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지만 막상 마주치니 말문이 막혔다. 궁에서 편지가 왔다. 발신의 주축은 왕후였다. 더는 궁으로 걸음하지 말라고 했다. 동혁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고, 왕을 사랑한 어머니를 항상 진심으로 아꼈다. 그래서 동혁은 그 편지를 받고 슬퍼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운명이다. 운명은 슬픔과 직결되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슬프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어머니는 비참해진다. 동혁은 편지를 곱게 접어 서랍에 넣었다. 그는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혼자 산다는 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과도 같았다. 동혁의 하루는 늘 조용했기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굳이 외출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외로움라는 것에 완연하게 익숙해졌고 말을 꺼내 의사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홀로 고요하게 생각에 잠기는 일이 더 많았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물려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어머니는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 그녀도 자신처럼 미움 받았고 버려져 많은 순간을 그리움으로 보냈다. 그런 어머니의 삶을 투영한 자신이 가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그 가여움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될 때까지가 힘겨워서, 힘겨워서 고단했었다. 어머니도 온갖 감정들을 억누르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고단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한빈이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 모양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곤이 찾아와 그의 명을 말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함께 검술을 익히기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동혁은 일부러 자신의 집까지 찾아온 곤에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확고하게 그 명을 거절했다. 궁 출입이 제한된 이 시점에서 그걸 어기고 그 곳으로 간다면 분명 곤란해질 건 한빈이었다. 왕후가 그를 싫어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소한 미움을 사게 될지도 몰랐다. 동혁은 계속해서 고갤 저었지만 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궁으로 돌아가면 세자의 명을 거역한 죄로 눈이 뽑힐 거라며 과장스럽게 중얼댔다. 이윽고 동혁은 한숨을 내쉬며 그 명을 받았고, 한빈이 보냈을 말에 올라타 궁으로 향했다.
한빈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아무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유년 시절처럼 열심히 검을 휘두르면서 자신을 상대해줬다. 동혁은 그가 진환의 몫까지 자신을 챙기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아서 문득 사무치게 고마워졌다. 더불어 조각으로 흩어졌던 예전의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발을 맞춰 떠올랐다. 어렸을 때마저도 많이 무뚝뚝했던 한빈은 자신을 보는 것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다. 낯선 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언제나 헤매는 것 같았다. 동혁 역시 자신을 어렵게 여기는 한빈이 무서워 쉽게 다가설 수 없었다. 진환은 그런 동생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책봉식이 진행되기 며칠 전 진환은 어색한 사이의 동생 둘을 모았고 검술을 겨뤄보라고 시켰다. 한빈은 형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곧 세자가 될 그를 무시할 수 없어서 시키는 대로 동혁에게 검을 쥐어주고 실력을 겨루었다. 그리고 그 날을 시작으로 세 명의 형제는 보다 많이 마주치게 됐다. 대개 한빈과 동혁이 검을 부닥치고 있으면 그 옆에서 진환이 가만히 책을 읽는 식이었다. 동혁은 그 사소롭던 평화들을 무심코 떠올리고 얼굴을 어둡게 했다. 한빈과 자신은 모든 게 그대로인데 진환은 그게 아니었다. 무턱대고 진환이 그리워졌다.
동혁은 세자빈을 떠올릴 때 덤덤해지고 싶어서 아주 많은 연습을 했다. 아직까지 그녀를 기억하고 반응하는 몸이 싫어서 차라리 모든 신경이 절단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걱정스러움에 물들고,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자신의 상처를 향하고 있을 때 그는 그만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말 것 같아서 일부러 세게 그녀를 밀어냈다. 불가피한 차단이었다. 동혁은 어째서 이렇게 그녀를 사랑하게 됐는지 궁금해지다가도 알아차리면 울게 될 것 같아서 얼른 생각을 지웠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동혁이 무릎을 꿇은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자신 때문에 소중한 목숨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아주 가벼운 인연에 그치게 될 것이어도. 한빈은 진환과 온전한 피를 나누었다. 자신과는 다르다. 진환의 따뜻함을 분명 그도 몸 속 어딘가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자신이 간청하지 않아도 그는 신하들의 목을 앗으라는 명을 철회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릎 꿇었다. 신하의 잘잘못은 따지고 보면 자신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한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의 존재가 많은 사람들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그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걸 깨달았다. 동혁의 목숨은 죄였다. 그래서 그는 무릎 꿇었다.
