종대에게 돈을 빌려 매점에 들렀다. 과자를 꺼내 씹어 삼키니 복잡했던 속이 조금은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변백현이랑 너랑 아는 사이였다고? 언제부터?”
“걔랑 중학교 때 한 두 번 만난 적 있어. 걔네 할아버지랑 우리 할아버지랑 친구라니까.”
“둘이 완전 운명이네. 이 참에 그냥 사귀지 그러냐?”
“아, 근데 걔 지금은 괜찮아? 중학교 땐 정신병 있다고 했나, 아무튼 그랬는데.”
“뭔 개소리야. 쟤 말짱해.”
매점에서 교실로 내려오던 중 나는 제법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박찬열과 김종대의 대화 내용. 분명 내 이야기는 맞는데 나조차도 모르고 있던 이야기.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둘은 내 뒷담을 까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나를 반기고 있었다. 포장을 뜯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소중한 과자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박찬열은 내가 뭐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뭐라고 묻기도 전에 내 손목을 붙들고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 나왔다. 이 와중에도 착한 나는, 멍청할 정도로 착한 변백현은 교실에 혼자 남아 이 상황을 해석하기 바쁠 나의 친구 김종대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변백현. 방금 우리가 했던 얘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은 거야?”
“글쎄……. 그런 게 중요해? 어떻게 됐든 내 이야기잖아 어차피. 나야말로 너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건지 궁금해.”
“어디서부터 알고 있는 얘기인지 어디서부터 알고 싶은 건지 말을 해야 알지.”
“전부 다. 너랑 내가 예전에 만났다는 것부터 내가 정신병 걸린 미친 새끼였다는 거 몽땅,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어.”
“모르는 체 하는 거야 진짜 모르는 거야?”
“내가 모르는 체를 왜 하고 있겠어 지금 이 상황에!”
대화는 점점 커졌다. 애달팠다. 안타까웠다. 우린 뭐 때문에 다투고 있는 걸까, 찬열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움으로 뒤덮였다. 내가 정신병에 걸렸던 걸까. 그래서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왜 우리 집안은 아무도 내게 그걸 말해주지 않았을까. 원망과 분노가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들끓었다. 박찬열은 말을 잘못 꺼낸 거라 생각했는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복잡한 내 인생에 쟤까지 꼬이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쓰레기다. 음식물 쓰레기. 쓸데없이 벌레만 많이 꼬이는 쓰레기.
“너랑 나랑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 그 당시에 너희 할아버지네 회사랑 우리 할아버지네 회사랑 뭔진 몰라도 무슨 계약 같은 걸 했었대.”
“…….”
“그 때 너랑 내가 만났었어. 엄마가 나한테, 네가 조금 정신적으로 아픈 애니까 잘 대해주라고 그랬거든.”
“무슨 병인진 모르는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그 날, 아까 말했던 거처럼 같이 도망쳐서 맛있는 거 사 먹고 그랬던 거야.”
“……그걸 왜 이제서야 말해?”
“네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나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고.”
“나쁜 새끼.”
나는 죄 없는 박찬열은 나쁜 놈으로 만들었다. 내 죄는 아예 없는 것처럼, 난 철저히 피해자인 것처럼 박찬열을 내몰았다. 사실 잘못은 전부 내 몫일지 모른다. 지가 어떻게 살아왔던 건지 조차 알지 못했으면서, 그걸 왜 이제서야 말하는 거냐고 상대를 탓하고 있으니 말이다. 집에 돌아가선 어떻게 굴어야 할까. 엄마를 붙잡고 오열하며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내가 무슨 병에 걸렸던 거냐고, 난 왜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냐고 따져볼까. 그럼 엄마는 차갑게 내 손을 떨어뜨리며 바쁘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할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바로 여기.
어쩌면 내 인생에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와 미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미루고 미루다가 죽음이 서서히 다가올지도 모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데려다 줄까?”
“괜찮아. 아까 무턱대고 성질 낸 건 미안.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배도 아프고 예민해서 그랬어.”
“알아, 굳이 얘기 안 해도 돼. 집에 가서 푹 쉬어. 혹시라도 내가 괜히 알려준 건가 싶어서 걱정되니까 들어가서 꼭 연락하고.”
“네가 잘못한 건 없는데…… 혹시라도 더 아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알았어. 종대한텐 내가 대충 둘러댈게.”
“응. 나 먼저 갈게.”
