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혼란이 있을 수 있으시겠지만 시점을 다르게 하기 위해서 매화 제목이 조금씩 틀려요!
여주 시점은 남사친, 정국이 시점은 여사친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편수는 쭉쭉 순서대로 적을게요 :)
여주 이름은 이여주로 할게요. OOO보다 이게 편해서...☆
*
요즘 그 아이는 조금 이상하다.
툭 하면 짜증을 내기 바쁘고 조금이라도 건들이려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자리를 피한다.
그 때도 그랬다. 여느때처럼 날 모델로 쓰겠다며 막무가내로 집으로 끌고 온 날도.
아주 오래 전부터 들락날락 거렸던 여주네 집이라서 웃통을 훌렁 벗고 주방을 기웃거리고 있는 와중에,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길래 어디 아픈줄 알고 하루종일 걱정했는데
그런 사람 마음도 모르고 다음날 학교에서 날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걸 보니까 어이가 없고 화도 났다.
미친 생각이지만 이여주가 나를 좋아해서 저런가, 싶기도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이여주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깨달았냐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어린 맘에 그렇게 착각하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여태까지 내 삶에 여자는 우리 엄마, 이모, 이여주가 다였기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겪어보지 못해서, 정의 내리긴 애매하지만
내 생각에는 맞는 것 같다. 내가 이여주를 좋아하는게.
마냥 선머슴 같고 동성 친구 같았는데 머리가 좀 성숙해져서 그런가 이제는 이성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중학생 입학할 때 규정상 짧게 쳤던 단발머리가 어느새 길고 풍성한 갈색머리로 변했고,
젖살이 통통해 앳되어 보이던 그 얼굴도 이제 여인의 얼굴로 변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도 변했다.
*
이여주는 그림을 잘 그리고, 또 좋아한다.
나도 미술을 배우는 우리 형 때문에 어릴 때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좀 듣긴 했는데, 이여주는 꽤나 소질이 있어보인다.
그 쪽으로 진로를 희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연습한다는 핑계로 나를 자주 모델로 쓰고는 하는데, 전문가의 솜씨가 나올 때가 있다.
한때는 모노톤으로 내 옆 얼굴을 그려준 적 있는데,
그 때 난 분명히 무표정을 일관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완성된 그림에는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여주는 자기의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 너 왜 나랑 있을 때는 잘 웃으면서 너네 친구들이랑 여자애들한테는 시니컬한 척 하냐? 애들이 다 너 차가워 보인대. 그러니까 좀 웃고 다녀라. "
내가 그랬나?
나는 원래 웃음이 많은 편이 아닌데 이여주랑 있을 때는 자주 웃는 것 같다. 별 시덥잖은 소리를 자주 해대서.
그래서 그건 너 하는 행동이 웃겨서 웃는거라고 반박하니까 또 목에 핏줄을 세우고 열변을 토한다.
그래그래, 알겠어- 하면서 한 귀로 흘리니까 주먹을 쥐고 내 배를 툭툭 치는데
아픈 척 했지만 간지러웠다. 짝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스킨쉽도 마냥 좋다는 소리다.
*
내가 이여주한테 내 마음을 말하면 우리 사이가 틀어질 것 같아서 말을 못한다, 는건 좀 비현실적 전개인 것 같고
우리 사이는 틀어질 사이가 아니라서 말을 한다고 해도 이여주가 일방적으로 돌아선다는 상상은 해본적도 없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최근 이여주의 태도 때문이다.
애가 다른 여자애들이랑은 조금 다르게 하는 행동은 웃긴데 말은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다.
둘만 있을 때도 우리는 하루종일 말 없이 앉아있기도 한다. 나도 말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튼 요새 이여주의 태도가 나를 조금 두렵게 한다. 말하면 싫어할까봐.
피하고, 말도 짧아지고, 집에도 먼저 가고, 쳐다보지도 않고.
그림 그린다는 핑계로 심심할 때 부르는 짓도 하지 않는다.
혹시나해서 이여주의 생리주기도 계산해봤지만 아직 2주나 더 남은 것 같아서
결국은 이여주는 나를 싫어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우리 엄마가 요새 왜 여주 안 보이냐고 너가 좀 잘 데리고 다니라고 핍박을 주는데도 아무 말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내가 이유를 알면 이러고 있겠냐구요.
우리 엄마도 이여주를 극성으로 아낀다.
남자밖에 없는 우리 집에 이여주는 자주 놀러와서 이모-이모- 하면서 싹싹하게 애교를 부리는데, 엄마는 그런 딸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넌 애가 왜 그렇게 무뚝뚝 하냐며 내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고.
그래, 이여주는 가끔 나보다 어른 같기도 하다.
" 정국아, 밥 먹었어? "
내가 개도 안 걸린다던 여름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던 때의 이야기다.
아버지께서 승진 선물로 하와이 2박 3일 여행권을 선물로 받아 엄마랑 단 둘이 여행을 떠나버리고, 형은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우리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주 아픈 편이 아닌데 꼭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만 한번씩 아프고는 했다.