동혁은 세자빈에게 위태로운 인사를 건네고 곤과 함께 궁의 입구를 향하여 걸었다. 뒤를 돌고 싶었지만 참았다. 더는 그녀를 보고 사랑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했다.
곤은 신하들의 실수를 꼭 자기가 저지른 것 마냥 미안한 얼굴이었다. 동혁은 이렇게 성실하고 바른 성품을 가진 자가 한빈의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궁의 입구에서 말의 고삐를 잡고 그 위에 올라탔다. 말은 약하게 마제를 떨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동혁이 문득 스치는 불안감에 곤을 쳐다보았다. 그는 갑작스런 눈 마주침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을 주시했다.
"…보통 세자빈께서는, 이 시간에 주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예, 산책을 좋아하시어 호위무사와 동행하십니다."
"……하루도 거른 적이 없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마 오늘은 산책 대신에 석빙고에 가실 것이라고, 준회가 그렇게 아뢰었습니다."
그 말에 동혁의 얼굴이 굳었다. 석빙고는 궁의 가장 바깥에 있다. 인적이 드물고 근처의 검은 숲이 있어 언젠가 그 곳에서 길을 잃고 내신에게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다. 곤은 점차 창백해지는 그의 안색 때문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말 실수를 한 것 같아 사죄를 하려는데 대뜸 몸을 훑는 시선에 입이 다물어졌다. 동혁이 다급하게 호위무사의 몸을 확인하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활을 가지고 계십니까?"
"예, 술시에 사냥 연습이 있다고 하여 아까 챙겼습니다."
곤은 갑작스러운 걸 묻는 그가 수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꾸했다. 동혁이 손을 내밀었고 곤은 얼떨결에 무장한 옷 사이에 숨겨두었던 작은 전재를 뒤져 그에게로 건네었다. 그는 그걸 받고 말도 없이 힘껏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랴! 어서 달리라는 명령에 말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다리를 움직였다. 동혁을 태운 말이 빠르게 곤을 지나쳐 궁의 입구를 돌아 담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곤은 어리둥절하게 그 뒷모습을 쳐다봤다. 동혁의 필사적인 움직임이 점차 멀어지며 점이 되고 있었다.
16
숲이 꼭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빛이 들지 않는 숲은 꼭 잿더미처럼 검었다.
이제 나는 죽을 것이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이미 몸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 가까스로 체중을 지탱하며 곧게 서 있는 다리가 대단할 지경이었다. 거대한 호랑이의 눈이 끈덕지게 나를 탐색하고 있었다.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공포가 내 목을 짓눌렀다. 십 년이 다 되어가도록 학교에 다녔지만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배워본 적이 없었다.
꼼짝 없이 목을 물릴 것이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를 것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눈을 감게 될 것이었다. 도망을 갈 생각은 진작부터 접었다. 도망가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기 전에 저 뾰족한 송곳니에 머리가 날아가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하지만 아직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죽을 고비를 바로 앞에 두고도 그런 태평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게 항상 정성이던 향단과 지원, 그리고 나 때문에 궁의 의원이 된 윤형. 또 친구인 찬우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동혁. 준회. 그리고, 그리고……. 한빈까지. 차례대로 떠오르는 얼굴들은 나도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향수를 불러왔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어차피 죽게 될 거라면 마지막까지 그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 순간에 귀를 찢는 낯선 소리가 들렸다. 당황스러움에 눈을 뜨니 호랑이가 다리를 마구 흔들며 고통에 젖은 소리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커다란 몸체가 고통스럽게 몸부림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멍해졌다. 곧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는 말 발굽 소리를 알아챌 수 있었다.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그 위에서 누군가가 호랑이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시끄러운 소음에 흥분해서 날뛰고 있는 말 위에서 활을 조준하는 그 몸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목덜미에 화살 하나를 맞고 미친 것처럼 몸을 구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난폭한 몸부림은 곧 잠잠해졌다. 호랑이는 화살에 가죽을 뚤린 게 분한지 낮게 울부짖고 있었다. 호랑이가 말을 향해, 말 위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발을 굴렸다. 금방이라도 말에게 달려들 기세였지만 또 한 번의 활을 맞고 호랑이는 주춤하며 발광했다. 화살은 호랑이의 눈에 정확히 꽂혔다. 명중이었다. 호랑이는 아까보다 큰 소리로 포효하기 시작했다.
