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게로 쏟아지는 시선이 썩 나쁘지 않았다. 세트장에 남아있던 스태프들은 무리를 지어 세트장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나와 남자만 남게 될 것이었다. 한창 둘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 김한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를 찾는 소리였다. 남자와 마주하고 있던 시선이 어깨 너머로 흘러가 먼 곳을 향했다. 분장실 문 앞에 김한빈이 서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느라 주름 잡힌 치맛단을 두어번 툭툭 털고 엉킨 머리칼을 정리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머리칼은 이미 엉킬대로 엉켜있었다. 하는 수 없이 손목에 차고 있던 실팔찌를 이용해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린 뒤 확인 하니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방수 화장이었던 모양이다.
김한빈이 빨리 나오라며 재촉했다. 금방 가요. 나는 말을 남긴 뒤 걸음을 뗐다. 아까부터 아파오던 발목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한 걸음씩 발을 떼려니 여간 짜증나는 게 아니었다. 가만히 인상만 찌푸리고 있는데, 남자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씨 맞죠?"
"그런데요."
"아까는 긴가민가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반갑습니다. ICN 연예뉴스 기자 김동혁입니다."
"네."
"시간 괜찮으세요? 그 쪽 인터뷰 좀 하고 싶은데."
Dis Patsy
02
김동혁이라는 남자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고민중이었다. 김한빈은 언제 온 건지 내 옆에 서서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죄송한데 지금은 좀 바빠서 안 되겠네요. 나중에 봬요."
김한빈은 그렇게 말하곤 곧장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나가자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동혁을 쳐다봤다. 김동혁의 표정이 아리송하게 변해있었다. 나는 김동혁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김동혁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나는 김동혁에게서 시선을 떼며 김한빈의 뒤를 따랐다. 조심해서 걸으라는 김한빈의 걱정스런 말투가 귓 속에 박혔다. 문을 열고 나간 김한빈을 따라 세트장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김동혁의 외침이 들려왔다. 꼭 다시 만나요!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니 김동혁이 답지 않게 손을 흔들며 방방 뛰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어린아이같아 웃음이 흘렀다. 멍하니 김동혁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나를 보며 김한빈이 한숨을 쉬었다. 그제서야 김한빈의 손이 문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동혁의 모습을 좀 더 마음에 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자리를 떠야만 했다.
촬영장을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 도착 할 때 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였다. 최근 들어 김한빈과의 사이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장장 5년을 같이 해 오며 이런 적이 없었는데. 김한빈과 나는 거리를 두고 밀폐 된 공간안에 있었다. 거울을 보는 척 김한빈을 흘겨보니 김한빈은 그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하고 우리는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는 구석진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양 옆 작은 자가용에 비해 내가 타고 다니는 밴은 너무도 컸다. 나는 차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끌어 당겼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차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한빈을 쳐다봤다. 김한빈의 손에는 차키가 쥐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문 열어요. 추워."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 앞에 서 있던 김한빈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와 그대로,
"아……."
내 뺨을 쳤다. 거칠거칠한 손이 얼굴에 맞닿았다. 마찰음이 넓게 퍼졌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억센 힘에 밀려난 얼굴에 시선이 땅을 향했다. 머리 위로 김한빈의 씩씩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오늘 무슨짓을 했는 지 알아?"
"……."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배우고 뭐고 관둬. 다 집어치라고!"
"……."
"너 때문에 피해 본 사람 한 둘 아니야. 너보다 더 잘난, 더 유명한 사람들도 같이 하는 자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네 컨디션 안 좋다고 일을 그따구로 해?"
"……그럼 어떡해요?"
"뭐?"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어쩌라구요. 누군 하기 싫어서 안 해요? 몇 십번 몇 백번을 읽어봐도 그게 입으로 안 나오는데 어떡해요. 나 어떡해 진짜."
"……."
"나도 이 자리가 싫어요."
"……."
"나 아직 어리잖아. 이제 스물둘이야. 높은 자리에 서 있는거, 다른 연기자들한테 견제 당하는거, 내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일 해야 하는 게 너무 싫어요. 너무 괴로워요."