엄마는 왜 아프고 그러냐며 엄마가 간호해줄 수 없으니까 여주한테 연락을 해보라고 했지만,
뭐하러 애를 귀찮게 하나 싶어서 연락도 안 하고 누워서 잠자코 식은 땀만 흘리고 있는데 이여주가 자연스럽게 우리집 문을 따고 들어왔다.
엄마한테 연락을 받은게 틀림없었다.
" 와, 이것 봐라. 땀 장난 아니게 흘리네. 너 이모가 나한테 연락하라고 하셨다며! 왜 미련하게 눈만 껌뻑거리고 있어. "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여주가 올줄은 상상도 못했다. 땀이 많이 나서 속옷만 입고 있던 아래를 황급히 가렸다.
" 아씨! 말이나 하고 오지. 옷 벗고 있는데…, 눈 가려. 옷 입게. "
" 땀을 폭포같이 흘려대는데 옷을 뭐하러 입어. 누워봐. 땀 닦아줄게. "
" 땀을 니가 왜 닦아. 놔두면 말라. "
" 땀 식으면 또 얼어죽게? 닦아준대도 말이 많아. "
그러더니 방에 딸린 화장실에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수건을 물에 적셔온다.
" 누워 있으라니까 말을 더럽게 안 듣네. 계속 아프고 싶냐? "
" 아니, 누울게. "
쳐진 눈꼬리가 나를 귀엽게 째려보는데 더 이상 고집 피우긴 싫어 꼬리를 내렸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침대 시트가 다 젖었다면서 나중에 빨아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얇은 후드를 벗는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안 걸친 뜨거운 내 팔뚝부터 차가운 수건으로 닦아 내리기 시작한다.
" 차가워. "
"....."
" 차갑다고. 나 얼어죽으면 어떡해? "
" 얼어죽어도 싸. "
" 너무하다, 이여주. "
내 칭얼거림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내 몸을 수건으로 열심히 닦는데, 여자애가 부끄럼도 없다.
나는 부끄러워서 죽겠는데. 얼굴이 시뻘개져 가는게 느껴졌다.
여자 손이 닿는게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정작 이여주는 아무렇지 않은데 나는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아닌가. 날 일으켜서 손아귀를 잡고 등부터 등허리까지 꼼꼼하게 닦아주는데 이여주 손이 파르르 떨렸던 것 같기도 하다.
다 끝냈는지 수건을 내려놓고 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다.
불덩이 같이 뜨거운 이마에 놀랬는지 토끼눈을 뜬다.
쌍커풀 없는 큰 눈이 나를 응시한다.
" 야, 너 열 많이 나잖아. 아프지도 않아? 집에 사람이 없으면 나한테 연락을 하던가 병원을 가던가 해야할 거 아니야! "
" 미안, 경황이 없어서. "
" 이모가 나한테 연락 안 하셨으면 어떡하려고 그랬는데? 앓다가 기절하려고? "
" ........... "
" 너 예전부터 항상 그랬어. 아프면 티 안내는 버릇 내가 고치라 그랬지. "
그게 아닌데, 여주야.
나 우리 엄마한테 아프면 되게 잘 칭얼거려.
너한테만 말 못하는거거든. 이렇게 너 아픈 것 처럼 나 많이 걱정할까봐.
" 진짜 이해가 안된다. "
"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만 좀 해. 니가 아프냐? "
" 다음부터는 꼭 말해. 나한테만이라도. 알겠어? "
고개를 대충 끄덕이는걸로 대답했다. 지키지 않을 약속이지만.
수건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이것저것 부산스러운 소리를 낸다.
나 준답시고 죽을 끓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여주는 요리도 꽤 잘한다. 중삼땐가, 뜬금없이 현모양처가 될거라면서 이모한테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징징댄 적 있는데, 용케 그 때 요리를 잘 배워놓은 모양이다.
어느새 열이 조금 가라앉은 몸을 만져보고 옷을 입는데 금방 죽을 다 끓인 모양인지 작은 개다리소반에 그릇을 담아 낑낑대며 가져온다.
들어주려고 일어서자 환자는 누워있어! 하고 소리친다.
" 내가 먹여줘야 되고 뭐 그런거 아니지? "
" 맞는데. "
" 원래 감기 걸리면 오른손도 못 써? 보통? "
" 나는 그래."
어이 없다는 듯이 웃더니 숟가락을 들어서 죽을 한 입 떠먹여 준다.
오물오물 받아 먹으니까 또 잔소리를 한다.
나이가 몇 갠데 아직 밥을 받아 먹냐고, 그러니까 이모가 맨날 자기한테 유치하다고 내 욕을 한다며.
꿍얼거리는데 그게 또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어쭈-이제 살만한가보다? 볼을 부풀리고 잔뜩 삐쳐있는 이여주가 새삼 어른같아 보였다.
꼴에 소꿉친구라고 아프다 하면 찾아와서 간호해주는 모습이 괜히 의미부여를 하게 만드니까 미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 여주야, 나는 네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맘을 접어야 할지, 차가워지는 네 태도에 적응을 해야할지, 계속 너를 바라보기만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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