말은 그 주위를 둥글게 돌았다. 이후 여섯 발의 화살이 호랑이의 가슴에 박혔다. 호랑이는 마지막 활을 맞고 애처롭게 쓰러졌다. 복슬복슬한 황금빛 털이 조금씩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비린내가 났다. 죽었다. 그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들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죽음 바로 직전을 느꼈다는 것 때문에 뒤늦게 울음이 터졌다. 소매로 열심히 눈가를 닦아내고 있는데 갑작스런 인기척이 들렸다.
"…괜찮으십니까……."
"……."
잔잔한 목소리는 내 울음을 더욱 부추겼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땀에 젖은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는 이는 동혁이었다. 눈물 때문에 보이는 그의 모습이 흐릿했다. 활을 쥐느라 피가 몰린 그의 손가락이 딱딱했다. 그가 작게 한숨을 쉬면서 품에 나를 가두고 가볍게 등을 토닥였다. 따뜻한 동작이었다. 나는 한참을 열심히 울었고, 그는 열심히 내 눈물을 닦았다. 동혁은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나 또한 그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달이 하늘을 점령하게 될 때까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의 호위무사의 짓이 맞습니까."
"……."
"…저하께서 크게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빨리 내려가셔야 합니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고 동혁은 먼저 일어나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고 조금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나무가 빽빽한 숲은 달빛을 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검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에 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말에 올라탈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말의 고삐를 부드럽게 쥐고 있었다. 그는 간혹 달의 움직임을 확인하면서 방향을 틀어 숲을 내려갔다.
동혁이 내가 숲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지 궁금해졌다. 물으려다가 관뒀다. 묻는 게 주제 넘은 짓일지도 모른다. 목숨을 걸고 호랑이를 죽여 나를 구한 게 누구도 아닌 그였다.
멀리 익숙한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동혁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덩달아 그의 다리도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의아함에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동혁은 이유를 모르게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자빈, 어디를 가셨던 겁니까. 줄곧 세자빈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준회였다. 나는 느닷 없는 그의 등장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견딜 수 없는 배신감이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를 믿고 싶었다. 그가 하는 사과를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무참히 짓이겼고 죽이려고 했다. 더는 그를 위해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준회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내 희망이고 착각이었다.
준회가 나와 동혁의 앞으로 다가왔다. 동혁은 가만히 있었다. 내 손을 쥐고 있는 힘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 아닌, 억누를 수 없는 화가 모여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는 진동이었다. 나는 어째서 동혁이 나를 위해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분노가 정확히 준회를 향하고 있음의 의미가 무엇일지 한참을 헤아려야 했다.
"무슨 자격으로 세자빈의 앞에서 모습을 보이십니까! 당장 꺼지시오! 내금위장께 모든 정황을 알려드릴 겁니다. 목이 잘릴 각오를 하고 계셔야 할 겁니다."
동혁이 소리쳤다. 내뱉는 음절마다 담긴 화가 가득해서 뚝뚝 말이 끊겼다. 그에 준회는 잠시 목을 꺾으며 웃었다.
"소인이 목 잘려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입, 닥치시오."
"왜 자꾸 세자저하의 정인을 탐하시려 하십니까. 저 위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세자빈께 대체 무슨 짓을 하셨습니까."
