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이 남자는 도대체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건지. 아까 넌지시 건넸던 말들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자니, 권지용이라 소개해 온 그는 턱을 괸 채 나를 구경하기에 바쁘다. 잘 생겼다고 한다면 확연하게 아, 그렇다-라고는 못하겠는데, 어딘가 엄청 매력적이다. 동그랗게 생긴 것 같으면서도, 날카롭고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나 하더니 어느샌가 남자다운 눈빛으로 앞에 앉은 나를 탐색하고 있다...라니,탐색? 건조하게 내려앉았지만 어딘가 흥미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동색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어라,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당신,뭡니까?"
"아까 말했잖아. 권지용이라니까?"
"...채린이 일로 이러시는 거라면, 할 말 없습니다만..."
그래, 진짜 할 말 없다. 욕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막고는 슬쩍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거짓말 한 점 없이, 진짜로.
"아, 알고 있어. 이채린은 나 버릴 그릇은 못 돼."
"...뭐요?"
"너랑 채린이 사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네가 누군지도 알고..."
담담하게 자신의 앞에 놓여진 컵의 주둥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그는 나른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말은 구속이고 힘이다. 그의 구속은 단숨에 내 몸의 힘을 풀어놓고, 귀를 감쌌다. 척추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름에, 목덜미에 오소소한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 사람이 겨우 무슨 말을 했다고 이러냔 말이야.
"채린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관이 없지만, 누군지는 알고 있었어야지. 그래서 조사 좀 했어. 이승현 군, 생각 외로 많이 유명하데?"
-눈까지 휘어가며 생긋 웃는 남자의 얼굴에, 뭐라고 말 할 수가 없어서 입만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이 사람, 사상이 이상해! 자기 애인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괜찮은데, 그 남자를 누군지 모르는 건 허락이 안된다고? 뭔데 그거?! 난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채린이도 그렇더니만...머나먼 세상 사람들 같아 작게 한숨만 나왔다. 우리가 마주 보는 테이블은 다시 침묵으로 잠겨들었다. 만약 내가 쥐고 있던 핸드폰이 다시 진동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돌아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손에 느껴지는 진동이 얼마나 반가운지, 진동이 끝나기도 전에 액정을 확인했다. 김종현의 이름. 아, 새끼야 사랑한다.
[너 어디냐? 이채린 사복관 앞에 있는데?]
[돌겠음ㅅㅂ 너 권지용 알음?]
[멀라 쓰댕아 ㄴㄱㅇ]
[채린이 남자친구라는데]
[너 사망요]
...애새끼가 할렐루야 구세주라도 될 줄 알았더니 꼭 초를 친다. 그러고보니, 채린이는 내 앞에 있는 남자랑 약속이 있다며 나갔다. 그런데 약속상대는 내 앞에 있다? 이게 뭔 경우야? 저기요...작게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아따, 거 눈 예쁘네.
"채린이랑, 약속...없으세요?"
"있지!"
"그런데 여기 왜 계세요?!"
"지금 갈 껀데?"
너무 당당하게 대답하는 위세에, 나도 모르게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게 또 뭐가 웃긴지,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한 손으로 얼굴이 가려지는구나...손이 길쭉길쭉하니 굉장히 남자다워서, 난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내 손을 아래로 숨기고 말았다. 한참을 웃던 그가 일어서더니 내 옆으로 걸어왔다. 왜, 왜 와?! 당황해서 고개를 올리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어깨를 짚어오는 커다란 손.
"그럼, 나중에 다시 보면 되겠지?"
"...허,네? 제가 댁을 왜 봐요?"
"뭐 어때서 그래."
"아니 그러니까-!"
"종현군에게 안부 좀 전해주면 고맙겠어."
다시 웃어버리고는 밖으로 나가는 남자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방금 나온 거...공룡새끼 이름이지? 그렇지? 억울한 마음에 핸드폰만 꽉 쥘 수 밖에 없었다. 김종현 이 공룡자식아, 모른다며-!너에게 나의 자비란 없을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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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모른다니까!"
"웃기지 마!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널 알아?!"