계약 끝나는 날엔 정말 한국 뜰 거에요. 도망 갈거라구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침묵했다. 김한빈은 매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차키를 꺼내 차문을 열었다. 경쾌한 소리가 귓 속을 파고 들었다. 김한빈은 내게서 등을 돌려 운전석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문이 닫혔다. 문을 어찌나 세게 닫은건지 들리는 쾅 소리에 흠칫 놀랐다. 김한빈에게 맞은 뺨이 그제서야 화끈거렸다. 요즘 운동한다더니 힘이 많이 세졌네.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딱히 차에 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한 자세로 서 있으려니 또 한 번 발목이 욱씬거렸다. 나는 허리를 숙여 발목을 고정시키던 힐의 끈을 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힐을 벗었다. 스타킹조차 신지 않은 맨 발이 바닥에 닿았다. 온기 하나 없이 차가운 바닥이 그대로 발에 스며들었다. 김한빈은 사이드미러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곧장 차에서 내려 내게로 왔다. 김한빈은 어정쩡하게 벗은 힐을 손에 들고 있는 나를 보더니 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힐을 빼앗아 들었다. 손이 허했다. 김한빈은 뒷자석의 차문을 열어주더니 얼른 타라며 내 어깨를 잡아 끌었다. 나는 내 어깨에 닿은 김한빈의 손을 뿌리쳤다. 김한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가 자리에 완벽히 앉는 모습까지 본 뒤에야 차문을 닫아주었다.
차 안은 따뜻했다. 아까 차에 혼자 타더니 히터를 틀어 놓았나보다. 나를 차에 태우고 곧바로 저도 차에 탄 김한빈은 문을 닫자마자 곧바로 라디오를 켰다. 지하라 그런지 신호가 잘 터지지 않는 탓에 음악 소리 대신 노이즈가 들려왔다.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김한빈은 손목을 한 번 쳐다보더니 차를 출발시켰다. 창에 쳐 놓은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소리를 차단 할 수 있는데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귓가를 파고드는 팬들의 비명에 귀를 막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김한빈은 차에 달려드는 팬들을 쫓기 위해 클락션을 여러번 울렸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목소리가 묻혔다. 팬들이 앞길을 트자 차는 빠른 속도로 직진했다. 팬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어 창 밖을 내다 봤다. 차를 따라 뛰어오는 몇몇의 팬도 있었다. 미친년들. 나는 중얼거린 뒤 다시 커튼을 쳤다.
************
차는 얼마 달리지 못 하고 멈춰섰다. 신호에 걸린 탓이었다. 김한빈은 신호에 걸리기를 기다려 왔다는 듯 차를 세우자 마자 말해왔다.
"아까 봤던 그 기자. 너무 가까이 하진 마."
"왜요?"
김한빈은 좀처럼 말을 잇지 않았다. 신호가 풀리고 차가 느슨하게 출발했다. 김한빈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수십개의 건물을 지나치고 수백대의 차를 지나치는 동안에도 김한빈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말이 없었다. 보다못한 내가 먼저 말했다.
"그 기자가 왜요. 착해보이던데."
"……소문이 좋진 않아. 니가 피해 볼 일 없도록 관리하는 게 내 일이니까 말해주는거야."
김한빈은 느릿느릿 말했다. 소문이 좋지 않아? 대체 어떤 소문을 가지고 있길래 김한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보통 기자의 악소문이라면 연예인과의 마찰이었다. 협박이라던가 혹 반대되는 경우로는 스캔들. 아까 봤던 그 기자, 이름이 김동혁이랬나. 액면가는 고딩이던데 나이는 몇 살 일지. 차는 집 앞에 세워졌다. 나는 김동혁을 머리 속에서 떨쳐내지 못 했다. 김한빈은 아무튼 처신 잘 하라며 몸을 감싸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렀다.
나는 그런 김한빈의 모습을 보며 조금 실망했다. 김한빈도 결국에는 사람이었나보다. 헛소문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내 곁에 없었으면 했는데. 김한빈은 냉철 한 척, 주관을 지키는 척 했지만 결국에는 남과 같았던 것이다.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퍼진 소문은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된다. 그 소문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갔을때 당사자가 받을 상처는 생각해봤을까. 소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비겁하게 남을 까내리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나 역시 나에 관한 악소문을 매일같이 보고 듣기 때문에. 나는 차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갑작스레 차 안으로 들어오자 김한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가방을 들어 차에서 내렸다. 여지껏 맨 발인 상태였다. 차 문을 닫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김한빈이 나를 돌아본다.