왕의 자식에게 분명 도를 넘은 발언이었다. 신경을 쓸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동혁은 크게 동요했다. 동혁은 내내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다급하게 놓았다. 동혁의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차분한 얼굴이었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화살을 손에 쥐고 미련 없이 준회의 다리를 겨냥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준회는 그걸 맞고도 크게 휘청이지 않았다. 나의 호위무사는 아무렇지 않게 그걸 꺾었고 피로 흥건해지는 바짓단을 잠시 말 없이 쳐다봤다. 동혁을 향하는 눈빛이 따갑게 일렁이고 있었다.
"저하의 심장을 찌르신 걸로도 모자라 이젠 세자빈을 범하시려 하셨습니까?"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당장 입 다물지 않으면……."
"사랑하십니까."
"……."
"아직도 사랑하십니까."
많은 것을 생략한 준회의 말에 동혁은 허를 찔린 것처럼 굼뜬 눈을 했다. 그 위태로운 모습이 꼭 척애를 들킨 어린 소년 같았다. 서둘러 부정하지 않으면 굵은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우리들 사이에서 편한 숨을 쉬고 있는 건 오로지 말 하나가 전부였다. 동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다시 잡았다. 곧 힘이 풀릴 것처럼 지나치게 가벼운 악력이었다. 동혁이 준회를 그대로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저 역시 아직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아득히 준회의 목소리가 퍼졌다. 동혁은 돌아보지 않았고 그저 정면을 응시하며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모합니다."
"…저 역시."
준회가 희미하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머리가 어지럽다. 현기증이 심해서 금방이라도 토사물을 쏟을 것 같았다. 뒤에선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를 따라오는 걸음걸이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준회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 아니면 등을 돌려버렸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너무 슬퍼서 일부러 동혁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더 이상 준회를 두고 상처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석빙고 근처에 다다르고 동혁은 자연스럽게 손을 놓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왜인지 좀처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에게 무언가를 말하면 괴로워할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정도가 너무 강력해서 나는 본격적으로 궁이 보이게 될 때까지도 입을 열 수 없었다.
한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했다.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왜 그렇게 겁도 없이 구느냐고 소리칠 것이다. 그 꾸중을 들을 생각에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랑니가, 아플 것 같았다.
밤이 찾아온 궁은 조용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가 없었다. 말은 다치지 않았지만 간혹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주고 받는 대화 없이 계속해서 걷다 보니 눈에 익은 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선당이었다. 그가 있는 곳이다. 잠시 멈추었던 심박이 강하게 뛰며 반응했다. 한빈의 얼굴을 보기가 무서웠다. 또 준회에 대해 털어놓아야 한다는 게 무서웠다. 동혁은 짧게 기침했다. 자선당에 들어서고, 멀리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빈이 눈에 보일 적이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인기척에 그가 어깨를 떨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자선당 마당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주위에는 세자익위사의 사람들로 보이는 호위무사들 몇 명이 깊게 목을 숙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 무척이나 놀란 얼굴을 했다. 그 위엔 말하지 못할 반가움과 안타까운 감정이 어지럽게 섞여있었다. 그가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옆에 있는 동혁은 안중에도 없는지 내 어깨를 살며시 잡고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의외의 상황에 나는 느리게 눈을 떴다가 감기를 반복해야 했다.
"……."
"……."
한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예상처럼 얼굴을 구기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으며 짜증난 눈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내 숨통이 조일 만큼 나를 꽉 안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다행입니다. 그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그가 품에 안긴 나를 떼어내 잠시 눈을 맞췄다. 진짜가 맞는지, 꿈이 아닌 현실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다시 안았다. 문득, 내가 윤이 되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는 대홍사를 걸친 몸으로 나를 몇 번이고 그렇게 안았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 여전히 어떤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이윽고 그는 짐짓 다정하게 내 뺨에 손을 비볐다. 아까 동혁에게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나와 그를 옆에 두고 잠시 떨어져 있던 동혁이 한 걸음 곁으로 다가왔다. 내게로 고정됐던 한빈의 시선이 천천히 그 곳으로 옮겨갔다.