"알 게 뭐야. 내가 워낙 유명한가 보지."
...말 한마디로 사람 넷을 조용하게 만드는 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자기도 민망한지, 이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여튼, 말을 돌리려 애쓴다. 권지용이라고? 디자인 공부한다 그러면 패션디자인과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성 형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학교가 맞는지조차 의문이다. 어떻게 생겼어? 하고 물어오는 종훈의 눈동자가 심히 부담스럽다. 뭔가 재미들렸구만, 망할.
"...음...키는 그다지 안 큰데 얼굴이 무지 작아. 옷 빨 쩔고."
"...우리 학교 다 뒤져보면 한 100여명 정도밖에 안 나올지 모르겠네. 좀 더 자세한 거 없어?"
"...귀걸이 했고."
"100명에서 한 99명으로 압축되려나?"
"닥쳐봐. 아, 그리고 금발이다. 완전 화려한 금발."
그래, 이 특징을 왜 내가 지금 생각해냈지? 그래, 그러고보니 그 남자, 엄청 화려한 금발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어울려서 위화감 하나 찾지 못했지. 박수를 딱, 치며 얘기하는데 쿨럭, 하고 옆에서 사레들린 소리가 난다. 나랑 종훈, 대성 형, 종현이 모두가 한 곳을 쳐다보자, 시선을 몰아 받은 민호가 난감해하며 옆으로 고개를 비튼다.
"어,야, 최민호. 너 뭐 알지."
"-그,글쎼요."
"어어? 닥치고 말하거라. 알지?"
종현이 씨익 웃으며 민호에게 은근한 압박을 준다. 어허, 성실한 후배를 저렇게 몰아가다니, 못되 쳐먹은 선밸세...는 개뿔. 나도 궁금해서 가만히 쳐다보니 민호가 이제는 숫제 울상을 짓는다. 얘도 의외로 허당스럽단 말야.
"권지용,이라 그래서 잘 몰랐는데,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어?알아?"
"GD라고 불러서 저는 그러려니 했었거든요."
"...권지용이 GD야?"
GD라는 명칭을 듣자마자 종현 또한 뭔가 인상을 구기며 아...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낸다. 역시 저 자식도 알고 있었어! 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자 민호를 쳐다보며 강력하게 답변을 요구했다. 나만 모르는 건 아니었는지, 종훈과 대성 형 또한 빨리 말해 봐, 하며 책상을 탕탕 치고 있었다.
"저희 형 여기 다니잖아요, 여기 연극영화과 4학년."
"-아, 맞아. 최승현이 너네 형이지. 아, 언제 싸인받아 줄건데!"
"이상한데로 좀 빠지지 마요! 여튼, 승현이 형이 외국에서 온 친구가 생겼다고 했거든요."
"외국?"
"네, 어딘지는 모르겠는데...여튼 디자인과 3학년으로 편입했었대요."
"그 사람이 권지용이야?"
"전 GD라고 소개해주길래요."
"...그리고 그 사람이 나한테 뭐 물어보긴 했었지,아마."
"종현 선배가 승현 선배 얘기 많이 했어요."
웅얼대는 녀석들의 말을 들어보고 난 다음, 난 가차없이 종현의 무릎을 발로 까 주었다. 결국 네가 팔아먹은 거 맞잖아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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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설명
최승현-연극영화과 4학년, 이번에 데뷔하셔서 꽤나 인기를 누리고 계십니다...최민호군 둘째 형
권지용-패션 디자인과 3학년, 외국에서 왔다고 하네요...GD라고 불리고 있습니당 나이는 최승현이랑 동갑...
이승현-국어국문학과 2학년
이채린-영문학과 2학년
최민호-국어국문학과 1학년
김종현-국어국문학과 2학년, 심각하게 편입 고려중
강대성-실용음악과 3학년
최종훈-실용음악과 2학년
나올 때마다 쓰는 게 편할 것 같아서요...ㅋ....
사실 OMG는 써놓는 거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타이핑해서 올리는 겁니당!
때문에 제목이 OMG에요..ㅋ...오마이가뜨...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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