박찬열과 나의 대화는 무미건조했다. 수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호흡하기 힘들 정도로 말라 비틀어진 사막 한 복판에서 나누는 대화 같았다. 기력 없는 얼굴로 가방을 멘 뒤 교실을 빠져 나왔다. 어떻게 걸어온 건지 신기할 정도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는 집에 도착한 상태였다. 아무도 없는 집 안. 가정부 아줌마도 장을 보러 나간 것 같았고, 드넓은 집 안엔 나 혼자 뿐이었다. 지독한 외로움이 날 잠식시켰다. 돈이 많고 권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그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이래도 우리가 행복 하려나. 수많은 생각들이 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거실은 무서워. 두려워. 넓은 공간에 나 혼자 있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내 방도 필요 이상으로 넓었다.
가방을 내려두고 침대에 누웠다. 찬열이한테도, 종대한테도, 해야 할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입을 떼기가 쉽지 않아서 나는 휴대폰을 꺼버렸다. 이렇게 버튼 하나만 누르면 상대방의 연락도 볼 수 없고 까맣게 변해버리는 휴대폰처럼 내 인생도 없애버리고 싶었다. 흉터가 아물지 않은 손목을 들어 눈 앞에 흔들었다. 마침 내 옆엔 분홍색 커터 칼이 놓여 있었다. 그어도 별 수 있나, 이렇게 가증스레 숨 쉬고 있는 걸. 하지만 나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심경으로 한 번 더 나의 손목을 그었다. 빨간 색이 내 몸을 뒤덮는다. 아름다워. 적어도 망가진 변백현보단 이 피가 더 아름다울 거야. 의식을 잃고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된 내가 박찬열과 종대에게 너희는 꼭 행복 하라고 당부를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가, 천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늘은 더러운 나를 받아주지 않을 텐데.
안녕하세요 독자분들. 은위 3편을 들고 온 응가라고 해요 ^ㅇ^ 엑소 티져 이미지 보셨나요? 저는 그걸 보고 쥬것다고 합니다 ㅠㅠㅠㅠㅠ 울 오빠들 왜캐 이쁜 거져ㅠㅠㅠㅠㅠ? 딴 소리 말고 3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급! 급! 우울해졌다고 볼 수 있겠네여. 아니 찬백이들 행쇼 아니었나요? 갑자기 왜 이래요 작가양반ㅋ 이라고 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은위는 절대로 달달한 픽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댓글로 말씀드린 적도 있지만 저는 우중충한 찬백픽을 쓰고 싶었어요. 물론 제 필력이 독자분들을 울리고 이런 수준까진 못 미치겠지만, 그냥 우중충하고 어두운 픽. 사랑은 늘 밝고 아름답진 않잖아요. 이성 간의 사랑이든 동성 간의 사랑이든. 저는 제 글 속 찬열이와 백현이의 가장 어두운 속을 비추고 싶었고 그랬기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예요. 떡도 달달함도 없는 글, 읽고 싶지 않으시다면 안 읽으셔도 좋아요. 저도 구독료 돌려 받으려고 건성으로 재미있다고 하고 사라지시는 분들한테 억지로 질질 매달릴 필요성 느끼지 않습니다. 물론 생각 외의 길고 정성스러운 댓글로 제게 힘을 주시는 금독자분들도 많이 계시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찬열이와 백현이가 행쇼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둘은 사랑할 것이고, 어쩌면 지금도, 혹은 그 이전부터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개소리 그만하고 암호닉 목록 나갈게요. 순서는 댓글 다신 순서대로^ㅠ^ 업데이트는 계속 진행되니 신청 해주시면 감쟈dream. 햇님 찡찡 용용 더디 변남 설리 ⊙♥⊙ 종대생 벨 린현 정수정 김만두 에그타르트 핑구 캣츠 바람 내남성김성규 세순 엑컴 섭스 됴아 애기 쓔밍 베게 워더 혀니 루피 또라에몽 사과 DDD 치킨 훈훈 꿈 지네 시소 딸기밀크 소고기 뚱이 모카 네루 루루 암호닉은 http://instiz.net/writing/108091 이 곳에서만 받을 계획이니 댓글에 암호닉 신청한다고 쓰지 마세요! 혼란스럽습니다 ㅠㅠ 아 그리고 긴 댓글, 정성스러운 댓글, 제 맘에 드는 댓글엔 무조건 답글 달려요 제가 항상 눈팅 중이라구요 흐흐. 서인영 노래 들어보셨나요? 저는 너무 좋아서 반복재생 중! 오늘 덥다는데 조심하시구, 황금연휴 즐겁게 보내셔요. 하트 뿅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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