동혁은 모든 것을 실토할 것이다. 준회를 옥에 가두고 목 잘리게 할 것이다. 나를 위험에 빠뜨린 죄를 이유로 그를, 죽이게 할 것이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까는 그렇게 미웠던 준회가 갑자기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이러는 내가 나조차 이해되질 않았다. 어째서 준회에게 이토록 헌신적인 사람이 되는지, 왜 그를 보면 헌신하고 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빈은 가만히 동생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한참 뒤에 동혁은 입을 열었다.
"…숲에 가셨다가 도적 떼를 만나셨습니다. 소인이 발견하고 활을 쏘니, 주축으로 보이는 자가 그걸 맞았고 무리들이 도망갔습니다."
동혁이 거짓말했다. 거짓이라고는 입에 올리지도 않을 것 같던 그가 태연하게 한빈을 속이려고 하고 있었다.
"호위무사는 어디에 있느냐."
"부상을 입어 숲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너는, 왜 그 곳에 있었던 것이냐."
그 말에 동혁이 고개를 들어 한빈을 쳐다봤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한빈의 두 눈에서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걸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생을 믿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현실이 크게 대적하고 있었다.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으므로 동혁은 형의 신뢰마저 잃게 되었다.
"…알았다, 잘 알았다. 세자빈을 구해주어 고맙구나."
"……아닙니다."
"세자빈의 호위무사는 우리가 알아서 데리고 오도록 할 것이니 너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거라."
한빈이 혀를 씹으면서 동혁에게 명령했다. 그 옆에서 곤은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혁은 내게 인사하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나를 사모한다던 그가, 내게로부터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세자빈의 행방에 궁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주변을 수색하라는 한빈의 명이 있었는지 호위무사들이 하나 둘 세자익위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동혁을 내 앞으로 데려왔던 말을 몰고 가져갔다. 한빈은 아직도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는, 나를 정말로 걱정하고 있었다. 이유를 몰랐다. 나를 거짓으로 사랑하겠다던 게 그였다. 윤을 잊는 게 어렵다고 했었다. 먼저 그런 말을 해놓고 나한테 이러는 이유를, 나를 쥐고 흔들려고 하는 이유를 나는 어떻게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다.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
"…의원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저하께선 왜 저를 걱정하고 계셨습니까?"
"……."
그를 쳐다보지 않으며 물었다. 그의 눈을 보게 되면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분이라면……."
"……."
"그 분이라면, 저하처럼 가만히 있지 않으셨을 겁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십니까."
"저를 직접 구해주셨을 겁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왜 굳이 한빈에게 상처를 내려는지, 어째서 그렇게 나쁜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가까스로 평행을 유지하던 그와의 관계를 내 손으로 직접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한빈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없어진 나를 걱정해 찾으러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더라도 신하들이 만류했을 것이다. 그들에겐 훗날에 군주가 될 한빈을 온갖 위험으로부터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회피의 감정이란 걸 알았다. 준회의 양면을 마주한 걸 부정하고 싶었고, 그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 나에겐 모든 탓을 돌릴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하필이면 그 대상이 되어버린 한빈은 그걸 듣고 내 앞에서 한참이나 침묵했다. 나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도 자존심 상하지 않는지 그는 의외로 얌전했다. 나에게 바로 언성을 높일 거라는 내 예상이 보기 좋게 엇나갔다.
"…알겠습니다. 다 내 잘못입니다. 다음부터는 내 목숨을 걸고 그대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
"……아직도 내 형을 잊지 못하셨습니까?"
"……."
"언제 쯤이면 아주 잊으실 생각입니까."
"……."
"언제 쯤이면……. 내 형을 보는 눈을 지우고, 저를 바라봐주실 겁니까?"
나쁜 사람이 됐다. 그의 눈에 허망한 감정이 깃드는 걸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한 번 떨구더니 이내 나를 두고 먼저 자선당 안으로 들어갔다. 초여름은 차고 시린 밤을 가지고 있었다. 일교차가 컸다. 얇은 저고리 안으로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주변에 있는 모두가 깊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세자빈,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아, 예. 조금 놀란 것 빼고는……."
"준회는 어떻게 됐습니까? 부상의 정도가 어떠합니까?"