"신발 주세요."
"아, 어."
신발을 달라며 손을 내밀자 그제서야 김한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수석에 신발을 놔두었던 건지 손을 뻗어 신발을 집는다. 내게 내미는 손길이 상당히 무신경했다. 나는 신발을 받아들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얼굴에 닿아오는 바람결이 날카로웠다. 나는 차 안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뜬 소문으로 사람 판단하지 마세요."
김한빈은 내 말에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나는 무표정이었다. 김한빈이 알겠다며 손을 두어번 저어 보였다. 알겠으니까 들어가서 좀 쉬어. 내일 아침에 연락 꼭 받고. 알겠지? 김한빈은 말을 마친 뒤 나를 돌아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곤 차 문을 닫았다. 김한빈은 내가 차 문을 닫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문이 닫히자마자 차를 출발시켰다. 매정한 걸음이었다.
뒤를 돌면 대문이 있을 것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원이 있고, 정원 한 가운데로 길이 있겠지. 길을 따라 들어가면 현관문이 있을 것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차가운 내부가 나를 반길 것이다. 저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또 다시 세상과 벽을 두고 사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개미 한마리도 지나가지 않는 듯 해 보였다.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맨 살에 닿아오는 칼바람이 시렸다. 이가 서로 부딫히며 턱이 덜덜 떨렸다. 나는 추위를 이기고자 팔짱을 꼈다. 그러나 맞닿은 팔 마저 시려워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머릿 속에선 아까의 상황이 다시 재연되기 시작했다. 나는 너 안 보고 싶었어. 그 한 마디를 못 해서 나는 온갖 질타를 받았고, 머리채도 잡혔다. 그 짧은 말에 내 정신을 집중하지 못 해서 캐스팅 취소를 당했고, 결과는 김한빈이 때려 퉁퉁 부었을 뺨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내가, 연기 잘 해서 이 나이에 톱스타 자리에 오른 내가. 그 대사 한 줄을 못 읊어서 망신을 당했다.
"나는 너 안 보고 싶었어."
촬영 현장에선 안 되던게 지금은 왜 이리도 잘 되는건지. 억울함과 함께 눈물이 줄줄 흘렀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랬다면 지금 이 감정으로 그 때의 대사를 완벽히 소화 해 낼 수 있을텐데. 부질없는 바램이었다. 시간을 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다시 감독님을 마주 할 수 없었다. 무릎을 세워 고개를 파묻었다. 갖가지 화장품이 눈물에 얼룩져 옷에 묻어 날 게 뻔했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팔이 떨리고 다리가 떨렸다. 외부의 영향인지 개인적인 감정의 탓인지 알 턱이 없었다.
무릎 위로 뭔가가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떨어진 물건이 뭔지 확인했다. 검은색의 무언가였다. 옷인 것 같기도 하고. 팔짱 낀 손을 풀어 그것을 집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고개를 돌리니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남자가 있었다. 김동혁이었다. 김동혁은 아까 그 정장 차림에서 마이만 벗은 채였다. 그제서야 나는 눈치챘다. 무릎 위에 떨어진 검은색의 무언가가 김동혁의 정장 마이라는 것을.
"여자가 아무데나 그렇게 주저 앉으면 써요? 보기보다 칠칠맞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 오셨어요?"
"○○씨 차 미행 좀 했어요. 놓치고 싶지 않은 상대라."
나는 웃으며 말해오는 김동혁에게 뭐라고 대답해줘야 했을까.
"왜 따라 오셨어요? 저한테 관심이라도 있으세요?"
경계 어린 내 질문에 김동혁은 꼭 그렇게 대답 해야만 했을까.
"그걸 이제 알았어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씨 인터뷰 하고 싶다고. 누가 관심없는 사람을 인터뷰해요?"
마음을 홀렸다. 말 한 마디로.
별과 별 사이는
얼마나 먼 것이랴.
그대와 나 사이 붙잡을 수 없는
그 자리는 또 얼마나 아득하랴.
바라볼 수도 있지만
가까이 할 수는 없다.
그 간격에
빠져 죽고싶다.
간격
이정하
♥두둠칫♥님 ♥봄♥님 ♥뱔뱔♥님 ♥J♥님 ♥몽총이♥님 ♥준회♥님 감사합니다! 암호닉 감사히 받고 있어여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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