"그게……. 다리에, 화살 하나를 맞았던 것 같습니다."
동혁의 짓이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그들, 도적들의 생김새가 어땠는지 기억나시는 게 있으십니까? 혹시 모두 검은 옷을 입지는 않았습니까."
"……."
소동이 좋게 마무리된 것을 확인하고 다른 호위무사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동혁의 거짓말을 들키게 될 것 같아서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답답하게 여기지 않고 기다리던 곤이 한숨을 쉬며 조용히 일러주었다.
"요즘 궁을 위협하는 무리가 있다는 걸 준회에게 전해들어 알고 계실 겁니다."
"……."
"참으로 막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하를 찔러 세자빈께 큰 슬픔을 안겨드린 걸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준회가 나한테 그런 걸 알려준 적은 없었다. 또 다시 준회에 대한 수상한 생각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말 같은 참사가 반복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무사들이 모든 힘을 다해 궁을 지키고 있지만, 오늘 세자빈께서 당한 일 때문에 앞으론 더욱 바짝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 때와 오늘, 모두 동일한 자들일 겁니다. 저번에 저하의 아우 분께서 활을 맞으실 뻔한 것도 그렇고……."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분이 활을 맞으셨습니까?"
내 말에 곤은, 오히려 그걸 모르고 있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처럼 쳐다봤다.
"아니, 맞으신 건 아니고 그럴 뻔하셨습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소인이 곧장 궁의 내신들께 상황을 알려드리고 세자익위사로 충원을 받아, 다 깨우치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럼 저하께서는……."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걸 알 수가 없기에 뚜렷한 대책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저희들은 열심히 저하와 그대를, 그리고 궁을 지킬 뿐입니다."
"……."
"그럼 후에 뵙겠습니다, 편히 쉬시기를."
곤마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뜨니 이제 마당에는 나 혼자였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는 좋은 효과가 있었지만 너무 외로웠다. 나는 멍청히 고개를 올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정확한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이 구름에 가려져 몹시 희미했다. 주의해서 찾아보지 않으면 영영 희미함에 그치고 말 형상이 꼭, 내 모습 같았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는 없어서 나는 천천히 자선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곳을 들어서며 그의 방을 한 번 쳐다봤다. 잠을 자는지 얇은 종이로 가림을 한 문이 캄캄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울고 싶은 밤이었다. 그냥 무작정 누군가를 붙잡고 내가 가진 모든 슬픔을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방 안의 형식적인 가구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동혁이 일부러 준회를 변호했다. 그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대신, 아주 구체적인 것을 변명으로 둬서 태연스럽게 한빈을 속였다. 굳이 그래야만 했을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준회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채고, 그를 잃고 슬퍼할 내가 안쓰러워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혁은 준회한테 활을 쐈다. 목을 잘릴 것을 각오하라고 했었다. 그랬던 그가 나를 핑계로 굳이 거짓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준회를 감쌌는지 복잡한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종이를 펴고 작은 붓을 들었다.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를 단 몇 줄로 정리하려니 쉽지 않았다. 온점을 찍고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어수선했다. 점점 막연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 그대로 모아두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을 몰랐다.
동혁과 '세자빈' 사이에는 좋지 못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통 의문인 것들 투성이였다.
잠이 오질 않아서 잠시 밖으로 나갔다. 늘 복도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궁녀들이 지금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딱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눈치 보지 않고 밖을 나설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이 한창 진행 중인 밤은 조용하고 가지런했다. 어떤 불행도 찾아올 것 같지 않은, 뒤늦은 평화를 약속하는 그런 단정한 밤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에 준회가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내게 다가오고 있던 걸음을 멈췄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그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외면하고 싶었는데 그가 먼저 내 앞을 찾아왔다. 그는 불쑥 나타나서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눈빛을 받아내다가 그의 두 눈 주변에 작은 상처들이 생겨났단 걸 알게 됐다. 상처들은 피가 굳어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얼른 약을 쓰지 않으면 그대로 흉이 남을 것이었다. 나는 내가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단 걸 알아차린 뒤 정신을 차리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를 걱정해도 얻을 게 없었다. 그런데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밖에 나와 계십니까."
"……."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아니."
짧은 내 대꾸에 그가 가볍게 웃었다. 알량한 변명이라는 걸 아는지 그건 거의 비웃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는 곧 내 앞이 아닌 옆으로 가 섰다. 다행이었다. 그와 자연스럽게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
나는 한참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나를 죽이고 싶었어?"
"……."
"…왜?"
"……."
"왜 그랬어?"
준회는 내 채근에 대답이 없었다. 그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는 내게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말 없이 주머니에서 연고 통을 꺼내 열었다. 사용한 적 없는 연고의 표면이 매끈했다. 손가락으로 그걸 떠서 준회의 얼굴 사이로 가져갔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소중한 게 아니었습니까."
"너도 소중해."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내 손을 조용히 밀어냈다. 그대의 손길을 받지 않을 것이니 어서 손을 씻으셔야 할 겁니다. 이어 차갑게 대꾸했다. 나는 거절 당한 손을, 연고를 묻은 손을 잠시 애매하게 들고 있다가 내렸다. 준회가 미동도 않는 나 때문에 군관복 끄트머리를 가볍게 찢은 뒤 그걸로 내 손을 닦아냈다. 철조망 위에 단단한 벽돌이 수도 없이 세워진 느낌이었다.
"널 죽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
"얼굴을 보여주면 안 돼?"
"태양이 죽는 날에 그렇게 할 겁니다."
"나한테 태양은 너뿐인데 어떻게 해."
투정이었다. 나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나는 준회 앞에서 또 헌신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젠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렇게 울고 싶고 화가 나고 달래주고 싶은 것 같았다.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세자빈'이 내게 그 감정을 남기고 떠난 것일지도 몰랐다.
너무 오래 밖에 있었다. 그에게 아직 이 곳을 떠날 마음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를 그 곳에 두고 등을 돌리는데, 문득 익숙한 공기가 흘렀다. 지금, 마주해선 안 될 공기였다. 오로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산소는 내 숨마저 가지고 가서 호흡을 곤란하게 했다. 언젠가 그가 마시는 공기는 무엇일지 궁금해 알고 싶은 적이 있었다. 결단코 그가 나를 좋아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의 공기는 내가 마신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얼, 하십니까."
한빈이었다. 그가 내 뒤로 시선을 바꾸는 게 느껴졌다. 준회를 보았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나와는 다른 숨을 쉰다.
그에게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됐다.
/
*마제: 말의 발굽.
*술시: 오후 7시~ 9시.
*호랑이 사냥: 일제강점기를 보내기 이전 조선에는 호랑이가 많았는데, 칼로는 쉽게 범을 죽일 수 없어 대체적으로 활을 사용하여 사냥했다고 전해짐. 다른 신체 부위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눈을 쏘게 되면 보다 쉽게 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함.
*내금위장: 왕족의 호위를 맡은 금군청의 내금위를 통솔하는 세 명의 사람을 일컫는 호칭.
*척애: 짝사랑.
*사모하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함.
*대홍사: 왕족의 남자들이 여름에 입는 옷.
안녕하세요 독자 님들!
내일이면 벌써 월요일이네요... 하.하.하(경직된 웃음)
저번 편에서 갑자기 댓글이 많이 달려서 놀랐다는 건 정말 안 비밀...! 몰래 울었다는 건 정말 정말 안 비밀...! ㅜㅠㅠㅠㅠ
이렇게 초록글 첫 페이지까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앞으로 더 열심히 달릴게요 ㅠㅠㅠㅠㅠㅠ
동혁이와 준회 그리고 세자빈의 관계는 완결 쯤이나 외전을 보셔야 완벽히 이해가 가능하실 듯합니다.
20편이 조금 넘으면 끝날 것 같아요!
분량 조절 실패해서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워낙 생각 없이 글을 써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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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에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회원 분들도... L.O.V.E...★ ㅋㅋㅋㅋㅋㅋㅋ
재미 없는 글 읽어주시느라 항상 고생이십니다 ㅎ....
안녕!!
다음 편에서 만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